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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새벽 경찰에 의해 철거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가 경찰에 의해 계획적으로 철거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이를 항의하기 위해 방문한 민주당 지도부에게 "고의가 아닌 실수"라고 해명한 바 있다.

전 국민의 애도 속에 치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이 의도적으로 시민분향소를 난입, 분향소 천막 등을 철거하고 영정을 훼손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파문이 예상된다.

특히 경찰 수뇌부가 시민분향소 철거를 항의하는 야당 지도부에게 허위 보고를 하거나 부하 경찰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책임자에 대한 문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1일 논평을 내고 "경찰청장은 분향소 훼손에 대한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책임자인 주상용 서울청장을 즉각 파면하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30일 새벽 경찰이 서울 덕수궁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강제철거하는 마이크를 잡은 지휘관이 경찰들에게 철거를 지시하고 있다. 이날 강제철거에 대해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항의방문 온 민주당 의원들에게  "일부 의경들이 작전구역을 벗어나면서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새벽 경찰이 서울 덕수궁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강제철거하는 마이크를 잡은 지휘관이 경찰들에게 철거를 지시하고 있다. 이날 강제철거에 대해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항의방문 온 민주당 의원들에게 "일부 의경들이 작전구역을 벗어나면서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 칼라TV 화면 캡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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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새벽 경찰이 서울 덕수궁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강제철거하면서, 조문을 위해 바닥에 깔아놓은 깔판을 발로 차며 걷어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새벽 경찰이 서울 덕수궁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강제철거하면서, 조문을 위해 바닥에 깔아놓은 깔판을 발로 차며 걷어내고 있다.
ⓒ 칼라TV 화면 캡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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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지시 따라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시민분향소 철거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새벽 5시 30분경, 경찰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대한문 앞 분향소를 갑자기 덮쳤다. 경찰은 분향소 천막을 들어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짓밟았고, 영정을 모신 단상과 조화 등 추모 제단을 훼손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길바닥에 팽개쳐졌다. 경찰은 서울광장 진압 등에 저항하던 시민 77명을 무더기로 연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송영길 최고위원과 이미경 사무총장, 전병헌 의원은 31일 오후 2시 서울경찰청을 항의 방문, 경찰의 과잉진압을 지적하고,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경찰이 서울광장 봉쇄도 모자라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까지 철거한 것은 국민들의 마음을 또 한 번 아프게 한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공개해명과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표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자료사진).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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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찰 측은 "(분향소 철거는) 고의가 아니라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불법·폭력집회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 서울광장만 봉쇄하려고 했으나 일부 의경들이 작전구역을 벗어나면서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며 "경찰도 그날 모든 국민들이 추모하는 모습을 봤다. 절대로 고의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는 '작전구역'도 아니었는데, 일부 의경이 대열을 이탈해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시민분향소를 철거했고, 이는 '실수'였다는 것이다. 주 청장은 또 "영정은 부수지 않았고, 분향소가 일부 파괴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이라고 말했다고 송 의원이 전했다.

송 의원이 "실수로 철거했다고 하더라도, 지휘감독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한 것이니, 그에 대해서라도 사과하라"고 거듭 촉구했지만, 주상용 청장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의가 아닌 실수"라는 주상용 청장의 답변은 사실과 다르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진보신당 '칼라TV'가 촬영한 동영상에 따르면, 경찰이 덕수궁 앞 시민분향소를 덮친 것은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경찰에 완전히 밀려난 직후였다. 즉 "서울광장을 봉쇄하는 중에 일부 의경들이 작전구역을 벗어나서 벌인 실수"라는 주 청장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

경찰이 시민분향소를 덮쳤을 때는 이미 서울광장과 덕수궁 사이 8차선 도로로 차량 소통이 진행되고 있던 중이었다. 따라서 서울광장에서 '진압 작전'을 수행 중이던 일부 의경이 이탈해 덕수궁으로 넘어올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게다가 시민분향소를 둘러싼 경찰 300여 명은 철저한 통제 하에 매우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경찰 10여 명이 한꺼번에 분향소 안으로 달려들었고, 곧바로 천막을 뜯어내 몽둥이와 발로 짓밟았다. 또 다른 10여 명의 경찰도 동시에 분향소 바닥에 깔려 있던 깔개용 은박지를 뜯어냈다. 나머지 경찰은 시민분향소를 둘러싼 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특히 이러한 일련의 상황이 모두 한 지휘관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 손에는 마이크와 다른 손에는 무전기를 든 이 지휘관은 분향소 이곳저곳을 오가면서 경찰들에게 연신 "야, 저쪽 것도 다 걷어", "야, 이거 들어내, 저쪽으로 들어내"라고 지시를 내렸다. 한 시민이 "전직 대통령이 죽었는데……, 여기가 공산주의 국가냐?"라고 절규하며 저항했지만, 이 지휘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시민분향소 천막이 완전히 뜯겨나가고, 화환이며 영정이 놓인 테이블 등이 처참하게 망가지는 데에는 채 10여 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지휘관은 상황이 정리되자, 마이크에 대고 "다 끝났으면 나와"라고 지시했고, 시민분향소를 빠져나온 경찰들은 서울광장에 있던 본 대열과 합류했다. 아무리 봐도 "작전구역을 벗어난 일부 의경들의 실수"라고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실제 주 청장은 민주당 지도부의 항의를 받은 자리에서 "(덕수궁은) 수문장 교대식도 있는 만큼 계속 그곳(시민분향소)을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해, 이미 경찰은 덕수궁 앞 시민분향소 철거 방침을 세우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짙게 했다.

"미룰 상대가 없어서 의경한테 미루나" 누리꾼 비난

30일 새벽 5시20분경 경찰이 서울 덕수궁 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침탈해 노 전 대통령 영정을 모셨던 천막 등이 짓밟혀 있다.
▲ 강제철거 직후 처참한 모습의 시민분향소 30일 새벽 5시20분경 경찰이 서울 덕수궁 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침탈해 노 전 대통령 영정을 모셨던 천막 등이 짓밟혀 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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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새벽 서울 덕수궁앞에 설치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가 경찰에 의해 강제철거된 가운데 오전에 다시 설치된 분향소에 시민들이 몰려들어 분향을 하고 있다.
 30일 새벽 서울 덕수궁앞에 설치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가 경찰에 의해 강제철거된 가운데 오전에 다시 설치된 분향소에 시민들이 몰려들어 분향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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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상용 청장이 "분향소 철거는 작전지역을 벗어난 일부 의경들에 의한 실수"라고 해명한 것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앞서 주 청장은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찰버스가 막아주니 분향하는데 오히려 아늑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누리꾼 '명랑노트'는 "책임을 미룰 상대가 없어서 의경한테 미루느냐"며 "리더가 책임을 아래로 미루면 그 조직은 반드시 무너진다"고 꼬집었고, '달행이'는 "주상용씨, 경찰의 지휘체계가 이렇게 허술하단 말이냐"며 "의경들이 실수로 그런 짓을 할 정도의 경찰지휘체계냐"고 지적했다. '돌이'는 "핑계 좋다"는 제목의 댓글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윗전의 명령만 따르는 힘없고 불쌍한 의경의 탓으로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지 몸뚱이는 보신을 하겠단다. 그래도 경찰에서 둘째가는 사람에서 나온 변명인데 이토록 궁색해서야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갈는지 궁금하다. 부하의 허물을 덮어주고 솔선하여 책임을 져라."

'deepeye'는 "전직 국가원수의 영정을 함부로 훼손한 행위는, 그것도 국가공권력이 그러했다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고의든 실수든 주 청장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일 오전 MBC라디오 '뉴스의 광장'을 진행하는 김상수 앵커도 클로징멘트를 통해 주상용 경찰의 해명을 꼬집었다. 김 앵커는 "주말에 경찰이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를 강제 철거하고 이에 대하여 주상용 청장이 '그건 전경들이 실수한 것'이라고 해명했는데, 이러한 인식은 민심을 거꾸로 읽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유은혜 민주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분향소 철거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비통해하고 추모하는 온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고인을 욕되게 하는 만행을 자행한 것"이라며 "경찰청장은 분향소 훼손에 대한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책임자인 주상용 서울청장을 즉각 파면, 공식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태그:#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ZZ, #시민분향소 철거, #주상용 서울경찰청장, #칼라TV, #민주당 항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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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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