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희망근로 신청자입니다. 임금 중 상품권으로 50%를 지급한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유효기간 3개월... 벼랑 끝까지 몰린 저소득층에게 지금 당장 시급한건 현금입니다. 물론 쌀도 사고, 김치도 사고, 반찬도 사야겠지요. 하지만 한 달에 40만원어치나 부식을 사야하나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 지난 22일 '일체유심조'라는 누리꾼이 '그냥 돈으로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의 일부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2009 희망근로사업'을 꼬집은 글이다.

 

희망근로는 어떤 사업?

 

정부는 취약계층의 생계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희망근로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주일 후인 오는 6월 1일 시작해 11월에 끝나는 6개월짜리 단기 사업이다. 전국에서 25만여 명이 참여하고 1조7천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규모면에서 매머드 급이다.

 

희망근로의 신청자격은 사업개시일 현재 만18세 이상 근로능력자로 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이하, 재산이 1억 3500만 원 이하인 자가 우선 선발대상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제상황 등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조정 선정할 수 있도록 했다. 1가구 1인 신청이 원칙이나 청년실업자의 경우 1가구 2인도 참여가 가능하다.

 

참여자들은 사업이 시작되면 국민경제적 파급 효과가 크고 조기 사업진행이 가능한 4대 랜드마크 사업인 백두대간 보호사업, 동네 마당조성, 공장진입로 확포장, 자전거 인프라 개선 등에 투입된다. 이밖에 자치단체에서 발굴한 자체 사업에도 참여한다.

 

임금은 월 83만원 수준으로 이중 상품권의 지급 비율은 50%가 원칙이며 유통기간은 3개월이다. 상품권은 1천원권, 5천원권, 1만원권 등 3종이다.

 

상품권의 사용지역은 광역자치단체로 제한을 원칙으로 하되 광역과 기초자치단체가 협의하여 시군구 기초 자치단체 범위로 사용지역 결정이 가능하다. 사용범위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으로 대규모 점포, 기업형 슈퍼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전체 임금의 30~50% 상품권 지급 논란

 

사업 신청자들 사이에선 임금의 30~50% 상품권 지급이 가장 큰 논란거리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사용범위도 제한했고 사용기간도 3개월로 한정해 이 기간에 사용하지 못하면 휴지조각이 된다. 정부의 예산 조기집행이 저소득층에게 주어지는 임금사용에도 전염병처럼 옮겨진 형국이다.

 

정부의 명분은 지역경제 활성화다. 임금의 일부를 상품권으로 지급해 신속한 소비를 유도하고 경기침체 영향을 직접 받는 재래시장과 영세상점의 매출을 증진시켜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1999년 경제 불황 당시 1인당 2만엔(20만원 가량) 상당의 상품권을 나눠줬다. 하지만 대부분 '카드깡'으로 현금화해 저축을 하는 바람에 소비진작 효과는 발행액의 10%에 그쳤다는 분석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현금 지원이 낫다고 사업 신청자들은 입을 모은다.

 

또한 일본인들의 경우 무상으로 상품권을 받았기 때문에 불만이 없었지만 이번 사업 신청인들은 노동의 댓가를 상품권으로 받는데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는 상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월 23일 아세안+3(한·중·일) 특별 재무장관회의가 개최된 태국 푸켓에서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사회 소외계층에게 현금을 주면 소비와 연결되지 않고, 소비쿠폰을 주자니 일본의 카드깡처럼 악용되는 경우가 있다"며 "복지전달 체계를 개선하지 않고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부작용을 우려했을 정도다.

 

이밖에 정부는 상품권 지급이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43조 1항을 정부가 나서서 위반했다는 논란이 일자 지난달 21일 부랴부랴 고용정책기본법 시행령 21조의2(공공근로사업 등의 참여자에 대한 급여의 지급)를 끼워 넣으면서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상품권 발행과 유통에 300억 이상 낭비

 

상품권의 1장당 발행 금액은 최소 50원이다. 월 83만원을 받는 희망근로 참여자가 급여의 50%인 41만5000원 정도를 상품권으로 받을 경우 적게는 42장을, 많게는 415장 정도의 상품권을 받을 수도 있다. 1인에게 주어지는 상품권의 발행비용이 평균 1만1425원이란 계산이다.

 

인쇄업자들은 상품권 발행하는 데만 최소 100억 원 이상이 소요될 걸로 보고 있다. 또한 유통업자들은 상품권 발행 비용에 유통과 회수 비용까지 추가하면 상품권 발행에 따른 부대 비용이 300억원 이상 될 것으로 예측했다.

 

충북지역은 12개 시군 중 청원군만 제외하고 지역상품권을 발행해 유통 중이다. 예산 낭비를 줄이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 상품권 사용을 건의했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와 함께 공무원들은 가맹점 모집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충북의 한 자치단체의 경우 지난 3년간 지역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을 꾸준히 모집한 결과 4500여개의 점포 중 1500여개를 가맹점으로 등록시켰다. 이는 지역 점포 3곳 중 1곳만이 가맹점으로 등록한 결과로 아직도 사용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6개월짜리 단기 사업에 얼마나 많은 점포를 가맹점으로 등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한숨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가맹점 등록률이 떨어질 경우 쓰지도 못할 "상품권을 줘놓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는 민원이 제기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공무원들 월급 50%, 3개월짜리 상품권으로 지급하라?

 

정부의 이번 사업에 국민들의 불만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어떤 이는 "공무원들의 임금도 50%를 상품권으로 지급하라"고 질타했고, 한 누리꾼은 "부자감세는 어마어마하게 해주면서 100만원도 안 되는 저소득층 임금을 상품권으로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혀를 차기도 했다.

 

아래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올라온 국민들의 목소리를 정리한 내용이다.

 

제목 : 그냥 돈으로 주세요, 필명 : 일체유심조, 일자 : 2009.05.22

 

"오랜 실직으로 눈물도 말랐다. 일만 시켜 주신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다. 그래서 희망근로를 신청했는데 임금 지급방식이 기가 막혔다. 가뜩이나 적은 보수 현금 나갈 때가 얼마나 많은데... 참여자로 선발이 되어도 할까 말까 망설여진다.

 

국회의원이나 공무원들의 임금의 50%를 상품권으로 지급하게 되면 재래시장 영세 상인들은 부자가 될지도 모른다. 대형마트, 백화점은 모조리 망하게 되겠지... 상품권가맹점으로 등록하지 못하는 길거리 노점상은 더욱 생계가 어려워 질것이다. 이 정부가 서민을 죽이는군. 제발 돈으로 달라"

 

제목 : 임금지급 뉘 발상인가?, 필명 : 생명나무, 일자 : 2009.05.13

 

"'희망근로 프로젝트'란 명칭만 봐서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소 작은 희망을 안겨주는 듯했다. 임금지급 뉘 발상인지 소비를 진작시키고 경제 활성화를 꾀한다지만 저소득층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어디 가당하기나 한 것인가?

 

월세나 교육비를 상품권으로 받아준다면 그나마 모를까, 임금 중 상품권으로 지급받고 난 나머지가 고작 현금 40~50만원 정도인데, 그 돈으로 월세와 교육비나 제대로 감당할 수나 있을지?

 

수 억원대의 돈을 마치 강아지 새끼 나눠주듯 쉽게 주고받은 것에 익숙해져서 감각이 무뎌진 탓인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서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임금 중 30~50%를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것을 반대한다"

 

필명 : 나는 나다, 일자 : 2009.05.14

 

"일본이 과거 불황기에 소비를 극도로 자제하고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만을 하였기에 나온 정책이 상품권을 무상으로 나눠주는 것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무상이 아니라 적정한 노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아닌 상품권을 받는 것이다.

 

이 사업에 참여한 저소득층은 결국 상품권 판매시장에서 카드깡을 통해 현금으로 소비할 것이다. 차라리 공기업, 공무원들의 월급을 상품권으로 받아서 소비를 진작시켜라. 왜 어려운 분들에게 소비하라고 상품권 주나?"

 

제목 : 희망근로사업의 월급을 쿠폰으로 준다?, 필명 : 닉네임뭘로하지, 날짜 : 2009.05.22

 

"쿠폰 받아서 집세, 전기수도세, 전화요금, 각종세금, 보험료 이런 것들을 해결 못한다. 공과금 내고나면 쿠폰만 남을 텐데 과연 그걸로 생활이 될까? 난 왜 월급을 쿠폰으로 주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 엄연한 노동의 대가를 쿠폰으로 주다니...

 

사람이 정당하게 일한 노동의 댓가로 받는 돈으로 무엇을 하든 그것은 그 당사자의 마음이다. 그 사람의 권리다. 이것이 용인 될 수 있단 말인가?

 

시대가 완전히 거꾸로 간다. 10년도 모자라서 100년, 200년 뒤로 가려하고 있다. IMF때도 이러지 않았다. 공공근로사업을 해도 사람들이 많이 몰린 이유는 돈을 줬기 때문이다. 어떤 자가 이런 정책을 만들었는지 머리의 뇌세포를 구경하고 싶은 심정이다"

 

정부의 '2009 희망근로 프로젝트'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어떤 희망의 날개를 달아 줄지는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시작부터 불거져 나온 우려의 목소리를 정부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태그:#희망근로, #행정안전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