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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후 3시 용산 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 앞에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용산참사대책위'가 남일당 건물 앞에 농성을 위한 천막을 치려고 하자 경찰이 막아선 것이다.

 

"도로에 천막 치는 것은 불법입니다."

"우리 건물 앞에 천막을 치는 게 왜 불법요?"

 

흥분한 철거민 40여 명은 경찰에게 큰 목소리로 항의했고, 전경 30여 명은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남일당 건물 앞을 지키고 있었다.

 

철거민들이 천막을 치려고 했던 자리는 원래 용산참사대책위 차량이 오랫동안 주차하던 곳이다. 

 

전철연의 한 관계자는 "차를 대놓는 것은 되고 천막을 치는 것은 안 되는 게 말이 되냐, 이런 충돌이 하루 걸러 일어난다"며 "100일이 다 돼 가는데 이곳은 여전하다. (충돌이) 예전보다는 덜 일어나지만 신경전은 여전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목소리 크고 힘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게 이곳의 현실"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특히 추모제가 열릴 때마다 철거민과 경찰 사이에 시비는 자주 발생한다.

 

남일당 앞에서 열리는 추모문화제에 자주 참여한다는 김아무개(39)씨는 "추모제가 열릴 때마다 사소한 다툼이 벌어진다"며 "경찰은 추모제가 불법이라고 하지만 경찰의 강경 진압이 불법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지난 1월 20일 참사 발생 뒤 조금 잠잠해졌지만 철거 용역들의 '공포 분위기' 조성도 여전하다. 이들은 지나가는 철거민들에게 반말로 비아냥거리거나 슬금슬금 뒤를 따라다니며 감시한다. 한달 전에는 한 일간지의 허아무개 기자에게 철거 업체 직원이 "조합 허가없이 취재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시비를 걸고 카메라를 부쉈다. 이 철거업체 직원은 형사 입건됐는데 허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취재 기자한테도 이렇게 함부로 행동하는데 그간 철거민들은 어떻게 협박하고 으르렁댔을지 눈에 보이는 듯 했다"고 혀를 찼다.

 

용산 4구역은 대낮인데도 코를 막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악취가 진동했다. 철거 예정인 건물 앞에는 먹다 남은 술병과 과자 봉지, 음식물 쓰레기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몇몇 주민들이 참다못해 구청에 쓰레기를 치워달라고 신고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상인 한아무개(67)씨는 "이곳에서는 법이 통하지 않는다"며 "쓰레기를 버리면 그곳이 쓰레기통이고 물건을 주우면 임자다, 6·25 때 겪었던 난민촌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용산 4구역에서는 철거민과 경찰, 용역들 사이에 크고 작은 다툼이 잦지만 이른바 '법'은 사라진 지 오래다. 먼저 위치를 차지하고 우기는 사람이 주인이다.

 

다시 시작된 철거... 뻥 뚫린 건물들

 

 

참사가 일어난 1월 20일 중단됐던 철거는 3월 11일부터 재개됐다. 철거민들은 저항했지만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굴착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유승옥 용산 4구역 철거대책위원장 직무대행은 "4월 말까지 용산 4구역 건물의 60% 정도가 철거됐다"며 "5월 2일부터는 철거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용산 4구역은 도로변에 있는 남일당 건물에서부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폭탄을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완전히 무너져 내리거나 구멍이 뻥 뚫린 건물들이 대부분이었고 멀쩡한 건물은 거의 없었다. 산산조각이 난 건물들은 전쟁터를 보는 듯했다. 24일 현장을 찾았을 때는 비까지 내리니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다.

 

"저거 다 일부러 그런 겁니다. 철거업체들이 혐오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완전히 철거하지 않아요. 일단 구멍만 뚫어놓죠."

 

유씨는 자신이 운영했던 편의점 자리를 가리켰다.

 

"저기가 내가 운영했던 편의점 터예요. 그때는 이곳에 사람 많았죠. 국제빌딩·태평양 빌딩·엘지 데이콤 직원들이 많이 왔으니까요."

 

그러나 그가 가리킨 곳에는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무너진 콘크리트와 철근만 쌓여 있었다. 용산 4구역을 구역을 통해 한강초등학교로 통학하는 한 학생은 "무서워서 낮에만 이곳으로 다닌다"며 "밤에는 큰길로 돌아가야 해서 불편하다"고 말했다.

 

"몇 억을 투자했는데, 고작 이거 받고 나가라고? 절대 안 나가"

 

그러나 이 와중에도 용산 4구역에서 여전히 장사를 하는 상인도 2명이 있었다. 이들은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

 

남일당에서 50m 정도 떨어진 목 좋은 사거리에 있는 4층짜리 횟집인 ㄴ수산 사장 임아무개씨는 기자가 방문했을 때 조각칼을 들고 판화를 제작 중이었다.

 

이곳에서 3년간 횟집을 운영했다는 임씨는 "예전에는 하루 순 매출만 150만 원 정도였지만 지금은 하루에 점심 예약 한두 팀만 받고 있다"며 "그러나 현재 소송 진행 중으로 투쟁이 끝날 때까지 가게 문을 닫지 않겠다"고 밝혔다.

 

"4구역 보상 비용은 '4개월 영업비'와 '시설 보상비'를 포함해 평균 2700만원이다. 고작 2700만 원으로 어디 가서 무엇을 하겠나? 상가분양권을 주겠다는데 10억 이상 하는 아파트에 우리 같은 서민들이 들어갈 능력이 없다. 현재 보상금 문제로 소송 중이지만 나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은 권리금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모르겠다."

 

23일 오후 나무를 구하기 위해 용산 4가 안 쪽의 무너진 건물로 향하던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남성 두 명을 따라가 봤다. 그들은 철근·콘크리트·나무 등이 어지럽게 섞인 건물 잔해에서 나무를 찾아 손수레에 실었다.

 

"요즘 4월 말인데도 밤이면 너무 추워. 그래서 나무를 태워서 따뜻하게 해야 하는데 나무를 찾을 수가 있어야지. 근데 무너진 건물 중에 나무로 만들어졌던 건물이 많아서 구하기는 쉬워. 경제 사정이 어려운데 그나마 다행이지."

 

그들이 나무를 뒤지고 있는 건물 잔해 뒤쪽으로는 평당 3000만 원이 넘는 수십 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가 병풍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재개발로 서민과 세입자들을 쫓아내고 성처럼 우뚝 솟아오른 것이었다. 상인 세입자들의 한 가게당 보상금 2700만원은 그 아파트 한 평 값도 안된다.  

 

이상한 구역 지정... 용산 5구역 사람들 울상

남일당 건물에서부터 30m 떨어진 곳에 7개의 가게가 있다. 이곳은 용산 5구역으로 철거가 이루어지고 있는 4구역 사이에 끼어있는 골목이다. 이곳으로 들어오려면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용산 4구역을 지나쳐 와야 한다. 따라서 손님이 쉽게 들지 않는다.

 

5구역을 마주 보고 있는 철거 예정 건물에는 쓰레기와 오물이 쌓이며 악취가 풍긴다. 그뿐만 아니라 경찰이 인근에서 촛불 문화제를 한다는 이유로 가로등을 꺼놓는 바람에 밤 영업은 포기한 상태다.

 

5구역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전아무개(44)씨는 "문을 열고 있지만 장사를 안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며 "쓰레기 때문에 냄새 나고, 철거 때문에 먼지 나는 곳에 누가 오겠냐"고 말했다.

 

"집회 소리 좀 자제해 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수십 년 동안 얼굴보고 산 이웃주민이 죽었는데 어떻게 항의를 하겠어요? 답답한 마음에 구청에 쓰레기라도 치워달라고 이야기 했지만 소용도 없어요."

 

5구역 가게 주인들은 얼마 전 골목의 입구를 막고 있는 경찰차를 치워달라고 항의하다가 상인 6명이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경찰차가 골목 입구를 막고 있어 치워달라고 항의하다가 용산 5구역 상인 6명이 잡혀갔어요. 시위하는 법도 모르고 덤볐다가 도로를 점거했다는 이유로 잡혀가 3~4시간 정도 조사를 받고 나왔어요. 그 뒤로는 무서워서 항의하지도 못해요."

 

이 골목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식당을 운영하는 김봉진(46)씨는 "작년 3개월 동안 카드 매출이 7000만 원이 넘는다"며 "그러나 사건 후 3개월 동안 매출은 1000만 원을 조금 넘는다. 아는 사이에 항의할 수도 없고 그냥 답답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어 "구역 지정이 멋대로 돼 있어서 그런다"며 "차라리 5구역이 철거라도 된다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가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환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용산, #용산참사, #100일, #남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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