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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남동쪽 골짜기. 텐트에 엎드려 그대 이름을 쓴다. 해드랜턴에서 쏟아져 내리는 불빛은 충분히 밝다. 플러그로부터 벗어난 것이 오랜만이듯이 이렇게 종이 위에 그대 이름을 적어보는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내가 그대 이름을 알았을 때, 나는 스물네 살이었다. 스물넷, 이제 와서 그 나이를 발음해보면, 아득하다.

 

스물넷은 아직 걸러지지 않은 기억이다. 나는 기억과 추억을 구분하거니와, 기억은 날것이고, 추억은 발효된 것이다. 기억의 편집이 추억이다. 그러니까 추억은 정확하지 않다. 스물네 살 시절, 나는 땅을 밟고 있지 않고 있었다. 늘 지상에서 삼십센티미터쯤 있었다는 느낌이다.' ('작가들의 연애편지 중/이문재')

 

다시 쓰는 편지

 

 

언젠가, 그 언젠가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가슴 절절한 편지 한두 번쯤 써 본 기억, 혹은 추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편지'라고 하면 아스라이 멀어져간 옛 추억처럼 아련하게 떠올리는 것이 요즘 우리들이 아닐까. 위에 글 '작가들의 연애편지'에서 발췌한 이런 편지 받아본다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왠지 잠 못 이룰 것 같다.

 

편지를 써 본 기억이 언제쯤일까. 마치 낡은 앨범을 뒤적거리다 그 옛날 편지 쓸 때면 편지지 안에 넣어 보내곤 했던 마른 꽃잎을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나는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최근에 들어 편지를 다시 쓰게 되었다. 실로 오랜만이다. 그동안 편지 쓰는 것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딸아이가 사춘기, 그 혼돈의 시간을 통과할 때, 기도하듯 거의 매일 편지를 썼던 그때 이후로 편지란 것을 써 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니 편지쓰기는 내 자신에게 우선 아주 신선하게 와 닿는다. 편지를 쓰는 순간에도 그 옛날 편지를 썼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내 인생의 어느 시기에 점찍어진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우연히 멀리서나마 소식 들어 알고 있는 사람들, 적어도 어디서 살고 있는지 쯤은 아는 얼굴들도 있는가 하면 이름 석자, 그리고 그 시절의 추억으로만 남은 사람들도 있다.

 

아직까지도 어디서 무엇 하며 살고 있는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얼굴들 또한 떠오른다. 살아 있다면 인생의 어느 계절쯤에서 만나게 된다고 했던가. 하늘 아래 그 어디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만 들어도 때로는 위로가 되고 고맙게 여겨질 때가 있다.

 

까마득히 오래된 시절의 사람들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 '편지'때문일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실속 없이 바쁘고, 편지 하나 차분히 쓸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 한다. 아니 아예 편지라는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나도 딱히 그렇게 바쁘지도 않으면서 편지를 쓸 마음의 여유 공간 하나 갖지 못하고 지내온 것 같다. 아니 편지라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고 지내왔던 것 같다. 이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여백의 문제인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편지를 잘 쓰지 않는다.

 

오히려 편지 쓰는 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하거나 마음 편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바빠야 뭔가 있는 것 같고 유능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생활 속에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전자우편이 등장하면서 더욱더 편지보내기가 없어진 것 같다. 당연히 그렇게들 지낸다고 나 또한 생각했다.

 

다시 쓰는 편지, 쉼표 찍기와 사랑 가꾸기

 

편지란 것을 잊고 있었다. 편지를 다시 쓰게 된 계기는 딸과의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얼마 전에 딸아이와 대화 중에 편지 얘기가 나왔다. 자칭 '기계치'라는 우리 딸이 가끔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주고받는다고 하는 말에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편지를 더더욱 쓰는 것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딸을 통해 알았던 것이다.

 

딸아인 문자 주고받는 것, 메일 쓰는 것 등을 싫어한다. 마음 가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딸, 나에겐 이것이 신선하게 와닿았다. 며칠 뒤, 남편이 문득 '편지받아 본 지가 오래 됐다'면서, 편지를 할 데도 올 데도 없다고 말하면서 편지를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참에 편지를 한번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남편 생일도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매일 얼굴을 보고 사는 남편에게 편지라는 것을 써보았다. 조금은 어색하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문구점에 가서 색색의 어여쁜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사고 집으로 돌아와 조용한 시간에 책상에 앉아 편지를 썼다. 샛노란 편지지와 봉투에 깨알같이 써서 보낸 나의 편지는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다.

 

요즘 사람들이 편지를 별로 하지 않기 때문일까. 멀고 먼 도시에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시내 안에 있는데도 편지는 애를 태웠다. 혹시 분실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편지를 쓰고 풀로 봉해서 가까운 우체국에 가서 부친 나의 편지는 토, 일요일을 빼고도 6일째 도착했다.

 

군대에 편지를 보내도 5일 안에 도착한다는데 해도 너무한다. 편지를 받는 쪽에서 편지를 받아 전달을 늦게 한 걸까. 250원짜리 일반우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왜 늦게 되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나의 편지는 그렇게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들고 눈이 빠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다리게 만들더니 어렵게 남편 손에 당도했다.

 

우여곡절을 겪고 난 뒤에 남편의 손에 들어간 내가 쓴 편지에 남편은 기뻐했다. 그런데 나의 경험뿐만이 아닌 듯 어제는 우체국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비슷한 경우를 당한 사람을 만났다. 번호표를 뽑아들고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우체국직원과 대화를 주고받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커서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바로 우편물이 너무 늦게 도착해서 이 문제가 시정되어야 한다면서 항의 문의를 하고 있었다. 양산에서 부산까지 우편물이 가는데 왜 10일 정도까지 걸리느냐는 것이었다. 마치 내 대신 말을 해 주는 것 같아서 내 마음이 다 시원했다.

 

요즘 사람들이 편지를 쓰지 않으니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것만도 아닌가보다. 며칠 전에 딸아이한테 보낸 편지는 얼마만에 가는지 하도 궁금해서 딸한테 편지가 왔는지 물어보았다. 3일만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쨌든 이렇게 시작된 편지쓰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가정의 달 5월, 마음 담은 편지로 사랑을 돈독하게!

 

쉼표를 찍듯, 여백을 만들 듯 편지를 쓴다. 편지는 여백을 만들고 사랑을 가꾸는 일이다. 우정 만들기다. 관계와 관계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다. 가끔 나는 문구점에 간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나는 아직도 편지지와 편지지 사는 것이 좋고, 펜과 노트를 사는 것이 즐겁다.

 

색색의 편지지와 편지봉투는 내 책상 위에서 또 누구에게 갈지 모르는 채로 놓여 있다. 며칠 전에는 떨어져 있는 딸과 아들에게 편지를 썼고, 존경하는 목사님께 편지를 보냈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즐거운 여유이고 또한 즐거운 편지쓰기였다.

 

각박한 요즘 세상에서 편지쓰기로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여유를 가져보고 또한 편지지에 내 글씨로 꾹꾹 눌러쓴 마음이 담긴 편지를 써보노라면 내 마음이, 그리고 나의 편지를 받는 사람의 마음이... 이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곧 5월이다.

 

가정의 달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가족행사가 많은 달이기도 하다. 나날이 신록을 더해 가는 계절에 사랑하는 가족들, 남편이나 아내에게, 혹은 자녀에게, 존경하는 스승에게 좋은 선물들도 많겠지만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한번 쓰기 시작한 편지쓰기, 그 기쁨 때문에 지속되어 오고가는 마음이 훈훈해진다면 더욱 좋겠다.


태그:#편지, #5월, #가정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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