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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14일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은 청와대에서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론을 제기하자, "(중수부의) 수사가 잘못되면 먼저 내 목을 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검찰이 중수부 폐지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발언이다. 또한 이런 발언은 검찰이 중수부 폐지를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 준다.

 

한국 검찰은 중수부 폐지론이 나올 때마다 극렬히 반대하는 반응을 보여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과 김대중 정부 시절 중수부 폐지론이 제기되었지만 검찰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취임 초기부터 검찰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인 노무현 대통령은 한층 분명하게 중수부 폐지를 관철시키려 했다. 그러자 검찰총장이라는 사람이 나서서 '먼저 내 목을 치겠다'면서 사생결단으로 나온 것이다.

 

중수부를 어떻게든 지키려는 검찰

 

검찰이 중수부 폐지에 비이성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중수부가 검찰 권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중수부는 내로라하는 권력층 인사들을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검찰은 더 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이런 검찰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4월 21일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형사소송법 개정과 관련, "검찰은 제도 이상의 권력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말대로 중수부는 '제도 이상의 권력'임에 틀림없다. 검찰은 그 자체로 수사기관이다. 그런데 수사기관 내에 굳이 중앙수사부라는 명칭의 기관을 '특별히' 두는 것은 검찰 조직의 '옥상옥'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수부는 검찰총장의 명을 직접 받는다.

 

중수부의 성격은 창설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오늘의 대검 중수부는 1981년 전두환이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중수부는 독재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동안 중수부가 벌여온 수사 중 상당수가 표적사정이라는 시비를 불러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결단코 중수부를 지키려고 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한국 검찰이 고소원(固所願, 진짜 원하다)하는 바는 다름 아닌 스스로 '정치검찰'이 되고자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지난 2004년 3월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주최자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려고 했다. 그러자 법무부는 보고 없이 이런 일을 벌인 검찰을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대해 송광수 검찰총장은 "나를 직접 조사하라"고 거칠게 반발했다.

 

최근 검찰은 한 대학생에 의해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고발되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5월 31일 검찰을 같은 혐의로 고발했다. 중수부가 이번 노무현 대통령 수사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한 것은 검찰도 스스로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한 일이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의 언론 브리핑은 피의사실 공표를 목적으로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밖에도 검찰은 범죄 구성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항까지도 먼지털기식으로 샅샅이 수사하는 등 수사권 남용의 무리수를 범했다. 그 결과 전직 대통령이 벼랑에서 몸을 던지는 참극이 빚어진 것이다. 이쯤 되면 검찰은 조사, 아니 수사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명박 대통령이 입에 달고 다니는 '법치'를 실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

 

임채진 검찰총장은 지난 3월 30일 대검 주례간부회의에서 "이번 수사(박연차 비리 수사)가 이제까지 검찰에 대한 사회 일각의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1). 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총장이 국민과 역사 앞에 책임질 것이다(2)"고 단언했다.

 

이어 임 총장은 검찰 간부들에게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배제하고, 또 외부적 요소에 어떠한 영향도 받지 말고(3) 오직 법 원칙에만 충실한 독자적 판단에 따라(4)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하기 바란다(5)"고 당부했다.(번호는 기자가 매김)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위 다섯 가지 모두 철저히 검찰총장의 말과는 정반대가 되고 말았다. 먼저 이번 수사는, 1) 검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극도로 증폭시켰다. 2) 수사 결과에 대해 검찰총장은 국민과 역사 앞에 전혀 책임지지 않았다. 사표를 제출했다고 하지만 반려되었다는 보도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끝나기 무섭게 박연차 사건 수사를 속개했다.

 

3) 그리고 검찰의 말과는 달리 정치적 고려를 많이 했으며 외부 요인에 큰 영향을 받았다. 4) 검찰은 피의사실공표 등으로 법원칙을 어겨 가며 무리수를 남발했다. 5) 마지막으로 검찰은 신속하고 공정하기는커녕 전직 대통령을 소환 조사까지 하고 3주 이상이나 처리를 미루면서 권력과 여론의 눈치를 살피고 피의자의 사소한 꼬투리라도 잡으려고 혈안이 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만하면 검찰총장을 비롯하여 이인규 중수부장 등 수사팀 전원이 즉각 옷을 벗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사건 수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은 누추한 변명처럼 들린다. 남은 수사는 다른 검사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미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 수사에 앞서 수사팀을 강성 검사들로 교체한 바 있다. 그때는 수사팀을 신속히 교체한 검찰총장과 중수부가 이번에는 수사 마무리를 이유로 자리를 차고 앉아 있는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는지를 헤아려야 한다.

 

이번 노 전 대통령 죽음의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과 언론과 검찰 등 3자에 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민선 대통령이므로 시민혁명이 아니고서는 물러나게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민주당은 대통령이 사죄하고 법무장관을 파면, 경질하는 선에서 그 책임을 묻고 있는데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라고 본다.

 

다음으로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에 편승하여 피의사실을 여과 없이 보도한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등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은 민영기업이다. 그들에게 해산을 종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신 언론은 독자들의 냉엄한 질타를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검찰이다. 검찰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관이다.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사들은 국민에게 선출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국민이 녹을 주어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검사들은 옷을 벗더라도 바로 변호사로 개업할 수 있다. 그러니 그들은 당장 옷을 벗어도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2월 2일, "검찰은 남의 계좌를 들여다보지만 자기 계좌는 안 들여다보는 유일한 조직이다. 그래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만들고자 한다.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검찰에 대해 "정권이든 대통령이든 겨냥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하라. 검찰을 괘씸죄로 다루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말대로 그는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해 주는 등 검찰에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여기에 그의 불찰(?)이 있다. 스스로 '정치검찰'을 '고소원'하는 검찰에게 독립성을 주었으니 그들이 마음대로 정치검찰 노릇을 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의 정치검찰은 그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려 그를 비합법적으로 몰아세웠다.

 

애도와 추모 그리고 '지못미'의 맹점

 

중수부를 해체하고 검찰로부터 독립된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화급히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검찰은 필요 이상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 국민들은 너나없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한다. 그리고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소극적이고 일시적이다. 진정 노무현을 추모하려면 그의 뜻을 계승, 실천해야 한다. 중수부 해체와 공수처 신설은 노무현의 생전 염원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대통령도 냉철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중수부가 존재하는 한 정치보복은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노무현을 배신한 정치검찰이라면 이명박도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검찰이라면 몇 년 후 이명박에 관해 있는 것 없는 것 다 까발리고 심지어는 BBK 수사도 다시 하겠다고 대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면 '배신'을 당한 이 대통령은 그때 가서 어떻게 할까?


태그:#중수부, #노무현, #공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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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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