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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난리 났어요. 소니, 도요타...이런 데서도 해고 엄청나게 했으니까.

지난 4월 27일. 한국의 실업과 비정규직 사태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 아사히 TV에서는 취재진을 급파했습니다. 노동절이 다가오는 가운데 최근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양국의 상황을 비교해 보기 위해서죠. 일본 역시 비정규직 증가와 대량해고, 청년실업자와 노숙인 증가 등 비슷한 고민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장을 직접 둘러본 아사히 TV 취재진은 한국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가자 표정이 무거워졌습니다.

악화된 실업사태, 이제는 알바 준비생

대한민국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는 무직가구라니 최소 400만은 실업자라고 볼 수 있으나 이후에도 실업은 더욱 늘어만 갔습니다. 빈곤층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났고요. 기초생활 상담을 받은 빈곤층이 올 상반기에 벌써 전년 대비 두 배로 늘어났으니 말 다했죠. 정부에서는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지원책과 해결방안을 내 놓는다고는 합니다만, 과연 실제 현장의 목소리는 어떨까요? 29일 아사히TV측은 홍대 근처에 모인 다음 카페 백수회관 회원들 및 다른 실업자들과의 인터뷰를 실시했습니다.

한국의 실업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아사히 TV' 취재진이 들어서고 있다.
 한국의 실업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아사히 TV' 취재진이 들어서고 있다.
ⓒ 전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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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책이라고 나온 것이 결혼해서 부양할 가구가 있어야 한다니 그럼 청년 실업자들은 뭡니까. 결혼해서 애 낳으란 건가요? 취업 자체가 안 되고 애들 양육비마저 치솟는 판국에 그게 말이 되는 소린지.

실제 백수회관 회원들을 살펴보면 30대부터 50대까지도 88만원 세대가 있어요. 실업과 빈곤은 이미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죠.

그리고 인턴제 문제. 이것도 현실은 대졸자 이상만 해당돼요. 학력차별 제도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반적으로 써왔던 386이라는 단어 또한 대졸자에 제한하는 학력차별 시선이 깔려 있어요.

그런 단어를 아무런 무리 없이 써온 사회 인권이 바로 섰다고 할 수 없죠. 실제로 386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이득을 챙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정책을 만드는 엘리트 정치인들, 특권층들이에요.

이러한 것들은 실제 가난한 사람들, 당사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목소리를 내야 해요. 그래야 변화가 오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안 바뀐다니까요."

백수연대 대표인 주덕한씨가 먼저 말문을 트자 여기저기서 한 맺힌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하기야 저도 88만원 세대라는 단어가 좀 이상했습니다. 제 소원은 88만원이라도 매달 벌어보는 것. 솔직히 요즘엔 20만원 벌기도 힘들죠.

"정말이지 알바 뽑으면서 대졸자 이상이라고 제한을 두는 거 보면 웃겨요. 서빙하고 옷 파는데 학력이 무슨 상관입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국은 생활 속에 이상한 습관이 자리 잡고 있어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어느 대학 출신인지 따지곤 하죠."

"피씨방이나 식당 알바도 이력서 써오라면서 경력을 봐요. 참내."

"나이에도 제한을 둬요. 거의 다 20대 위주로 뽑고 있어서 서른 넘어가면 알바 구하기도 힘들다니까요. 아마도 착취하고 부려먹기 쉬우니까 일부러 어린 연령대를 뽑는 것 같아요."

"성차별도 있어요. 어떤 일은 여자만, 또 어떤 일은 남자만 하는 것도 그런데 외모까지 봅니다. 심지어는 옷차림이 허름해도 안 뽑아요(여기저기서 맞장구). 용모단정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무슨 옷을 입었는지 본다니까요. 돈 없어서 옷을 못 사 입는 것이 용모단정이랑 무슨 상관이죠?"

"알바 구직자도 엄청 몰려서 구인광고 뜬지 10분 정도 지나 전화하면 벌써 구했데요. 요즘엔 이력서만 받고 나중에 연락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주일 넘게 기다려도 연락은커녕 제출한 이력서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취업은 고사하고 알바 준비생이 돼버렸죠."

다시 주덕한씨가 말을 받습니다.

"같은 알바라도 일본의 경우엔 학력이나 나이 제한이 없어요. 심지어 우동 집에서 70 가까이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일을 하시는 것을 봤어요. 주인이나 매니저냐고 물었는데 그냥 알바래요. 편의점도 그런 식이고요."

흔히들 백수는 게으르다거나 열심히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혹은 눈이 너무 높아서 취업을 못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날 만나 본 백수들은 자전거나 등산 등으로 평소 자기 관리도 열심이고 이력서까지 꾸준히 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과연 이들의 눈이 높기 때문에 취업을 못하고 있을까요? 알바조차 못 구한다는 사람들이 말이죠.

더군다나 단순한 일을 하는 알바까지도 경력자를 우대하는 풍토라면 졸업과 함께 실업자가 되는 현실을 볼 때 애초 구직이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경력 쌓을만한 곳조차 줄어드는 것이죠. 하물며 서비스직에서까지 대졸우대라니 이게 뭔가요. 중졸이나 고졸은 사람도 아니라는 것인지. 이들의 말이 정말 사실일까요?

프리터조차 되기 힘든 한국, 반나절 동안 서울 뒤져도 일자리가 없다?

충격과 허탈. 한국을 방문한 아사히 TV 기자의 표정은 취재를 할 수록 심각해졌다.
 충격과 허탈. 한국을 방문한 아사히 TV 기자의 표정은 취재를 할 수록 심각해졌다.
ⓒ 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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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28일) 저는 아사히 TV 취재진과 실업문제 파악을 위한 동행에 나섰습니다. 취재진은 구직자의 조건을 특별한 경력이 없는 고졸의 20대 중반 청년으로 설정했는데 우연히 제가 그 조건에 맞아떨어졌죠.

대학 갈 돈이 없던 저는 졸업 후 시작부터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시나리오를 썼으니까요. 작가나 충무로 스텝들 모두 비정규 계약직입니다.

고등학교나 대학 졸업 후 바로 현장에 뛰어든 대부분은 일반 직장 경험이나 경력이 전무한 상황이고요. 더군다나 제작 중인 작품이 중단되면 분명히 일은 했는데도 경력으로 쓰지 못합니다.

저의 경우엔 작년부터 소속 작가와 연출부 일을 하려고 했으나 회사가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해 모두 다 물거품 되고 아무런 경력도 없는 상황.

공부하고, 습작했던 수년의 시간은 이력서에 쓰지 못합니다. 과연 저 같은 사람도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요? 꿈이 너무 큰 것 같아 비정규직, 아니 최저임금도 못 받는 알바라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오후 내내 '아사히 TV' 취재진과 함께 직업소개소와 인력 시장을 찾아 서울 일대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돌아온 답변은 그런 사람에게는 현재 일자리가 없다는 겁니다. 이번 달 방세 낼 돈도 없기 때문에 간절히 애원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거의 모든 곳에서 방송취재를 거부했고요. 허탈함과 충격에 빠진 우리는 건대 후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가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현장의 이들은 가난을 방치하고 비정규직과 실업을 양산한 정부를 향해 분노를 토해냈습니다. 곳곳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깃발과 플래카드도 쉽게 볼 수 있었고요.

청소년 노동자들이 가지고 나온 항의 피켓들.
 청소년 노동자들이 가지고 나온 항의 피켓들.
ⓒ 진보신당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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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의 고통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것을 반대하는 외침들. 최저임금 보장과 인간다운 대우를 외치는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이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노동절 전날이 되자 10대들도 있더군요. 이들이 현장에 나옴으로 인해 빈곤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죠.

이명박 정권은 사람 밀어버리는 불도저 "이제 서울에서 쫓겨납니다."

'아사히 TV' 취재팀이 실업과 비정규직 현장에서 충격을 받았다면 저는 조그만 동네의 고물상에서 충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몇 달 전, 가장 밑바닥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생계와 연결된 고물상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찾아간 것입니다. 과연 그분들의 살림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당시 그곳에는 기초생활 보장금이 턱없이 부족해 반찬값이나 약값을 벌기 위해 폐지를 주워 오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강제철거 예고를 받았어요. 계고장이 날아온 거죠."

고물상 안의 시설물을 뜯어내고 남아있는 폐지를 모두 빼내는 중이었습니다. 땅 속에 묻힌 대형 저울도 곧 파내어 이동할 계획이랍니다. 지역구로부터 땅을 빌려 고물상을 운영했으나 작년부터 시작된 불황 때문에 적자가 나고 세금도 내지 못했다고 하네요. 해당 지역 구청을 방문해 확인한 결과 일 년 넘게 밀린 액수는 수 천 만원에 달합니다.

고물상도 이제는 서울을 떠날 준비 중이다. 쌓여있던 고철과 폐지는 물론 시설물과 집기도 모두 들어내고 있었다.
 고물상도 이제는 서울을 떠날 준비 중이다. 쌓여있던 고철과 폐지는 물론 시설물과 집기도 모두 들어내고 있었다.
ⓒ 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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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 20원 하는 폐지를 5톤 트럭 가득 모아서 가져다 팔아봤자 기름 값 빼고 나면 한숨이 나요. 여기서 그동안 세금도 못 내고...

나가라고, 비워줘야 한다고 해서 땅을 알아봤는데 서울은 땅값이 비싸서 구하지 못했어요. 지방에도 알아봤는데 거기서는 고물 모으기도 힘들고...도대체 답이 안 나와요."

20대 후반부터 고물상을 시작해 십년 넘도록 일했다는 그는 서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시장이랑 구청장(한나라당) 바뀌고 나서부터 더 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폐지 모으려면 길가에 리어카를 세워둬야 하는데 미관상 보기 흉하다고 그것도 오래 못 놔두게 하고요."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고물상 시작하실 마음을 가지셨어요?"

"예전에는...그 당시만 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답이 안 나와요. 토요일, 일요일까지 일을 해도 주어지는 대가가 없죠. 그동안 좋아지겠지 생각하고 계속 버텨봤는데 답이 없어요, 답이……. 이명박 정부는 서민을 위한 정부가 아닌 것 같아요."

구청 공무원들 역시 빌려준 땅의 계약 기간도 이미 끝났으며 세금이 너무 밀려있어 더 이상은 곤란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요즘에 용산도 그렇게 막 밀어버리는데, 동네 고물상 같은 건 어떻겠어요."

무거운 발걸음을 간신히 돌렸습니다. 이제 고물상이 사라지면 폐지를 모아오는 기초생활 보호 대상자들의 생계는 더욱 힘들어지는 셈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민심 억누를수록 저항은 더 커질 것

작년부터 타오른 촛불의 열망을 정부는 공권력의 폭력으로 방어했습니다. 물론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재보선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참패하고 말았죠. 그러나 일상생활을 궁지로 몰아넣는 가난이 급격히 퍼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커다란 저항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실업자와 비정규직들이 거리를 나와 시위를 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엔 시위 자체를 봉쇄하려해 그 문제가 심각하다 할 수 있죠.

공권력으로 문제를 덮어버리려는 것은 단순한 방어 본능일 뿐 해결을 위한 능력이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란 우선은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죠. 대통령이라면 그에 맞는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시위를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내몰린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반성과 언행일치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국민 여론을 무시하는 사람이 민주국가의 대통령 자격이 있는 걸까요?"

취재 기간 도중 만난 어느 30대 실업자는 요즘도 일자리를 찾지만 시급 천원 남짓의 알바도 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학생 운동은 전혀 해본적도 없다는 그가 결국엔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올해는 작년처럼 당하면서 시간만 보내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 못 견딜 수준이고...선배들 사이엔 꽃병이랑 파이라도 들어야지 되겠다는 말도 많아요."

"만약에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된다면...본인도 그렇게 하실 건가요?"

"네. 물론 저도 전의경들 다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제는 더 이상 답도 없고 마땅한 방법도 없다는 상황들을 취재하다 보니 정말 염려스럽습니다. 촛불 시위가 잠시 주춤하던 작년 12월 이미 경찰 내부에서는 "2008년 촛불시위 이상의 파급력을 갖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풍선에 적힌 희망 "인간답게 살고 싶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이명박 퇴진' 깃발.
 풍선에 적힌 희망 "인간답게 살고 싶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이명박 퇴진' 깃발.
ⓒ 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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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철 교수(중앙경찰학교)가 당시 경찰대학에서 발간한 <경찰학 연구>에 실린 논문을 통해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는 대립을 가져올 것"을 지적한 것이죠.

민심을 억누르는 정권에 대한 약자들의 저항은 "3·1 운동이나 4·19 혁명 등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에서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반대여론 자체를 봉쇄하기 위해 시위를 아예 불허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실제 서울 중심부를 걷다보면 준계엄 상황이나 다름없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여기저기 깔린 경찰 버스와 병력들...문제는 평화적 행진과 시위를 통한 여론의 표현조차 봉쇄할 경우 쌓여가는 불만들이 더 큰 저항으로 폭발할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용산참사가 100일을 넘긴 것은 물론이고 장자연 리스트 역시 뭔가 구린 석연찮음을 남겼습니다. 국가가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가정까지 파괴한 사건. 특권층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까지 박탈당했던 나이 어린 여배우가 자살한 사건. 이러한 것들을 대충 묻어버리려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일까요.

실제로 시위하러 모인 사람들의 가슴엔 그런 의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경찰의 폭력과 보수언론의 망언들. 그런 식으로는 사회가 잠잠해지고 행복하게 굴러 갈 턱이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가난 때문에 죽겠다는 소리가 들리고 자살하는 사람들도  늘어가는 판국에.

취재를 마친 후 기사를 정리하는 동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또한 지난 2008년 5월, 기자회견을 통한 앰네스티 사무총장의 경고도 떠올랐고요. 그 경고는 지금, 촛불 1주년과 노동절 행사가 잔인하게 짓밟힌 대한민국에서 갈수록 무게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사람은 오죽할까요.

"들끓는 분노로 일어선 이상, 사람들은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귀 기울이지 않는 지도자들은 분명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 아이린 칸,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덧붙이는 글 | 아사히TV 보도 스테이션팀과 29-30일 동행한 뒤 쓴 내용입니다. 아사히TV에서는 7일(목) 방송 예정입니다.



태그:#가난, #실업, #비정규직, #촛불 1년, #용산 참사 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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