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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 겉그림
 <여자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 겉그림
ⓒ 레드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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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에 의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2배나 높다'.

이를 입증하듯 우리 사회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다. 2009년 OECD 통계 연보를 보면 우리나라 여성의 자살률은 회원국 1위이다(남성은 4위란다).

전문가들의 말처럼, 여성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긴 높은가 보다. 잊을만하면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했던 엄마가 아이와 동반자살 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보도되니 말이다.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 '여성 우울증'이나 '주부 우울증'이란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대체 왜 우리 여성들은 우울증에 잘 걸리는 걸까? 무엇이 우리 여성들을 우울하게 하는 걸까? 자살에까지 이르는 우울증의 실체는?

'발레리 위펜'의 <여자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레드박스 펴냄)은 이처럼 남성들보다 걸릴 확률이 훨씬 높은 '여성 우울증'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여성 우울증 치료와 부부 상담 치료로 유명한 심리학 교수. 그간의 치료경험과 연구가 이 책의 바탕이다.

대부분의 우울증 책은 '여성 우울증'을 따로 구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매우 다른 방법으로 세상과 만난다. 특히, 나는 여성 우울증과 인간관계의 연관성을 제대로 풀어보고 싶었다. 다시 말하면 우울증에 관한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한 수많은 여성 우울증 환자가 던져준 교훈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 책은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여성이나 그런 여성을 돕고자 하는 사람 혹은 미리 우울증을 예방하고자 하는 여성을 위한 책이다. 나는 대인 관계의 어떤 점이 우울증을 일으키는지, 어떤 방식으로 여성을 고통의 회전문 속에 가둬버리는지 이야기할 것이다.- 책속에서

여자들은 왜 우울할까? 여자들은 정말 우울해야만 할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우울증은 흔한 감기와 같다"고 말한다. 또한 여성 특유의 호르몬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우울증에 잘 걸리는 사람과 잘 걸리지 않은 사람은 유전적으로 다르다고도 말한다.

정말 그럴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우울증에 잘 걸리는 걸까? 여성 우울증의 원인은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것처럼 유전인가? 호르몬 때문인가? 아니면 사회적 환경 혹은 인간관계 때문인가? 대체 무엇이 여성들을 우울하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가?

저자는 여성이 우울증에 잘 걸리는 것으로 여성의 '성역할'과 '인간관계'를 지목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성역할과 무엇보다 친밀한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여성의 특징 때문에 여성들이 우울증에 잘 빠진다는 것이다.

어린시절에는 우울증에 걸리는 남녀의 비율이 같지만 사춘기 소녀들의 우울증 수치가 갑자기 치솟는단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다시 급속하게 치솟는다고. 첫 생리를 시작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 양육 그리고 완경 등 여성의 성역할과 관계있는 여성만의 시건 모두 우울증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아래 중 통계상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가장 높은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은?

①남편과 자녀가 있는 여성 집단 ②독신 여성 집단 ③아내가 있는 남성 집단 ④독신 남성 집단

얼핏 혼자 사는 여성 집단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가장 높을 것 같지만 정답은 ①번 남편과 자녀가 있는 여성 집단이다. 그리고 벌어먹고 사는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확률이 가장 높아 우울할 것 같은 ③번 아내가 있는 남성 집단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가장 낮단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우울증 증세를 보인 남성(④)이 결혼을 하면 우울증 증세가 사라진다(③)는 사실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만큼 여성의 '성역할'과 '성역할로 맺어진 인간관계'가 여성 우울증에 깊이 관여한다는 근거 아닐까?

이런 부분들을 읽는 동안 "가정은 남성에게 휴식처이지만 여성에게는 일터"라는 어느 여성학자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여자들을 우울증의 늪에서 어떻게 구출할까?

저자는 20년간 대학에서 임상심리학을 가르치며 수많은 여성 우울증과 부부문제를 상담 치료한 것들을 바탕으로 여성 우울증의 원인과 실체를 조목조목 설명,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해결방안에서 또한 중요시 하는 것은 과거의 메아리, 즉 과거의 경험과 상처나 자라온 환경 등이다. 여성과 남성은 태어나는 순간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가정과 사회도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을 구분하거나 결정하고 차별한다. 이런 것들 모두 여성들을 우울증으로 빠지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근본 문제는 외면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여성 우울증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위해 자신이 오랜 동안 치료했던 여성 우울증 환자들 중 많은 여성들의 고통에 해당하는 문제로 우울증에 빠진 '리사' '앤' '트레이시'의 사례를 통해 여성 우울증을 진단, 치료 과정을 설명한다.

극단적이고 혹독한 신체적 처벌을 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리사는 결혼을 했지만 남편 또한 자신의 아버지처럼 신체적 학대를 했다. 남편은 가학적인 섹스를 즐겼으며 리사는 굴욕감과 두려움으로 몸서리치지만 생활 때문에 남편에게서 벗어날 생각을 못한다. 성의 학대를 피하고자 남편의 불륜을 묵묵히 견딘다. 이런 그녀는 결국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또 다른 여성 '앤'은 자존심 강한 엄마에게 언제나 비판받으며 자랐다. 그런데 남편도 마찬가지여서 앤이 자신의 주장을 말할라치면 "당신은 너무 의존적이야. 제발 당신의 삶을 살라고!"며 충고하곤 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은 '미성숙한 사람'이며 남편은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 매사에 모든 문제가 미성숙한 자기 탓이라고 자학을 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스스로의 존재감조차 모두 잊어버리게 되었다.

트레이시는 새 아버지의 성추행에 방치된 아이였다. 부모는 그녀에게 한번도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 좋은 직장을 얻어 자신을 희생하여 엄마와 동생을 돌본다. 하지만 막상 그녀가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아무도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착취당하는 관계의 패턴에 빠졌고 곧 우울증에 빠졌다.

리사와 앤, 트레이시는 모두 자란 환경과 가족으로 인한 상처가 우울증으로 발전한 경우이다. 이들은 우리와는 생활습관이나 거리가 먼 캐나다 여성들이지만 우리의 드라마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그런 여성들과 참 많이 닮았기에 이들의 사례와 저자를 통해 치유 받는 과정을 읽으며 우리 사회 또 다른 리사와 앤, 트레이시들을 떠올렸다.

또 다른 리사와 앤이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가슴을 찍어 누르는 고통과 고민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은 우울중의 수렁에 빠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기에.

트레이시의 경우는 지난 날 잘난 남동생이나 오빠의 학비와 동생들을 위해 묵묵히 희생당해야만 했던 우리의 누나와 여동생들을 떠올리게 한다. 유형만 다를 뿐 가족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지만 막상 자신은 힘들고 외롭다는 말 한마디 털어놓을 수 없는 어머니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저자는 이들의 사례를 각 상황에 맞게 설명, 여성의 성역할과 인간관계가 여성 우울증에 어떻게 파고드는지, 특히 어린시절의 그릇된 인간관계나 성추행 등과 같은 상처가 우울증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는지를 조목조목 설명, 각 유형별 치료 방법을 제시한다.

여성의 우울증, 여성만의 고통이 아니다

우울증의 10가지 대표 증상
1.갑자기 식욕이 늘거나 혹은 줄어든다.
2.하루종일 누워있을 때가 많다.
3.밤에 잠이 오지 않고 새벽에 자주 깬다.
4.항상 피곤하다.
5.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심하게 짜증이 밀려온다.
6.사람들 만나는게 싫다.
7.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죄책감을 느낀다.
8.하나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심란하다.
9.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혼자 운다.
10.평소에 좋아하던 일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제9장 '엄마와 아이의 우울증, 누가 먼저일까?'도 눈여겨 읽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우울증에 걸린 여성의 아이들은 우울증에 걸린 여성만큼 위험하다. 훗날 우울증에 빠지거나 또 다른 심각한 정신병을 앓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엄마의 우울만이 아이를 위험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아이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는 엄마들도 종종 있다니 말이다.

10장 '우리의 삶은 우리가 변화시킨다'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저자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 잠시라도 우울증에 걸렸던 사람이거나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즉 거의 매일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항우울제, 심리치료, 인지행동치료, 과정경험치료, 부부상담 치료 등 우울증 유형에 따른 치료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각 장마다 우울증을 진단할 수 있는 팁을 넣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은 여성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어렵다는 점, 끝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언제나 잘할 수는 없다는 점 외에도 집안일은 가치 평가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최근에 아이에게 들이는 부모의 노동력을 돈으로 환산하면, 연봉 약 5,500만 원이라는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업주부에게 "그냥 집에 계신 거예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다. - 책속에서

책을 읽으며 만나는 이런 대목은 참 쓰리다. 나 역시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뼈 빠지게 벌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거니와 내 주변에 어린 아이 키우며 집안일만 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주부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의무감 때문에 때때로 자주 우울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부 우울증이 문제될 때마다 거론됐던 여성의 노동력 평가는 고사하고 자녀들의 사교육비와 대학 등록금을 위한 돈벌이로 내몰리고 있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탤런트 최진실을 비롯한 이은주, 정다빈 등 여러 명의 여자 연예인들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반인들의 우울증에 대한 관심도는 높아졌다. 그러나 자살의 실체는 무엇인지, 어떤 증상을 보이며 어떤 도움을 줘야 하는지, 어떤 해결방안이 있는지 등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우울증을 치료하는 전문기관도 턱없이 부족하며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과 주변사람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해주는 시설 또한 걸음마 수준이다. 몸에 좋은 음식이나 몸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많이 알려진 반면 병든 마음을 치료해줄 수 있는 것들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이런 안타깝고 아쉬운 실정에 이 책은 현명한 도움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여자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발레리 위펜 지음 / 레드박스 / 2009.5 / 1만2000원)



여자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

발레리 위펜 지음, 유숙렬 옮김, 레드박스(2009)


태그:#우울증, #여성 우울증, #주부 우울증, #자살, #여성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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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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