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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용산4구역 철거민들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법정에 선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고 이상림씨의 아들) 등 철거민 9명의 혐의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이었다. 지난 1월 20일 참사 당시, 불법으로 용산 남일당 건물에 침입한 뒤 화염병과 시너를 던져 화재를 일으켰고, 경찰특공대 진압을 방해하며 경찰관 일부를 다치거나 숨지게 했다는 것이 이들의 죄목이다.

 

이날 용산참사 변호인단은 "경찰과 용역업체의 무리한 철거와 강제진압은 적법한 공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각종 사진자료와 무전기록 등을 제시하며 "경찰 수뇌부가 알려주지 않아서 특공대원들은 망루 내부에 인화물질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도 '안전한 진압'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따져물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자료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을 비롯, 김수정 차장, 신두호 기동본부장, 이송범 경비부장, 백동산 용산경찰서장 등 당시 지휘라인 주요 경찰간부들의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원 열람 결정마저 무시한 검찰엔 '불이익'도 없어

 

검찰은 전체 수사기록 1만여 쪽 가운데 경찰 수뇌부 진술이 담긴 3000여 쪽에 대해서, 변호인단의 열람과 등사를 전면 거부하고 있다. "재판과 관계없는 정치적 내용이 포함됐고, 사건 진행에 방해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변호인단은 이 미공개 기록에 강제진압 과정의 진실이 담겨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언론들이 과잉진압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고, 검찰도 조사 과정에서 경찰 수뇌부에게 이에 대해 질문했을 것이라는 게 변호인단의 판단이다. 그러나 변호인단이 입수한 수사기록에는 경찰특공대 제대장 등 '지휘라인 말단'의 진술만 남아있다.

 

변호인단은 법원에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했고, 지난 14일 법원은 이에 대한 허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은 법원 결정마저 거부했다. 다시 변호인단은 법원에 수사기록을 압수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이번에는 법원이 한발 물러섰다.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고 신청을 처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현재 형사소송법에는 검찰이 법원 결정에 불복할 경우 처벌규정이 없다. 이같은 선례가 없기 때문이다. 변호인단 간사를 맡고 있는 권용국 변호사는 "법원 결정이나 명령은 판결과 같은 성격인데 이걸 검찰이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검찰은 자신들이 법원보다 높은 지위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법원은 "검찰이 미공개한 기록에 대해서는 관련 증인이나 서류를 증거로 신청하지 못하도록 불이익을 주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권 변호사는 "미공개 기록은 검찰에게 불리한 내용일 텐데, 관련 증거를 신청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슨 '불이익'이냐"고 비판했다.

 

철거민에겐 '과학 수사', 경찰·용역에겐 '진술 조사'

 

용산참사 직후부터 편파·왜곡 수사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검찰은 사건 초기 유가족 동의도 받지 않고 시신을 부검해 비난을 받았다. 또 시너의 위력을 실험하고 화재 현장 동영상을 분석하는 등 철거민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과학수사를 벌였다.

 

반면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들을 수사할 때는 이들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지난 2월 2일 검찰은 "건물 안에서 용역업체 직원이 폐타이어를 태웠다"는 철거민 주장에 대해 "업체 쪽이 부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3일 MBC <PD수첩>에서 용역업체 직원의 방화 장면이 나오자, 이틀 뒤인 5일 "방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수사 끝에 검찰은 지난 2월 9일 "화염병을 던진 행위자를 밝히지는 못 했지만 망루에 남아있던 농성자들이 공범의 책임을 져야한다"면서 철거민 20명을 무더기로 기소했고, 이후 이충연 위원장을 비롯한 철거민 9명도 추가 기소했다.

 

반면, 용역업체 직원은 7명만 기소했다. 혐의도 철거민보다 가벼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합동 진압을 했던 경찰은 단 한명도 기소하지 않았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압을 승인받았고, 화재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검찰은 국민참여재판에 대해서도 비협조적 자세를 보였다. 변호인단은 이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추진하면서, 심리시간을 줄이기 위해 웬만한 기소내용은 인정하고 철거민 측 증거조사 시간도 16시간으로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검찰은 "철거민들이 배심원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국민참여재판을 반대했다. 이어 증인을 61명 신청했으며 신문 및 조사 시간으로 115.5시간을 요청했다. 결국 지난 3월 26일 법원은 "재판에만 20일 이상이 걸려 배심원에게 부담이 크다"면서 배제 결정을 내렸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의도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무산시켰다고 보고 있다.

 

유가족들이 '구타 사망설' 주장하는 까닭

 

검찰에 대한 유가족들의 불신은 상당히 크다. 이들은 검찰이 '철거민 유죄, 경찰 무죄'를 만들기 위해서 끼워맞추기 수사를 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무리한 시신 부검이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검찰은 "신원을 확인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부검을 실시했지만, 유가족들은 "유품이나 DNA 검사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검찰이 시신의 내장도 다 들어내고 온 몸을 갈기갈기 포를 뜬 뒤 꿰매놓았다"고 주장했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유가족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유가족들은 "현장에서 발견된 지갑·벨트·가스라이터 등의 유품이 불에 타거나 터지지 않은 점, 옥상으로 탈출한 것으로 확인된 고 이성수씨와 고 윤용헌씨 시신이 망루에서 발견된 점도 납득할 수 없다"면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의문들을 근거로 유가족들 사이에서는 "불에 타죽은 게 아니라 맞아죽은 시신을 (경찰이나 용역업체 직원들이) 불에 넣었다, 폭행 흔적을 지우기 위해 검찰이 시신을 훼손했다"는 '구타 사망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권 변호사는 "(구타 사망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실제로 당시 경찰에 연행되면서 구타당했다고 진술한 철거민들이 많다, 유가족 입장에서는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 "이 재판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까"

 

지난 첫 공판에서 변호인단이 강조한 것은 철거민 투쟁의 정당성이었다. 공판에서 변호인단은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간 것은 위법적 철거에 따른 '긴급피난'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농성 행위와 경찰관 사망 사이에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을 뿐더러, 인과관계가 있다고 해도 농성자들은 이를 예견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변론은 다소 수세적인 전략이다. 변호인단 측도 "법리로 따지기가 쉽지 않다"고 답답한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비공개된 수사기록이다. 권용국 변호사는 "'문제있는 진압'이라고 100번 지적해봤자 검찰은 '경찰이 (화재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자꾸 빠져나간다"면서 "수사기록 3000여 쪽에는 숨겨진 진실과 '당시 진압이 잘못됐다'는 경찰 진술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변호인단은 앞으로도 수사기록 공개를 계속 요구할 방침이다. 그러나 문제는 법원이 압수영장 발부 신청을 수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법적으로 이를 받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수사기록이 은폐된 상태에서 이 재판이 과연 진실에 근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고민을 드러냈다.


태그:#용산참사, #철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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