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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미운 사람, 노무현'이라는 저의 글이 '경찰이 왜 빈 광장을 지켜야 하나요?'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실려 많은 분들이 읽고 의견도 남겨주셨습니다.

 

네이버 아이디 'kaimenbaji'님은 '하늘이 내신 분이 다시 하늘로 가셨으니 그분의 귀천(歸天) 길에 고마움과 미안함과 그리운 마음뿐입니다'라고 댓글로 마음을 남겼습니다.

 

'고맙고, 미안하고, 그리운 마음'이라는 표현은 그분의 귀천 길에 바칠 수 있는 가장 요약된 조사(弔詞)같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돈 버는 송사를 수주하는 대신 돈 없고 기댈 곳 없는 억울한 사람들의 비빌 언덕인 인권변호사로 지냈으니 '고맙고', 영·호남지역의 고질적인 장벽을 타파하기위해 방패 없이 몸을 던지고, 진정 민초들을 하늘로 받드는 낮은 몸짓을 실천하신 그분의 마음을 살아생전에는 오히려 곡해하고 날선 비판으로 대했으니 '미안하고', 누구도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 분을 다시는 못 볼 곳으로 보냈으니 '그리운 마음' 간절합니다.

 

<오마이뉴스> 아이디 tigermsk님은 '시청 앞에 모였던 50만분의 1입니다. 거기서 저는 느꼈습니다. 정말 조용하지만 더더욱 무서운 분노와 반성을 말입니다.'라고 현장에서 느낀 '분노와 반성'을 말해주셨습니다.

 

"아빠, 이거 잘 보관해요."

 

지난 토요일 저를 돕기 위해 서울에서 온 아들 영대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서울광장을 노랗게 물들게 했던 그 노란 종이모자 하나와 밀짚모자를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을 들어 국민들에게 인사하는 생전의 노무현대통령이 인쇄된 민주노동당의 전단지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저는 아들의 그 모습에 제 가슴에 꽉 차 오르는 격세지감(隔世之感)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1997년 대선당시 노무현과 함께 찍었던 어린 영대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입니다.

 

12년 전 아무 철없는 아이로 노무현의 품에 안겼던 영대가 이제 이 사회의 여러 분열과 고질적인 병폐를 껴안고 불귀(不歸)의 길을 가신 노무현을 가슴으로 안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그 삶이 그러하도록 독려하는 힘이 있습니다. 여전히 사리를 분별하는 지각이 미성숙한 아들은 지금 인식을 하던 하지 않던 그가 앞으로 살면서 건너야 될 격랑이 요동치는 큰 강의 여러 줄기 중에서 그 하나의 강을 건너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될 것입니다. 아들은 이 강을 건너면서 '너무 슬프다'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인식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어떻게 실타래가 엉켰고, 그것이 점점 커져서 강의 순리적인 흐름을 방해했으며 그것이 지금의 격랑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요.

 

아들이 오늘의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가능한 어른이 되어 있을 나중에 장벽 없고, 차별 없으며, 잘 벼리어진 시퍼런 칼날처럼 정의가 바로 선 세상을 만드는 또 다른 50만분의 1이 될 것을 상상해봅니다.

 

영대는 제가 재활용함에 분리수거해둔 노란모자와 민주노동당의 그 전단지를 되꺼내 자신의 책상 책갈피사이에 끼워두고 다시 서울로 갔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www.travelog.co.kr)에도 포스팅 됩니다.


태그:#노무현, #이영대,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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