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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년을 맞아 <오마이뉴스> 등에 보낸 배즙.
 촛불 1년을 맞아 <오마이뉴스> 등에 보낸 배즙.
ⓒ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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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내가 몸담고 있는 '일인배후세력연합 개념찬언니들(이하 개념찬)'에선 몇몇 언론사에 '배즙'을 돌렸다. 지난해 5월부터 활활 타오른 '촛불집회' 지원에 사용하고 남은 후원금으로 준비한 것이었다.

배즙 일로 <오마이뉴스>와 통화를 하면서 '촛불활동'에 대한 글을 써줄 수 없느냐는 요청을 받았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활동 소감? 그건 활동을 제대로 해 본 후에나 생기는 거 아닌 가…. 하지만 나보다 훨씬 필력 좋고 활동력 좋은 회원들이 모른 척하고 있는 이때, 나라도 어떻게든 지면을 채울 수밖에.

개념찬 회원 중엔 다른 여러 단체 일과 중복 활동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난 이 팀에서만 활동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촛불 때 한 활동도 시민들에게 우비와 핫팩 나눠주기 생수와 먹을거리 돌리기, 쓰레기 분리수거 정도다. 소소하게 전단지도 돌리고 사진전도 했지만, 그런 것은 다들 하는 것이니까.

뭔가를 주도해 본 경험이 없어 그런지 '활동가'란 직함이라든가, 촛불 전과 후의 내가 엄청나게 달라졌을 거란 짐작들이 내겐 많이 낯설다. 난 내가 그렇게 달라졌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 사실 내가 일상적으로 보고 있는 세상 뒤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는 걸 모르진 않았다.

'이명박식 상식'이 생긴 후 내가 얻은 것들

난 운동권들과 접점이 없을 98학번에, 예체능 전공이다. 그리고 녹색연합 회원이다. 별로 부딪칠 것 같이 보이지 않는 이 세 가지 조건들도 불협화음을 일으킬 때가 생각보다 많다. 내가 만나는 일상들과 내가 아는 진실들은 현실에서 아주 다른 면들을 구성하게 된다.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친구들과 나오는 내 머릿속 어딘 가엔 천성산의 도롱뇽을 위해 단식을 계속하셨던 지율스님의 얘기가 들어있다. 내가 남용하는 전기와 가스가 북극 생태계를 쉼 없이 악화시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난 내복을 입지 못하고, 보일러의 온도를 낮추지 못한다. IMF를 겪었고 정권이 바뀌었다곤 하지만 그때도 천성산엔 터널이 뚫렸고 새만금의 갯벌은 사라졌고 농민들은 집회를 하러 서울로 올라왔다. 알고 있다. 계속 일어났던 일들이다.

다만 놀라운 것은 세상에 다른 '상식'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무장한 전경이 애 엄마를 밀쳐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 게 당연하다든가, 도로로 나와 걸을 땐 최하 200만원 이상의 벌금과 이틀간의 구류를 각오해야 한다든가.

공기업과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정부와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운이 나쁠 경우엔 사기업에 다니는 사람일지라도 해고나 그 이상의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헌법이 보장한 적법한 권리도 정부와 다른 의견을 지지하는데 활용하면 권리 자체를 박탈 당할 수도 있다.

국가에 대한 환상 와장창 깨준 촛불... 그리고 1년

지난해 5월2일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선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지난해 5월2일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선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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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국민은 모두 법 아래에 있으나 정부, 특히 청와대만은 언제라도 법 위에 있다는 '상식'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정권마다 생각하는 방식과 중요시하는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선거로 선출된 권력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다만 국가의 수반으로서 정부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달라는 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인가? 이젠 정책 자체보다도(물론 이 쪽도 충분히 싫다) 보여주는 행동의 치졸성에 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할 수 있을 만큼 해 버리는 것은 바닥을 보여주는 일이다.

뭐, 좋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게 내 신조다. 이제 난 아무리 나쁜 일 속에서도 좋은 요소를 찾아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촛불 전까지 난 내가 선택이 필요한 순간에 어디에 서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과연 위험을 감수하고 옳다고 생각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을지. 하지만 이제 난 내가 그럴 수 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걸 안다. 큰 수확이다.

또 국가에 대한 환상에서도 벗어났다. 국가가 유사시 나를 지켜줄 것이다? 아니다. 결국 국가는 국민들의 안전보단 자신들의 편리와 이익을 훨씬 중시한다. 이제 난 국가의 모든 정책들을 전보다 훨씬 주의 깊게,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곁에 남아있다

지난해 6월28일 밤, 경찰이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려는 촛불시위대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지난해 6월28일 밤, 경찰이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려는 촛불시위대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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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께서 "사람들은 말보다 활자에 훨씬 쉽게 속는 경향이 있다, 활자를 맹신하지 말라"고 말해줬다. 그때는 뜻도 몰랐지만, 이젠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겪은 일들이 활자 위에서 어떻게 윤색되는지를 이번에 피부로 느꼈다. 이건 활자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주간지에 실린 정치기사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었다. 촛불 전엔 워낙 잘 모르니 기사에서 운을 띄워주는 대로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그날은 어느새 내가 논조를 반박하고 정치인들의 전 행적들을 토대로 의도를 유추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런 의식 이외에 촛불로 낚은 가장 큰 대어는 '사람'이다. 집회에서 만들어진 인연들. 쓰레기봉투를 바리바리 들거나 핫팩들을 나눠 들고 뛰었던 얼굴들이 내 보물이다. 이 암울한 상황에서도 같은 생각과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큰 위로가 된다.

일전에 종각에서 밤을 샐 때 만난 언니 한 분이 자긴 종로 바닥에서 다시 민중가요를 들을 수 있을지 몰랐다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96년 연대사태 때의 경험자가 하는 말이라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패배할 수도 있다. 이미 패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시도가 결국 성공을 불러오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어떻게 되든지 간에 훗날의 내가 지금의 날 자랑스러워할 거라는 걸 안다.


태그:#촛불1년, #개념찬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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