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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밝은 오월의 일요일 오후 도로변에 핀 아카시아가 향기를 발한다. 사회복지 시설을 찾아가는 차속에서 아카시아 향보다 더 진한 향기가 난다. 향기를 피우는 이들과 함께 동승했다. 예배를 마친 여수 성광교회 '찾아가는 의료 선교팀' 일행은 '더불어 사는 집'을 방문했다. '더불어사는 집'은 여수시 소라면 덕양의 장애인과 노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랑 공동체.

 

의료 선교팀은 성광교회 교인 중 6명의 의사(내과, 피부과, 한방과, 치과, 이비인후과)들로 구성된 '누가회'와 자원봉사자 6명으로 구성된 의료봉사모임이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오후 여수시에 소속된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여 분야별로 봉사를 한다. 이중 K모 피부과원장과 Y모 약사는 매주 봉사를 하며 나머지는 번갈아 참여한다. 굳이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는 이유를 물었다. "좋아서 하는 일이고 남의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아요." 

 

더불어 사는 집은 2001년 병원 원목으로 있던 김성곤 목사가 기독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세웠다. 말기암환자와 노환 치매 뇌졸중 중증지체장애 정신지체 장애우 등이 더불어 사는 이들이다. 입소 대상은 65세 이상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이거나 중풍 치매 등 노인성 질환으로 돌봄이 필요하거나 중증 정신지체 장애인들이다. 현재 40여명의 환자들이 생활하고 있다.

 

설립 후 목사 부부와 시에서 지원해주는 자활인력 2명으로 시작한 살림은 빠듯했다. 한 겨울에 경유로 난방을 하면 삼백만원 정도의 유류비가 들어 감당할 수가 없었다. 생각다 못한 김목사는 산에 가서 화목을 구해 난방을 시작했다. 화목 난방은 경비도 절감되고 유류난방에 비해 건조하지 않아 노인들의 감기예방에도 효과가 있었다.

 

2005년 11월 어느 날 화목을 하던 김 목사는 구르는 통나무에 깔려 운명했다. 현재 시설을 운영하는 원장은 부인인 문영희씨다. 그 당시 상황을 물었다.

 

"경황이 없었죠. 슬퍼할 겨를이 없었어요. 어르신들이 안계시면 잠깐 쉬기라도 할텐데 노인들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계속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하고 불을 때야 하기 때문이죠. 전에는 사무적인 일과 밥만 할 줄 알았었죠. 나중에야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았습니다.

 

사고 후 주위의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공단 폐자재나 벌목, 간벌한 곳에서 나무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장작을 패줘요. 장기 요양시설이 되면서 후원자들이 많이 줄었어요. 저는 보람보다는 감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여기계신 모든 분들은 축복과 감사한 생활을 해요. 이분들을 보면서 눈높이가 맞춰져요. 이들의 맑은 영혼을 보면 행복해요

 

이분들이 처음 입소할 때는 버림받았다는 마음의 상처와 육체적 질환을 가지고 와요. 원에 와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지는 걸 보면 행복해요. 움직일 수 있는 노인들에게는 일부러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돕도록 합니다. 거들면서 소속감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겁니다. 십년 전에는 그저 편히 쉬고, 먹고, 자는 것만해도 감사해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죠"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은 아토피나 소양증이 많다. K원장은 "노인들은 원래 피부가 건조해서 생기는 가려움증인 소양증이 많아요. 치료를 계속할 때마다 어르신들의 피부가 좋아져요"하며 반색이다. 치료받던 한 할머니는 "피부도 고와지고 이빨까지 하면 새각시 되겠네, 영감님 하나 구해줄까?"하자 할머니가 좋아하시며 웃는다.

 

오늘 봉사에는 여수시 보건소에서 치과진료차량을 지원했다. 여수시 의사협회 회장인 정영완치과 원장은 "노인들은 나이가 들면 잇몸이 수축되기 때문에 기존에 했던 틀니가 헐거워져요. 그래서 틀니 치료와 잇몸치료를 주로 했다"고 밝혔다. 틀니 치료를 마친 할머니 한 분에게 좋은지 물었다.

 

"하머라 좋지라우, 전에는 뺐다 박았다 얼매나 힘들었는디."

 

치료에 드는 약값은 Y약국이 부담한다. 한 달 약값만 백만 원쯤 드는데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약국명 밝히기를 극구 사양한다. 부대경비는 나머지 회원들이 부담한다. 회원 중에는 여수시 부의장인 강진원 의원과 천순애 의원이 있다. 두 의원이 말했다.

 

"우리는 의료기술이 없으니까 뒤에서 열심히 도와주기만 합니다."

 

 

여수시 보건소에 근무하는 유기홍씨의 아들은 중학생이다. GS칼텍스 장학생에 선발돼 장학금으로 받은 25만원을 5개의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했다는 문영희 원장의 설명이다.

 

"엄마가 봉사활동을 다니니까 본받은 것입니다." 

 

한화석유화학에 근무하는 이광식씨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돕는다고 하면 받는 사람이 기분 나빠 하니까 나눈다"는 그는 "요즘 세상은 가진 사람이 더 가질려고 하고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 것까지도 빼앗아 가려고 해요. 퇴직하면 뭘 할까 생각해봤는데 봉사가 가장 좋아 나누는 삶을 살기로 했다"고 했다.

 

다운증후군 환자들은 병원치료를 할 때 대개 거부하기 때문에 묶어 놓고 치료까지 하는데 병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원만하게 치료를 했다. 이동 진료차가 병원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전엔 교회 오후엔 봉사. 거의 한 번도 빠짐없는 그들의 일요일 일정이다. 진료가 끝나고 기도를 하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오월의 향기가 묻어난다. 

덧붙이는 글 | 남해안신문과 큰 여수 봉사 소식지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의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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