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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길에 갈대광장 벤치에 앉아계신 소누스의 서현석 지휘자님을 만났습니다.

 

"집사람의 명으로 쓰레기봉투를 사 오다가 이 자연의 풍경이 좋아 넋을 놓고 보고 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직은 정년퇴임하셨지만 여전히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서, 또한 각종 오케스트라의 지휘로 활발한 활동을 거두지 않고 있는 분입니다.

 

"이 카네이션은 누구에게 받으신 거예요?"

 

제가 물었습니다.

 

"블루메의 백순실 화가의 따님이 만들어 준 것입니다. 병원에 계신 장모님께 달아드리려구요."

 

칠순을 목전에 두신 분이 부모를 위해 준비하신 카네이션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부모님의 은정(恩情)에 대한 인식은 나이를 먹을수록 짙어지는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의 부모에 대한 효심은 형식에 치우친 반면, 스스로 자식을 키우고 부모의 입장이 되고나서야 비로소 그 노고에 대한 인식이 구체적이 됩니다. 그러나 마음뿐이지요. 부모를 받들어 모시기에는 스스로에게 너무 바쁘고 또다시 자신의 자식들에게 애정을 쏟느라 좀처럼 부모님에게 시간을 할애할 짬을 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버이날에 달아주는 것으로 불효에 대한 위안을 삼는 카네이션에의 풍속조차 '늦은 효심'의 후회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미국 버지니아의 안나 자이비스란 소녀가 어머니의 묘지 주위에 카네이션 꽃을 심고, 같은 꽃을 가슴에 달아 생전의 불효를 뉘우쳤습니다. 그녀는 후에 어머님에 대한 효도를 일깨우는 운동을 전개했고, 그 결과 1904년에 시애틀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어머니날 행사가 개최되었지요.

 

어머님이 살아계신 분은 가슴에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어머님이 돌아가신 분은 자신의 가슴에 흰 카네이션을 달아 어머님을 추억했습니다. 그러나 효도는 추억하는 것으로 대치되거나 보완될 수 없습니다.

 

저는 단지 멀리 계신 부모님께 문안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도 딸들로부터 안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만이 평소 무심했던 죄책감을 덜어내는 위안일 뿐입니다.

 

헤이리의 모든 가로를 빈틈없이 메웠던 3일 전 '어린이날'의 그 많든 사람과 차는 모두 어디로 갔는지……. 오늘 헤이리의 적막이 '치사랑은 없다'는 말을 증거하는 것 같습니다.

 

보험금을 납입하고 있는 보험회사나 자동차를 구입한 적이 있는 자동차딜러에게 받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라는 마케팅용 대량발송 문자메시지에서나 위로받는 것이 고작인 날이 목전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슬퍼지는 '어버이날'입니다.

 

 

<효경(孝經)>에 자로(子路)가 스승인 공자를 뵙고 효심을 내보이는 내용이 있습니다.

 

"제가 부모를 섬길 적에는 백리 밖에 가서 쌀을 가져다 봉양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시고 저는 초나라 대부(大夫)가 되어 곡식 만석을 쌓아놓고 먹게 되었사오나 이제 와서는 쌀을 져다 효도를 하고 싶어도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한스러운 일입니다."

 

부모님의 생전에 백리 밖의 쌀을 가져다 봉양한 자로조차 만석 쌀을 두고 부모를 섬길 수 없음의 회한(悔恨)을 토로하는데 밝은 얼굴과 공손한 말씨로 조석의 안부도 여쭈지 못한 이에게는 그 통한할일이 얼마나 클까요.

 

효도야말로 현재진행형이 되어야할 일입니다. 우리는 내가 낳은 아들딸의 스킨십에만 열중한 나머지 부모님에도 '아버지!', 그리고 '엄마!'라고 부르는 자에게만 위로받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잊곤 합니다.

 

자식은 늘 웃고 계신 부모님의 얼굴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일없다'는 말씀만 기억하지요. 그 웃음 뒤에서 울고 계실 부모님의 마음과 늘 '일없다'는 말씀 뒤에 묻은 소외와 외로움을 좀처럼 읽을 수 없습니다.

 

저의 이웃, 청향재의 송효섭, 한미란 부부께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일주일치의 찬을 준비하셔서 서울에 계신 아버님을 찾아뵙는 일을 예나 지금이나 거르지 않고 있습니다. 한 선생님께서 직접 조리하신 찬을 보자기에 곱게 싸서 자동차의 트렁크에 싣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지금은 너나없이 팽개친 천륜의 마땅한 덕목을 고수하는 송 교수님 내외야말로 효자, 효부란 생각이 듭니다.

 

중국 초나라의 학자 노래자(老萊子)는 스스로 70세의 백발노인임에도 부모님 앞에서는 색동옷을 입고 천진한 얼굴로 재롱을 피우며 기어 다녔습니다. 때로는 부러 넘어져 울음으로 부모님의 도움을 청하여 부모님이 황혼의 소외와 적적함을 잊도록 했습니다.

 

칠순을 눈앞에 둔 서현석 교수님께서 장모님을 위해 준비하신 카네이션은 바로 노래자의 그 반의지희(斑衣之戱)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제가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방의 할아버지께 조석으로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 살피는 혼정신성(昏定晨省)의 도리를 건너뛰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어머님은 저의 안부 전화를 "너희들만 잘 있으면 우리는 일없다"는 늘 하시던 같은 말만 남기고 일방적으로 수화기를 놓으셨습니다. "아버지의 건강은 어떠세요?"라는 저의 물음은 중간에 '뚝'하는 통화 종료음에 문장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머님은 단 몇 초의 그 시외 전화비조차 아들에게 부담된다고 느낀 것입니다.

 

서재 앞 서산으로 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객지에서 부모을 그리는 망운지정(望雲之情)의 울음이 북받칩니다.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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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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