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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귀, 콧구멍, 팔…양 쪽으로 다 나뉘어져 있는데 왜 심장은 왼쪽으로 치우쳐 있을까. 우리가 서로 안았을 때 내 오른쪽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아닐까. 그리고 그게 진정 인간의 모습은 아닐까… 지금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따뜻하게 서로를 안아주면 어떨까요."

 

지난 24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서대문구 추계예술대학 콘서트홀. 비가 오는 궂은 날씨의 금요일 저녁이었음에 불구하고, 2층 좌석까지 메운 약 500여 명의 사람들. 공연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문화연대가 주최한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 희망' 두 번째 공연이 열렸다. 

 

용산 참사 유가족들을 "안아주세요"

 

새해와 함께 죽음이 있었다. 1월 21일,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 6명이 죽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용산참사'라고 이름 붙였다. 다가오는 5월 1일이면 어느덧 100일. 아직도 5명의 주검은 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채 장례를 치르지 못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곳곳에서 재개발 사업은 강행되고 있다.

 

무엇 하나 뚜렷하게 해결된 것 없이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이 허튼 수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사람들의 관심을 앗아가는 수많은 사건들이 100일 가까운 시간을 훑고 통과했다.

 

두 번째 공연자로 참여한 가수 이한철은 자신의 솔로 앨범 3집에 실린 '안아주세요'를 부르기 전, 노래를 만들면서 고민했던 것을 나누며 사람들에게 "서로 따뜻하게 안아주자"고 권했다. 관객들은 쑥스러운 듯 동행한 이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며 마음을 나눴다. 이한철은 얼굴과 마음이 흥건하도록 노래하고, 관객들은 함께 뛰며 열정적으로 화답했다.

 

이한철의 '안아주세요'의 노래가사처럼, 지금 용산 참사의 유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얼어붙은 마음 그 안의 사람들 그 마음들을 녹일 수 있는 건 바로 36.5도 누구나 같은 너의 마음"이 아닐까.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용산참사를 사람들이 멀고 무겁게 느끼는 것 같다"며, "투쟁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있지만, 다가가기 힘들었던 마음이 이번 공연을 통해 좀 가깝게 전해질 수 있길 바란다"며 공연기획의 취지를 설명했다.

 

슬프지만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다

 

무대는 분주했고, 관객들은 공연장 특유의 분위기 속에 술렁였다. 약 10분 정도 늦게 시작된 공연은 <그날의 남일당>이라는 짧은 영상의 상영으로 시작됐다. 노순택 사진작가의 사진에 태준식 영화감독의 편집으로 만들어진 영상은, 이소라의 7집 앨범 4번째 트랙의 노래가 잔잔히 깔리고 있었다.

 

이소라의 목소리가 "안녕히 이제 안녕히 지금도 안녕히…"라고 가만가만 노래하는 사이, 1월 21일의 용산의 모습이 비춰졌다. 이제는 가늠할 수도, 묻지도 못할 안부들을 묻는 그 목소리는 아직도 믿을 수 없는 사진들 위에 이소라 특유의 쓸쓸한 목소리가 입혀지면서 깊은 여운을 남겼다.

 

조금은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 첫 무대는 5인조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공연으로 시작됐다. 가만가만 잔잔한 밴드의 노래는 마치 초식동물을 연상시켰다. 보컬과 베이스를 맡은 멤버 덕원 씨는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되는지 모르겠다"며 "슬픈 일이지만 해결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재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무대가 다소 고요하고 차분했다면, 뒤이어 등장한 '이한철과 런런런어웨이즈'는 공연장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가수가 여러 활동을 할 수 있겠지만, 취지가 좋은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어서 좋다"는 그는 관객들을 일으켜 세워 함께 뛰고 호흡하며 무대를 장악했다.
 
"바벨탑은 결국 어떻게 됐죠?"

 

공연 시작 전 대기실에서 잠시 만난 이한철씨는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들이 있는데, 문제를 다시 한 번 환기시킬 수 있는 공연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머리 모양 바꾸듯이, 유행가 듣다가 싫증내듯이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살갗에 느껴지는 엄연한 현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이한철씨의 공연이 끝난 후에는 용산 참사 유가족들의 인사말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고 이상림씨의 처 전재숙씨를 비롯한 고인의 부인들은 "이 콘서트에 모인 젊은이들이 용산을 오래도록 기억해주면 좋겠다"며 "콘서트를 열어주셔서 감사하다"는 고마움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뒤이어 무대에 등장한 브라스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도 "참사가 있고 2주 후 그 앞을 가봤다"며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참담했고 이게 전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행복한 마음으로 용산을 한 번 더 생각하자"며 "평화는 다같이 우리 손잡고 흔들면 되는 것"이라고 노래하며 공연장을 뜨겁게 달궜다.

 

흥겹고 말랑말랑했던 공연은 록 그룹인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블랙홀'이 등장하면서 한층 더 격렬해졌다. 사람들은 자리를 박차고 무대 앞으로 모여 함께 해드뱅잉하며 음악과 호흡했다. 블랙홀의 보컬 주상균씨는 "재개발로 올리려고 하는 높은 건물들이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이 아닐까 싶다"며 "바벨탑이 결국 어떻게 됐죠?"라고 관객들에게 되묻기도 했다.

 

"2만원이 아깝지 않은 공연"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지던 공연은 끝났다. 그러나 이틀간 펼쳐진 공연의 열기와 음악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은 뜨거움으로 오롯이 간직될 것이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신나게 뛰며 공연을 즐기던 한소영(17)양은 "용산 참사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 아프고 처참했다"고 사건을 기억하며, "신나는 공연을 통해 용산 유가족 분들을 도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진(26)씨 역시 "2만원이 아깝지 않은 공연이었다"며 "공짜로 공연을 본 기분"이라며 한껏 고조된 표정이었다.

 

두 달간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했던 신유아 문화연대 활동가는 "힘들게 준비했던 공연이지만 유가족 분들이 좋아하고,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좋은 행사를 기획해 무사히 잘 치르고, 유가족 분들에게 후원금도 전달할 수 있어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틀간의 공연은 끝났지만, 용산의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엎질러진 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고 수습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끔직한 일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방어기제 중 하나다. 우리는 분노하고 울고… 그리고 잊어버린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이 죽음에 대해 우리는 기억함으로 맞서야 하지 않을까. 즐겁고 씩씩하게, 웃으면서!


태그:#용산참사, #라이브 에이드 희망,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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