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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 지금 종로로 '알바' 하러 가는데 촛불집회 때문에 버스가 움직이질 않아. 근데 니가 거기 있다고?" 전화로 들려오는 날카로운 목소리. 이어서.

 

"야, 왜 '오버'야. 먹을만 하니까 수입했겠지. 나가서 힘쓰지 말고 집에나 가."

 

촛불집회에 참여한 후 비로소 사회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자랑스럽게 후기를 말하는 나에게 주변에선 다들 "사랑하기에, 놀기에 바쁜 청춘이 무슨 촛불집회냐"는 반응들이었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반문했다. 

 

"야, 그러고도 네가 대학생이야?"

 

촛불집회 간다는 내게 "왜 '오버'야?"

 

난 사실 주위 친구들의 말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팔랑거리는 귀를 가지고 있는 게 문제랄까. 특히나 기가 센 나의 옛 친구들이 따박따박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면 나는 그 논리에 곧 휘말려 버리기 일쑤였다.

 

따사로운 봄을 맞이한 후 어느 날 밤. 나는 TV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하고 말았다. 바로 자기 종족으로 만든 사료를 먹고 광우병에 걸린 다우너소였다.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눈으로 확인한 그 병은 참으로 참혹한 것이었다. '인간 광우병'이라는 이름으로 몸에 침투해 자신의 죽음이 오는지도 알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나는 곧 분노했다. 그리고 이 정부가 도대체 누굴 위한 정부인지 의심스러워졌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도대체 어떤 손익이 있는지 밝히며 국민들을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고 눈 앞에 펼쳐진 경제적 이익과 한·미 우호 관계를 위해 졸속 협상을 했기 때문이다.

 

궁금해진 나는 컴퓨터를 켰다. 수많은 통계 자료와 전문가들의 이야기들. 다른 나라들도 미국산 쇠고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 몇 시간 동안 무시무시한 세상의 이면에 직면한 나는 당장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렵고 흥분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때는 솔직히 이 문제로 어른들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희열감도 있었던 것 같다.

 

전화를 하고 그 다음날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에게 이 문제를 이야기했다. 금세 쇠고기 수입 문제는 모두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문제가 되었고 촛불문화제가 열린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촛불문화제에 나가 국민의 일원으로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비록 모기만한 소리일지라도.

 

'괴벨스의 입' 같은 보수 언론들

 

얼마 안 있어 촛불집회가 시작되었고, 나는 촛불집회가 두 번째 열리던 날 학교 친구들과 함께 집회에 참가했다. 내가 집회에 참여한 걸 알게 된 나의 옛 친구들은 "정말 '오버'한다"면서 나를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내 친구들의 반응이 무리는 아니었다. 나와 내 과 친구들이 초기부터 나선 것과는 달리, 정말 현 대학생들의 행동은 예전 근현대사에서 본 민주화를 염원하던 지성을 갖춘 대학생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내가 본 바 지난해 5월 초에 참여했던 집회에는 고등학생들과 아주머니들이 제일 많았다. 조금은 창피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들도 앞에 나와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제일 먼저 행동에 나서야 할 대학생들이 지지부진하고 있다는 게 말이다. 점점 사태는 심각해졌다. 특히 보수 언론들의 행태는 정말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꼭 히틀러 때 괴벨스의 입 같았다.

 

정부 편에 서서 시민들이 물대포 맞는 장면은 전혀 보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악선전을 이어나갔다. 조중동의 행태는 정말이지 상식을 벗어나고 있었다. 작년 5~6월 두 달 동안 나는 촛불집회에 왜 나가냐며 말리는 친구들도, 소통 안 되는 정부도, 기존에 신뢰했던 언론들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온갖 루머들도 믿을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오직 내 지성과 이성에 기대어 진실을 찾아야만 했다. 더 이상 팔랑거리는 귀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된 것 같은 희열감은 곧 가시고 나는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요즘 대학생들, 정말 바쁜 건 잘 알지만...

 

2008년 5월, 내가 몰랐던 이 세상의 권력과 비극적인 이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헌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이 먼지 풀풀 날리는 세상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희망을 더 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단지 '이소희의 정체성'이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국민 이소희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비로소 대한민국이라는 익숙했던 세계가 내 안에서 새롭게 재편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촛불집회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성숙해졌고,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집단이성은 더욱더 발전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고백하기 창피하지만 내 성숙함을 자랑할 새도 없이 막판에는 자체적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그쳤다. 시험도 있었고, 방학 때는 해외봉사활동도 가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시선을 돌렸다.

 

또 내 눈으로 확인한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면 요즘 대학생들은 정말 바쁘다는 것이다. 토익에 한자에 공모전에 해외봉사활동 실적까지. 뭐든 열정을 가지고 하는 것은 좋지만, 현재 대학생들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만 관심이 있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가 않다.

 

분명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들이 다들 있을 텐데, 플라톤 말대로 동굴에 앉아 빛을 보지 못하고 그림자만 보는 죄인들처럼 진리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고 있다. 지성인 역할을 하던 대학생들의 위상이 저물어 가고 있다. 나도 끝까지 참여하지 못하고 도망쳐버린 것 같아 참 많이 아쉬웠지만, 이번 촛불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내가 속한 이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혹시 촛불집회가 있을 때마다 눈길을 돌리고 주저하는 20대 청춘들이 있다면, 꼭 참여해 보기를 권한다. 내가 누군지, 내가 있는 여기가 어딘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덧붙이는 글 | '촛불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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