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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무회의 모습. 사진은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안건을 심의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국무회의 모습. 사진은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안건을 심의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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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결혼식을 하고 나서 시작된 신접살림.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혼자 휘뚜루마뚜루 지내다가 둘이 사는 것 자체도 어렵거니와 무엇보다 독립하여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보니 내가 그동안 부모님 밑에서 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소위 사람 사는데 필요한 것들이 의외로 많았었다.

주말만 되면 우리가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하시는 부모님들과 유부남이 되어서 이젠 놀아주지 않는다며 투덜거리는 친구들. 생전 처음 보는 각종 세금에 관리비, 그리고 일상을 영유하기 위한 잡스러운 각종 생활비 등. 아, 우리 부모님들은 이렇게 사셨구나. 뒤늦은 깨달음.

그 중에서 나의 월급이 하나의 살림을 차리고 인간 노릇하기에는 결코 넉넉지 않음을 깨닫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경조사비, 특히 결혼식 비용이었다. 물론 혼기 찬 내 나이도 나이고, 계절도 계절이기에 결혼식이 자주 있을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한 달에 30만원 넘게 지출되는 결혼식 부조금은 분명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본전 생각에 결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수밖에.

그러나 그렇다고 그 평균적인 결혼식 부조금 액수를 탓할 것도 아니었다. 내가 직접 결혼을 해 본 결과 결혼식에 드는 비용이 터무니없이 높은 바, 남지도 않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호화스럽게 한 것도 아닌데 무어가 그리도 비싼지.

결혼식 관련 청와대 발언 진위 의심스러워

결혼식장에 꽃 몇 송이 꼽아놓고 100만원, 한 번 입고 말 드레스에 100만원, 결혼식에 걸리는 사진이니까 300만원 등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노라면 돈 만 원이 얼마나 우스운 금액인지 알 수 있다. 평생에 한 번뿐이라는 마케팅과 앞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 되는 그 숱한 허례허식들.

정부의 도 넘은 간섭
▲ 결혼식 정부의 도 넘은 간섭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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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민초들의 아픔을 헤아렸던 것일까? 20일 청와대는 뜬금없이 호화결혼 풍조를 막기 위해서라며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당부하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가운데 개최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성숙한 선진국이 되려면 겉만 요란한 허례허식과 낭비를 없애고 결혼의 실질적 의미를 살리는 새로운 결혼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요지의 논의를 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는 것이다.

"제도개선도 개선이지만 그보다 먼저 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지도층 솔선수범이 우선돼야 한다"며 "이를 위한 언론의 적극적 관심과 선도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나?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시다. 현대 결혼문화의 허영성과 지도층의 솔선수범의 필요성, 게다가 새로운 결혼 문화를 만들어야 성숙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팁까지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는 청와대의 센스.

그러나 청와대의 위 발언은 그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의심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진위를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하필 청와대는 지금 이 시기에 무슨 맥락으로 뜬금없이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까? 인천 교육감이 부적절하게도 요 근래 부조금을 많이 받았다더니 그 사건이 화제가 된 것일까? 그것도 아님 수석비서관 회의 도중 누군가가 청첩장을 돌리자 화제가 그리로 돌아간 것일까?

돈이 전부가 돼버린 사회, 지도층은 자유로운가

우선 청와대는 결혼식 운운할 자격이 없다. 결혼식 문화란 것이 결코 결혼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문화와 얽혀 있는 바, 청와대에 들어가 있는 소위 지도층은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결혼식이 호화로워지는가? 그것을 결국 결혼식이라는 자리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과시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전통적인 개념의 계급이 해체되어지자 그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계급적 우월성을 과시해야 했던 소위 지도층. 결국 돈이 전부가 되어버린 사회 속에서 그들이 속한 전략은 말도 되지 않는 소비를 통한 자본의 과시 아니었던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와 입고 들고 다니는 의류와 장신구가 자신의 계급과 인격을 대변하는 우리 사회. 청와대가 운운하는 지도층들은 결코 이와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이와 같은 현상은 이번 정부 들어서 더욱 극심해진 것이 사실이다. 기존의 암묵적인 터부시와 달리 대통령이 아예 대놓고 정치를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며 소위 '강부자'들을 두둔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돈을 벌었느냐와 상관없이 돈 자체가 중요한 시대. 결국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가 결혼식 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청와대의 결혼식 발언이 불안한 또 하나의 이유는 지금까지 행태로 추측하는 바, 청와대는 결혼과 관련하여 역시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과격시위를 막기 위해 시위 자체를 불허하는 현 정부가 허례허식의 결혼식을 막기 위해 결혼식을 법적으로 규정하려고 들 것은 아닌지.

청와대 발표의 마지막 내용은 이와 관련한 그들의 자만심을 읽을 수 있다. 언론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사람들을 계몽시키면 하나의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그들의 착각. 청와대는 아직 국민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결혼식에 관심 갖는 청와대..."너나 잘 하세요"

혹자들이 이번 청와대의 발표를 보면서 박정희의 가정의례준칙을 떠올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재 청와대의 사고방식이 1960~70년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잘 살아 보세'를 외치며 국민계몽을 외치던 박정희와, '선진국을 향해'를 외치며 끊임없이 국민들을 다그치고 있는 이명박. 과연 정부는 이후 어떤 정책을 내놓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것인가.

정부는 최근 부동산시장의 규제를 풀어주면서 경기활성화를 외치고 나섰다. 투기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국내경기가 진작된다면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뿐인가. 공교육 강화 사교육 축소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국제고다, 특목고다 하여 사교육시장을 활성화시켜 어쨌든 부모들의 쌈지 주머닛돈을 학원가로 유통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허례허식의 결혼식이라지만 정부의 논리라면 그것 역시 국민들의 소비를 촉진하는 일일 터인데 무엇 때문에 결혼식만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일까? 건설자본, 사교육자본과 달리 결혼과 관련된 자본들은 그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기 때문일까?

어쨌든 이번 발표는 안 그래도 국내외의 현안 때문에 바쁘실 청와대가 나서기에는 너무 사소한 문제였지 싶다. 한마디로 정의하자.

"너나 잘 하세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청와대,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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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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