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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 대단하구먼, 정말 대단해, 저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바위들 좀 봐? 이런 맛에 산을 오른다니까."

 

"이런 경치를 천하절경이라고 하는 거겠죠? 저 밋밋한 능선에 어떻게 저런 바위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서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놀라운 풍경이야."

 

구정봉에 오른 산악회원들이 앞쪽 산등성이에 솟아오른 뾰족뾰족한 바위들을 바라보며 놀라움에 탄성을 연발한다. 바위봉우리들은 정말 대단한 모습이었다. 왼편 주봉에서 이어진 펑퍼짐한 능선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뾰족뾰족 솟아오른 수많은 바위기둥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천하절경

 

날씨가 따스했던 지난 5월 7일 전남 장흥에 있는 천관산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서울 천호동에서 출발한 산악회 버스는 경부, 호남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려 광주시가지를 벗어난 후엔 꼬불꼬불한 국도와 지방도를 또 한참을 달려서야 산 아래 도착했다. 무려 다섯 시간 삼십 분이나 걸렸다.

 

장천제 주차장에서 내린 회원들은 빠른 걸음으로 산을 향했다. 등산로 입구는 전나무 숲이 울창하여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숲을 벗어나자 물이 제법 많이 흐르는 개울이 나타난다, 산은 높지 않은데 개울물이 많은 걸 보면 골이 깊은가보았다.

 

개울을 건너자 멋진 정자 하나가 날아갈 듯 서있다. 영월정이다. 그런데 육각정인 이 정자는 매우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기둥들이 중간 높이까지 대리석으로 세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마룻바닥도 대리석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자를 설계한 사람은 매우 영특한 사람인 것 같네요. 비바람이 들이쳐 썩기 쉬운 기둥 아랫부분과 마룻바닥을 대리석으로 만든 걸 보면"

 

누군가 정자를 보며 칭찬을 한다. 요즘 공원마다 많이 세워지는 다른 정자들에 비해 매우 특이한 설계와 재료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붕의 추녀길이가 짧은 건축물인 정자의 특성상 기둥 아랫부분과 마룻바닥이 비바람에 노출되어 쉽게 썩어버리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기둥과 마룻바닥을 대리석 재료로 지은 영월정의 멋진 모습

 

정자를 지나쳐 조금 더 올라가자 고색창연한 제실 하나가 나타난다. 장흥 위씨 제실인 장천제였다. 제실 앞에는 수령 600년이 넘은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가 위씨 문중의 수호장인양 늠름한 모습이다.

 

장천제를 지나자 산길은 완만한 경사에서 급경사로 변한다. 그 힘든 급경사길을 산악회원들은 잘도 올라간다. 사진을 몇 컷 찍으며 오르다보니 일행들도 어느새 모두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조금 속도를 올리자 금방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다행이 뒤에도 나이든 몇 사람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나무 그늘에서 잠깐 쉬며 땀을 들인 후 선인봉에 오르자 바람이 시원하다. 바위 위에 오르니 산 아래 펼쳐진 관산읍과 주변 풍광이 아름답기 짝이 없다.

 

중봉으로 오르는 능선의 커다란 바위틈에는 철쭉 몇 그루가 꽃을 피워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선녀의 날갯짓인양 아름답기 짝이 없다. 폭풍우라도 쏟아져야 빗방울이 조금 흘러들 것 같은 그 척박한 환경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아 꽃을 피워낸 철쭉들의 생명력이 경이롭기 짝이 없다.

 

일행들은 중봉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들과 함께 과일 몇 쪽씩을 나눠먹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이 제법 시원했지만 따갑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에 모두들 비지땀을 흘렸다.

 

중봉 바로 아래 절벽 바위틈 금강굴에서 흘러나오는 약수가 시원하다. 일행이 떠준 한 바가지의 약수를 마시자 서늘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약수터 바로 위쪽 길가엔 소꿉장난 같은 작은 제단이 만들어져 있고 '금종암'이란 표지가 놓여 있어 지나는 등산객들의 미소를 자아낸다.

 

구정봉 바위는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바위 아래 작은 틈으로 기어들어가서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구정봉에 오르자 위쪽 진죽봉의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바위봉우리들이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관사능선에 솟아있는 두 개의 바위봉우리들도 경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구정봉 바위 한쪽에 누군가 작은 판자마루를 만들어 놓은 것이 눈에 띤다. 그곳에 들어 누우니 진죽봉의 바위봉우리들이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다.

 

"이 마루 이거 이렇게 들어 누워서 저 바위봉우리들 바라보려고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겠죠?"

 

"설마, 잠깐 구경하려고 마루까지 만들어 놓았겠어요? 어쩌면 누군가 이곳에 앉아 수행을 하거나 명상하기 위해 만들어 놓았겠지요?"

 

구정봉에 오른 사람들이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았지만 작은 마루를 만들어 놓은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맞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구정봉을 내려와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을 떠받친 진죽봉을 왼편으로 돌아드니 곧 환희대다.

 

서울 근처에 있는 산이 아니어서 명산이 아니라고요?

 

환희대에 오르니 전망이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際)로 시원하다. 거칠 것 없이 펼쳐진 전망이 동서남북 어느 방향도 막힌 곳이 없었다. 웅장한 능선을 타고 멀리 바라보이는 봉우리는 주봉인 연대봉이었다. 오른편 능선으로 이어진 봉우리는 구룡봉이고 능선을 따라 멋진 바위봉우리들이 즐비하다.

 

"우와! 이 멋진 풍경, 그래서 산이 찬란한 구슬 같은 왕관을 쓰고 바위기둥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천관산이라 했구나!"

 

사람들이 방향을 바꿔 둘러보며 눈길을 뗄 줄 모른다. 환희대에서 주봉인 연대봉으로 가는 능선은 광활한 억새능선이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능선이 펼쳐진 모습은 태백산이나 소백산, 무등산처럼 높고 거대한 산을 바라보는 것 같은 웅장하고 장쾌한 멋을 가득 담고 있었다.

 

"참, 아깝다, 이 멋진 산이 서울 근처에 있었더라면 아주 명산으로 소문이 났을 텐데"

"아니, 그럼 서울 근처에 있지 않아서 명산이 아니란 말입니까?"

 

뒤따라 올라온 50대로 보이는 커플이 산을 휘둘러보다가 서울근교가 아니어서 아쉽다는 말을 하자 누군가 그의 말을 받고 나선 것이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서울에서 너무 먼 거리에 있는 산이어서 명산으로는 좀 아쉽다는 말이지요."

 

"아니 그럼, 산까지 경치 좋은 명산은 서울근교에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이 산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명산으로 소문이 자자한 산이랍니다."

 

역시 50대로 보이는 등산객은 모든 것을 서울 중심으로 말하는 다른 등산객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휘적휘적 주봉인 연대봉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주봉인 연대봉으로 가는 능선엔 지난 가을 온통 장관을 연출했을 것 같은 마른 억새풀이 지천이었다. 그 억새풀 사이로 진홍색 꽃을 피운 철쭉들이 하나 둘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다.

 

천관산(天冠山)의 주봉인 연대봉은 해발 723미터, 펑퍼짐한 정상에는 커다란 돌로 쌓은 사각형의 기단과 함께 정상 표지석에 세워져 있었다. 성벽같은 기단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고 내려와 하산길로 나섰다.

 

하산길도 평탄하고 좋은 길이었다. 하산하는 능선길에서 바라본 오른편 바다는 고흥만이었다. 고흥만을 사이에 두고 바다 속으로 깊숙이 뻗어 들어간 고흥반도가 아스라하다. 그 바다 이쪽 편 장흥바닷가 들판은 바둑판같은 논밭들이 푸르고 누르스름한 빛깔로 선을 그은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누르스름한 빛깔은 보리밭들이고 푸른 빛깔은 밀밭들이다. 이 지역은 논에 보리와 밀을 심어 수확한 후 모내기를 하는 농가들이 많아서 들에 보리밭과 밀밭들이 많았다. 그런데 보리는 수확기가 빨라 누르스름하게 익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능선을 내려가는 길목에는 남성의 성기를 닮았다는 양근바위가 서있었지만 어설픈 모습이었다. 주차장이 가까워지고 있을 때 길가에서 색다른 무덤 하나를 발견했다. 이 무덤은 무덤 위에 크고 작은 돌들을 온통 뒤덮어 놓은 모습이 흡사 돌무더기 같았지만 분명한 무덤이었다. 주변의 키 큰 나무들 때문에 잔디가 자라지 못하자 잔디 대신 돌을 뒤덮어 놓은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돌미나리를 함지박에 담아 놓고 사라고 권한다. 모두 얼마냐고 물으니 9천 원이란다. 주변을 둘러봐도 할머니의 미나리를 팔아줄 사람은 우리들 일행뿐인 것 같아 몽땅 사들고 만 원을 드리자 고마워하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내려왔다. 주차장에 내려오니 오후 4시, 산행을 시작한 지 3시간 30분이 지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천관산, #돌기둥, #이승철, #고흥만, #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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