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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기사

 

내 뫼를 내려오고 나니, 온 몸에 땀투성이다. 곳곳에 가시덩쿨, 죽은 삭정이. 제일 귀찮은 녀석이 청미레덩쿨이고, 야생 복분자덩쿨이다. 고놈들은 무성하기도 하다. 어디 가느냐고 붙잡고는 꼭 확인하겠다며 그냥 보내주는 법이 없다. 얄미운 녀석들이다. 그런다고 내가 어쩌겠나? 조물주도 아닌 것을... 벙어리 냉가슴.

 

고샅을 돌아 큰 길에 나서니 바람은 불어 시원하다. 그런데 어쭙잖게 눌러쓴 밀집모자를 가져가려 한다. 바람이란 놈은 참 욕심도 많다. 주인이 쓰고 있는 것마저 달란다. 안 된다고 버티려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하늘에는 땡볕이 이글거리니 그냥 주고 갈 수도 없다. 그러니 바람과, 그것도 늦봄바람과 전쟁(?)을 해야 했다. 전쟁 중에도 발걸음 내디뎌 건너편 뫼에 오른다. 그곳에는 황씨 집안의 제각 위에 선영 벌안이 있다. 처음으로 올라가 본다. 그 주위 어딘가에 오늘의 주제로 삼았던 으아리가 있단다.

 

넓은 벌안에 들어서니 잘 가꾸어진 봉분 앞에 비석들이 꺼멓게 떡 버티고 서 있다. 그곳에 그 봉분의 주인이 했음직한 훌륭한(?) 업적들이 빽빽하게 기록되어 있겠지. 내 관심은 오직 야생화다. 눈은 오직 땅이다. 잔디 사이사이에 벌써 작은 주인들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작고 앙징스럽다. 애기구슬붕이다. 이 녀석들은 가족이 여섯이다. 그리고 사이도 좋아 보인다. 골고루 나누어 먹었나 보다. 놀부도 흥부도 없어 보인다. 하기는 탁 트인 벌안이니 햇볕이 넉넉하기는 하다. 다툴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니 우애도 좋을시고.

 

 
애기구슬붕이

구슬을 만들다가 애기가 되었나 봐

애기들 야그에도 나오는 우렁각시

새도록 만든 구슬이 애기구슬 되었네

 

눈을 이리저리 번쩍거리니 들어오는 게 있기는 있다. 그런데 꽃일 거라는 거 외는 알 수가 없다. 처음 보는 요상한 놈이라서. 또 누구 신센가를 지기는 져야 한다. 그런데 아마도 저건 쉽지가 않을 거 같다. 잎을 제대로 담지를 않았으니 말이다. 꽃과 잎이 다 있어야 감정사도 쉽게 알아낸다고 하니 말이다. 심한 경우에는 잎이 없으면 그냥 지워 버리기도 한다. 그럴 법도 하지. 그들이 뭐 신인가?

 

 

이 꽃을?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인 이 녀석을

범인인 지누랑이 어떻게 안단 말가

그러니 고수들이여 푸념말고 답달아요

 

눈을 들어 옮기려니 땀이란 놈이 나를 또 괴롭힌다. 그래야 맞기는 하지. 오늘 날씨가 보통 날씬가? 한여름 저리 가라다. 안경 사이로 흐르는 땀이라서 더 짜증이다. 나이 탓인가? 어떤 때는 지가 무슨 안경 없이 살았다고 안경을 낀 채 얼굴을 닦고 만다. 얼굴의 땀이 닦아질 리 만무. 요새는 그게 한두 번이 아니다. 늙으면 죽어야 하나? 죽으면 늙어야 하나? 그게 그거 아닌가? 이쯤 되면 글을 쓰는 건지, 푸념을 늘어놓는 건지 모른다.

 

땀투정이 길어졌다. 신통하게도 두 녀석이 동거를 한다. 그 이름도 이꼬들배기. 흰종과 노란종. 벌인지 큰 개민지 하는 녀석이 꿀을 따느라 여념이 없다. 하기사 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이고들배기

옛날에 꼬들배기 씀바귀 구별 못해

누군가 물을까봐 시선을 피하더니

하기사 이꼬들배기 저렇게도 예쁜데

 

 

어디를 가나 빠지지 않는 것이 제비꽃이다. 가지 수도 많은 정도가 아니다. 한 50여 가지는 되지 싶다. 그것도 줄여서 얘기한 거다. 그 중에서 떠오르는 거 하나. 흰색인데 젖제비꽃이라고 있다. 왜 이름을, 누가 그렇게 붙였을까? 그래도 빼놓을 수가 없어서 날렵한 거로 한 컷 찰칵했다. 예쁘지 않은가!

 

 
제비꽃

제비꽃 흰제비꽃 제비꽃 고깔제비

제비꽃 남산제비 제비꽃 털제비꽃

제비꽃 졸방제비꽃 콩제비꽃 제비꽃

 

산을 돌아돌아 보아도 오늘의 주제로 삼았던 으아리는 코빼기도 보여 주지를 않는다. 날씨는 여름 거지, 땀은 비오듯 하지, 허기는 지지, 그래서 다리는 후들거리지, 그래도 혹시나 하고 주위를 한 번 더 돌아 본다. 그래도 오늘의 주제인 으아리는 종무소식이다. 그럼 어쩌야 하나? 별 수 없지 뭐. 단념.

 

의기소침. 다리 후들후들. 겨우겨우 돌아오는데 논두룩도 힘겹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고. 눈앞에 빤히 내집 오지기와가 보이는데….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주저앉고 싶은데 어쩌란 말이냐? 참고참고 돌아나오는데 멍멍이란 놈이 컹컹컹 하는 양이 나를 물어 죽일 듯 싶다. 묶여 있어서 천만다행.

 

돌아돌아 재종 형댁 비닐하우스에 오니 복분자가 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곁에는 오디가 다닥다닥. 아마도 저 오디 중 어느 것은 내 입으로 들거 갈거 같은데…. 오디도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지고 있는 것을. 내년에는 때를 맞추어 오디꽃을, 찰칵을 해서 올려야겠다. 오늘은 곁에 있는 복분자 찰칵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왼쪽 붉은 것은 꽃은 지고 난 다음 열매로 가는 과정이고, 오른쪽 흰 것이 진짜 복분자꽃이다. 복분자 열매로 술을 담아서 복분자주라고 하는데, 색깔은 좋은데 별무효과 아닌가 싶기도 하다. 허명무실이라고나 할까? 내가 옛날, 어느 곳에서 복분자주라고 하는 걸 마시는데 요즘의 복분자주처럼 보라색이 아니었다. 왜 그러냐 했더니 그건 복분자 뿌리로 담근 술이란다. 그건 말 그대로 覆盆子酒였다. 요즘 세태를 닮은 것일까? 겉만 화려하고 내실은 없는 것은 아닐까?

 

 

복분자

사람이 거짓말을 자주도 해대면은

그것이 거짓인 줄 어느새 모른다네

복분자 과장이언정 어느 누가 속을까

 

지금은 11시 하고도 47분. 사진 정리하는데 2시간. 글을 쓰는 데는 9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니까 2시간 48분. 그렇게 많은 시간을 퍼넣고도 이것이 글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열심히 찰칵하고 썼으니 즐겁다. 끝까지 읽어 주시는 분께 감사드린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덧붙이는 글 | 기사가 길어서 연재를 신청하려니 자격 미달이라 할 수 없이 3회로 나누어 올립니다. 이제는 열심히 기사를 작성해야겠군요.


태그:#마을, #야생화, #지누랑, #뫼, #앵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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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와 시와 문학과 야생화 사진에 관심이 많아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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