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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만장이 휘날리고 있다.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만장이 휘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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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지 않지만 분노한다'

도문스님은 만장(죽은 사람을 슬퍼하여 지은 글)을 쉽게 쓰지 못했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녹색 천에 붓으로 '슬퍼'라는 글자를 다른 글자보다 크게 쓴 후, 한동안 붓을 먹물에 적셨다. 이어 그는 '분노'라는 글자를 천천히 써내려갔다.

만장을 다 쓴 후, 도문스님은 기자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너무 슬퍼하지 마라'라고 했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다고 썼다"면서도 "슬픔이 없으면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어 '분노'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그는 "물어볼 필요가 있느냐, 온 산천초목이 분노하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도문스님은 "산에 새가 없으면 삭막하듯, 노 전 대통령이 없으니 삭막하다"고 덧붙였다.

28일 오전에 찾은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는 만장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사찰 한쪽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불교 신자와 시민들은 자신의 심정을 만장으로 쏟아냈다.

"죽음으로 국민들 깨우친 노 전 대통령, 부처님과 비슷"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한 불교신자가 노 전 대통령 노제에 쓰일 만장을 쓰고 있다.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한 불교신자가 노 전 대통령 노제에 쓰일 만장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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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님 이 땅에 다시 오시어 다시 한 번 대통령이 되소서.'

불교 신자인 이순자(59)씨가 흰색 천에 쓴 만장 내용이다. 이씨는 붓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써내려갔다. 많은 신자·시민들은 이씨가 만장을 쓰는 모습을 지켜봤다. 눈가가 붉게 물든 이들도 있었다.

"평소 노 전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았다"는 이씨는 "지나고 보니, 노 전 대통령이 국민과 이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는 생각이 들고, 국민들의 존경을 받은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런 분이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 국민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이씨는 "불교 신자들이 더욱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것 같다"며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불교의 가르침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의 집게손가락은 사찰 한쪽에 내걸린 노 전 대통령의 유서 중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구절을 향했다.

"반야심경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 있는데, 쉽게 말해 '있는 게 없는 것이고 없는 게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노 전 대통령의 유서에 있는 말과 통한다. 노 전 대통령은 종교를 떠나 해탈한 사람 같다. 또한 죽음으로써 국민들을 깨우쳤는데, 중생을 깨우친 부처님의 모습과 비슷하다. 참, 안타깝다."

시민들,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며... "편히 쉬십시오"

한 시민은 '그대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승리하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미래를 오늘로 만들겠습니다, 걱정 버리십시오'라는 만장을 적었다. 또 다른 시민은 '죄송합니다, 모두가 죄인입니다'라고 썼다.

만장 중에는 노 전 대통령이 편안한 곳에서 쉬기를 바라는 내용이 많았다. '어느 곳에든 편한 마음으로'라고 만장을 쓴 불교 신자 최범희(56)씨는 "유서에서 '힘들었다'고 했는데, 아미타불이 있는 곳에서 극락왕생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에서 포교연구실장을 맡고 있는 동성 스님은 '실상이명 법신이명'이라는 만장을 적었다. 그는 "'참모습은 이름이 없고, 진정한 몸은 자취가 없다'는 뜻으로 그가 자연으로 돌아가 정토에서 편히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일부를 제외하고 만들어진 만장은 28일 노제를 위해 사찰 한 편에 쌓였다. 대신, 노 전 대통령에 전하는 글을 담은 노란색 리본이 사찰 내에 빼곡했다. 불교신자들과 시민들이 사찰 한쪽에 마련된 탁자에서 노란리본을 작성해 사찰 곳곳에 내걸었다.

이들은 리본에 '존경하옵는 노무현 대통령님 그 모습 그 기백으로 이 땅에 다시 오소서', '국민들의 희망은 앞으로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등 자신의 심정을 전했다. 특히, '숙제를 잘 풀겠습니다' 등 남은 사람들이 노 대통령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한다고 밝힌 리본이 눈에 많이 띄었다.

"국민의 마음 전하고자, 유족 요청보다 만장 1000개 더 많들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불교신자와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 노제에 쓰일 만장을 쓰고 있다.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불교신자와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 노제에 쓰일 만장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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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부터 만장을 만들기 시작한 조계사에서는 29일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당일 오전 11시까지 2000개의 만장이 만들어진다. 이 만장들은 29일 오전 영결식 후 서울광장에서 열릴 노제에 사용된다. 만장은 세로 2m·가로 60~70cm의 크기로 3m 높이의 대나무 깃대에 내걸린다.

만장 제작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박명근 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의례학과 외래교수는 "노 전 대통령 유족 쪽에서는 만장 1000개를 만들어달라고 했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1000개를 더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노 전 대통령 장례가 불교식으로 치러지게 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돕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됐다"며 "만장 대부분은 생사의례학과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제작을 지원하고, 불교신자들이나 조계사를 찾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이 만장을 쓰는 것을 보면서 여러 번 울컥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불법체류자 신분에서 벗어났다는 한 중국 동포의 만장을 대필하면서 울었다"며 그 만장 내용을 전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당신은 우리 중국 동포들에게 진정한 챔피언입니다. 우리 중국 동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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