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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대전 읍내동 화물연대 앞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시위대
 16일 대전 읍내동 화물연대 앞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시위대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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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대국의 꿈과 노동자 현실

이 땅의 노동자들은 재벌과 다국적 기업에 노동력을 판매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의 선거공약대로라면 국민소득 4만 달러와 세계 13위의 경제규모에서 4위의 경제 강대국을 향해 열심히 땀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 개국 중에서 장시간 노동, 연간 3000여명에 달하는 산재사망자수, 교통사고 사망률, 중대질병 사망률 등에서 최고 위치에 있습니다. 미래의 노동자가 될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정도에서는 OECD국가 중 1등이랍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느끼는 평균행복지수는 세계 230여 개국 중에서 100위 바깥에 있습니다. 그러니 밑바닥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우리나라 노동법상 법정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입니다. 그러나 화물택배 노동자는 하루 평균 15시간을 일합니다. 유럽과 달리 직장 근처에 집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출퇴근 시간까지 합하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가히 살인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대 수입(매출액)이 한 달 250만원이지만 소위 말해 자영업자인 사장이므로 모든 비용(100만 원 정도)은 자기가 부담해야 합니다. 그나마 점점 경쟁이 치열해져 수입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물류회사와 운송계약을 맺은 하청노동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4대 보험도 없습니다. 노동자면서 사장인 '특수고용 노동자'에 갇혀 있습니다. 화물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인정하지 않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목을 매는 노동자 사장님

아카시아 만발한 봄날에 한 노동자가 사랑하는 어린 아이와 아내를 두고 노동자 투쟁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수배돼 목을 맨 채 죽었습니다. 박종태 열사는 대한통운으로부터 해고된 78명 조합원 복직, 노동기본권 보장, 노동운동 탄압 중단, 화물연대 인정, 운송료 삭감 중단(건 당 30원 인상 요구)을 주장하며 투쟁했습니다.

대한통운은 5월 19일 모든 조간신문 1면 하단 광고를 통해 고 박종태 노동자는 자사와 무관하며, 수수료 인상을 합의한 적 없고, 해당 화물연대 택배기사와 대화를 지속해 왔으며 대한통운은 4년간 노동부 선정 노사문화 우수기업이라고 했습니다. 대한통운 노조 역시 모든 신문 2면 하단 광고를 통해 화물연대의 불법행위를 중단하라고 경고했습니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죽창시위로 한국 이미지가 큰 손상'을 입었다고 하셨습니다. 불에 타 죽은 용산철거민들이나 목을 맨 노동자들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대한민국의 대외 위신이 더 소중했던 모양입니다. 지난 5월 16일 대전에서 열린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집회에서 사용된 만장 깃대가 미리 준비한 죽창으로 보고받으셨겠지요. KBS 저녁 9시 뉴스엔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갈라진 깃대로 경찰을 공격하는 장면만 나오더군요. 다른 방송과 다르더군요.

KBS 사장을 바꾸고 KBS를 전면 개편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왜 경찰이 대한통운 앞까지 행진을 일방적으로 불허하고 물대포를 쏘면서 행진대오를 자극했는지는 보고받지 못했습니까? 미국은 백악관 앞까지 행진도 하고 텐트 농성도 하더군요. 한국에서는 불허하는 야간집회와 달리 일본은 하루 전에 담당 경찰에 전화만 해도 방위청 앞에서도 야간집회가 자유롭더군요. 집회와 시위 문제는 사상의 자유와 함께 할 얘기가 많지만 이 정도로 하지요.

진짜 죽창으로 보여요?

경찰이 수거한 깃대 620개 중 끝이 뾰족한 것은 20개라고 했습니다. 죽창이라고 하면 그냥 대나무 끝이 갈라진 것이 아닙니다. 전쟁에 사용하는 일종의 무기입니다. 동학농민군이 준비한 정도는 되어야 죽창이라 할 것입니다. 동학혁명 때 농민군들이 죽창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은 죽산(竹山)으로, 죽창을 내려놓은 흰옷의 대오는 백산(白山)으로 표현했습니다. 근대식 무기인 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 맞선 구한말 민중들의 저항은 그저 죽창이나 농기구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흰옷에 선혈이 낭자한 채로 농민군의 시체는 산을 이루었습니다. 한 세기가 흐른 지금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벅차 죽창으로 무장한 채 정부와 싸울 여유가 없습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동료에 대한 분노가 일시적으로 표출된 것이지요.

만약 경찰이 대한통운 대전지사까지 행진을 허용하고 대한통운 측에서는 화물연대 대표를 맞아들여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대화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런데도 민주노총이 추락한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6월 투쟁을 촉발시키기 위해 불법 폭력으로 경찰과 사측에 맞서라고 지침을 내렸을까요?

경찰이나 관계부처가 죽창으로 무장한 화물연대 노동자의 불법 폭력을 행사했다고 보고하더라도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한 번 더 숙고해서 말씀하셔야 합니다. 한국노총과는 정책연대도 하면서 대통령 당선 이래 민주노총 방문약속도 취소한 뒤 한 번도 직접적인 대화를 한 적이 없으시지요. 정부가 말하는 대로 화물연대는 사용자 단체라서 민주노총 소속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사장님들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인지 한 번이라도 귀 기울여 보셨는지요?

세상의 모든 현상에는 그 원인이 있습니다. 사실도 아니고 비유도 틀렸지만 대통령이 직접 '죽창'이라고 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 죽창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국방의 의무와 달리 노동자 시위대와 맞닥뜨리는 어린 전경들의 처지는 매우 안타깝습니다. 몇 년 전 부안 핵 폐기장 반대 투쟁 때 늙은 아버지와 이를 막는 아들 전경이 만났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은 경찰과 적대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경찰의 뒤에 숨어서 이익을 챙기고 싸움을 붙이는 세력이 누구인지 묻고 싶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기업 그리고 돈이나 권력깨나 가진 사람들이 아니길 바랍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들의 마음 속 싱싱한 대나무는 언제든지 분노로 변할 수 있음을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태그:#죽창, #화물연대, #불법집회, #특수고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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