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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처럼 밀려오는 잔잔한 파도
 그리움처럼 밀려오는 잔잔한 파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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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서면 언제나 밀려오는 것은 파도와 바람만이 아니었다. 그리움, 무언지 모를 그리움, 정체도 뚜렷하지 않은 막연한 그리움, 그랬다, 그리움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젖나보았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충남 태안의 안면도 꽃박람회장을 찾았다. 먼저 보령 대천항으로 가 그곳에서 연락선을 타고 안면도 영목항을 거쳐 박람회장으로 간 것이다. 그냥 태안을 거쳐 박람회장으로 곧장 가면 될 것을 왜 굳이 대천으로 멀리 돌아 배를 타고 갔을까. 모두들 바다가 그리운 때문이었다.

목적지가 꽃박람회장이었지만 꽃구경은 건성이었다. 모두들 바닷가에만 관심이 많았다. 영목항에서 점심을 먹고 잠깐 쉬는 동안에도 아내와 여성들 몇은 근처에 있는 가까운 작은 섬에 다녀왔다. 그리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지천으로 흐드러진 노란 유채꽃밭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바닷가 언덕 꽃밭에 든 여심
 바닷가 언덕 꽃밭에 든 여심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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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장을 대충 둘러보고 나온 일행들은 또 다시 꽃지해수욕장 바닷가에 나와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를 바라보며 바다의 향수를 달랜다. 그렇다고 일행들 중에 바닷가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두들 바다와는 거리가 먼 뭍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대천에서 하룻밤을 묵을 예정이어서 다시 영목항으로 돌아와 연락선을 기다리게 되었다. 시간 여유가 생기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술집으로 달려갔지만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시 바닷가로 나갔다.

멀리 가까이 크고 작은 섬들이 바라보이는 바닷가엔 잔잔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온다. 썰물로 드러난 그 바닷가 갯벌엔 60대로 보이는 부부가 쪼그리고 앉아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내와 두 명의 일행여성들이 가까이 다가간다.

꽃지해수욕장에서 친구들 부부, 뒤에보이는 배경이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꽃지해수욕장에서 친구들 부부, 뒤에보이는 배경이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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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이 널려 있네요, 우리들도 굴을 따서 한 번 맛볼까요?"

다른 60대 부부가 따고 있는 것이 굴이었다. 그러나 말이 갯벌에 널려있는 굴이지 굴 따는 일이 보기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렵게 몇 개를 따서 짭짤한 굴 맛을 내게 보여준 아내가 그만 일어서고 만다.

"그냥 바다구경이나 해야겠네, 참 좋다, 이렇게 바닷가에 나와 서있으니까."
아내의 눈빛은 어느새 그리움에 젖어든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충청도 산골이 고향인 아내에겐 어린 시절 친하게 함께 자란 소꿉친구가 있었단다. 그런데 그녀는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먼 곳으로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떠난 곳이 이쪽 바다 어디쯤엔가 있는 섬이었는데 그곳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부모님을 도와 조개도 캐고 굴도 따며 자랐다. 그런데 그렇게 자란 그녀가 같은 마을에 사는 청년과 결혼하여 살았는데 아이 둘을 낳은 어느 해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그만 실종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굴을 딸까, 조개를 캘까
 굴을 딸까, 조개를 캘까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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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그 친구 저기 어디쯤 섬에서 지금도 살고 있을 거야."
어느 해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서 듣게 된 그녀의 삶은 외롭고 안타까웠다고 한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다고 바다와 섬에 얽힌 추억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 친구 하나는 젊었을 때 저 대천해수욕장에 왔다가 만난 사람과 결혼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걸요. 그 친구도 산골에서 태어난 친군데, 그래서 그런지 그 친구는 바다를 엄청 좋아해요."

다른 일행 여성도 자신의 추억이 아니라 친구의 추억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구에겐들 바닷가의 추억 하나쯤 없겠는가만 자신의 추억은 그냥 가슴 속에 묻어두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바닷가에 올 때마다 살며시 꺼내들고 그리워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다에 떠있는 섬과 배들
 바다에 떠있는 섬과 배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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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림자에 어리면서
정든 배는 떠나간다.
보내는 내 마음이 야속하드냐
멀어져가네 사라져가네
쌍고동 울리면서 떠나간다

바닷가에서 한 시간을 기다린 후 대천행 연락선에 오르자 선실 누군가의 녹음기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울려나온다. 1970년대 초 '키보이스'가 불러 인기를 끌었던 '정든배'였다. 목소리는 구성졌지만 항구의 이별을 노래한 서글픈 노래다.

예나 지금이나 항구에 들어오고 떠나는 수많은 배들이 어디 이별만 있겠는가만 그 시절 노래 속의 항구는 대부분이 서글픈 이별이 주제였다. 작은 항구를 출항하는 연락선 선실에서 듣는 항구의 이별노래는 또 다른 향수를 불러온다.

작은 배를 타고 떠나는 저들은 어디로 갈까
 작은 배를 타고 떠나는 저들은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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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달콤한 사랑을 속삭여 줘요

연인들의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해도 (말은 안 해도)
나는 행복에 묻힐 거예요

불타는 그 입술 처음으로 느꼈네.
사랑의 발자욱 끝없이 남기며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달콤한 사랑을 속삭여 줘요

지금은 음악목사가 되어 있는 가수 윤항기가 리더를 맡았던 그룹사운드 '키보이스(key Boy's)'의 또 다른 곡 '해변으로 가요'란 노래다. 1963년도에 결성되어 우리나라 그룹사운드의 효시로 불리던 이들이 '정든배' 이전에 발표했던 두 곡의 노래 중 한 곡이다. 해변으로 가요'가 끝나자 노래는 또 다른 곡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저 생선들도 지금 바다를 꿈꾸고 있을까
 저 생선들도 지금 바다를 꿈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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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목항을 떠나는 갑판 위에서
 영목항을 떠나는 갑판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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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만난 그 사람
파도위에 물거품처럼
왔다가 사라져간 못 잊을 그대여
저 하늘 끝까지 저 바다 끝까지
단둘이 가자던 파란 꿈은 사라지고
바람이 불면 행여나 그님인가
살며시 돌아서면 쓸쓸한 파도소리

역시 키보이스의 '바닷가의 추억'이란 노래다. 잊고 있던 옛 노래를 그것도 바다 위를 달리는 연락선 위에서 듣고 있노라니 추억이 새롭다. 1970년대 초는 내 젊음도 한창일 때였다. 그 시절에 즐겨 불렀던 그 노래를 거의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것도 연락선 위에서 듣게 되다니.

바다의 이정표 등대
 바다의 이정표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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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선에서 내라는 사람들
 연락선에서 내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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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이스는 당시 한국의 비치보이스(Beach Boy's)로 통했다. 바로 이들이 부른 바닷가 이야기를 노래한 세 곡 때문이었다. 1988년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한 비치보이스는 1961년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데뷔하여 그 유명한 '서핑 유에스에이'를 불러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그룹사운드다.

영목항을 출항한 연락선은 바다 위에 떠있는 수많은 섬과 섬 사이를 헤집고 대천항으로 달렸다. 연락선을 따르는 수많은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는 소리도 정겹다. 그렇게 40여 분을 달린 연락선 앞으로 저만큼 보초처럼 서있는 두 개의 등대가 바라보인다.

등대는 바다의 이정표다. 대천항 포구를 지키고 있는 등대들이었다. 포구안으로 들어선 연락선은 곧 선착장에 몸을 붙인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뭍으로 몰려나간다. 그러나 우리 일행들 몇은 내릴 생각을 잊어버린 듯 지나온 뱃길을 뒤돌아보고 있었다. 그 어디쯤에서 그리운 추억 한 자락이라도 찾아보려는 듯.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바다, #항구, #이승철, #섬 ,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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