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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자연을 차렸다. 방풍나물과 모둠나물생채가 봄의 기운을 전달해준다
 식탁에 자연을 차렸다. 방풍나물과 모둠나물생채가 봄의 기운을 전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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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음식이고 음식이 곧 약이라는 약식동원(药食同源) 사상.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게 약선요리이다. 병을 예방하고 또 치료를 돕는 약선요리는 자연과 선인들의 지혜가 만들어낸 자랑스런 식문화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왜 약선요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는, 음식이 병을 만드는 작금의 식문화가 대변해주고 있다.

모든 식당이 저런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낸다면...
 모든 식당이 저런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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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약선요리가 대중화되고 있다. 부산 광안리 성베네딕토 수녀원 뒷편에 자리잡은 진미정. 약선요리를 표방한 자연요리전문점으로서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다.

"약선요리라고 하면 부끄럽고... 그냥 자연요리라고 생각해요."

주인장의 말에서 겸손함이 묻어난다. 그런 겸손함이 있기에 시선이 자연에 머물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 몸은 자연의 일부이기에 음식 역시 자연이어야 한다는 담박(澹泊)한 믿음. 그래서 진미정의 요리에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애착이 가득 담겨 있는 듯하다.

약선요리에 대한 개념은 일반적이지 않다. 왠지 비범하고 특별한 음식이라는 생각. 하지만 진미정의 음식은 결코 비범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조금만 신경 쓰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에 정성이라는 양념을 더했을 뿐이다. 이런 표현이 특별하다면 요즘의 식문화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일 터.

화학조미료와 가공식품이 점령한 식탁은 자연과 가까울 리가 없다. 정통의학이었던 우리의 한의학이 대체의학이 되어버린 현실처럼, 진미정의 자연요리 역시 현대의 식문화와는 반하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특별한 것이다.

홍시소스 샐러드, 모든 요리에는 자연이 깃들어있다
 홍시소스 샐러드, 모든 요리에는 자연이 깃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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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나오는 샐러드부터 색다르다. 약선요리 하면 소박한 색상일 거라는 예상을 비켜간다. 다만 칼라는 있되 인위적인 칼라가 아니라는 게 일반요리와의 차이이다. 채소에 끼얹은 소스는 홍시. 자연이 만든 색상은 눈으로만 봐도 벌써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단호박찜에 구운 버섯과 견과류등을 더한 전채요리가 입맛을 돋군다
 단호박찜에 구운 버섯과 견과류등을 더한 전채요리가 입맛을 돋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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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단호박에 구운버섯과 견과류, 건포도가 더해지고 소스로 완성시킨 전채요리. 약선요리가 꼭 몸만을 위한 요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미각의 만족까지 아우르는 건, 약선요리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물김치에 백련초로 색을 입혔다
 물김치에 백련초로 색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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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롭기 십상인 물김치에는 고운 색을 입혔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의 색상은 모두 자연소재에서 취한 것들이다. 샐러드부터 시작해 비트로 색을 낸 물김치까지 보고 있노라면 요리사의 칼라감각이 범상치 않음을 눈치 채게 된다.

잠시 나눈 대화에서 그의 전공이 미술이었음을 알게 되었었다. 미술과 요리는 색을 쓰고 창의성을 요한다는 점이 같다. 또 대중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것도 같다. 분야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것이다.

실제 주인장은 요리를 하면서 화선지에 색을 칠해가는 착각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요리를 즐기지 않고 일로서 대했다면 그런 자기만족을 얻게 되었을지는 의문이다. 시각의 만족은 미각의 만족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일반 대중요리에서 간과되었던 색상의 조화가, 우리 식문화에 바람이 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반식당에서 가장 무심하게 내는 게 지짐이다. 지짐은 형식적인 구색차림이란 인식의 산물이다. 진미정에서는 다르다. 요리사의 정성스런 손길은 하찮게 여기기 쉬운 지짐에까지 미친다. 잣으로 풍미를 보태고 어린 취나물로 그림을 그려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요리는 나라마다 요리사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하지만 본질은 하나다. 몸에 이로워야 한다. 자칫 기교에 빠지면 요리의 본질에서 빗겨나갈 수 있다. 진미정의 요리는 기교가 있지만 선을 넘지는 않는다. 재료의 순수성을 살리는 요리법은 본질을 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된장을 양념으로 사용한 방풍나물이나, 갖가지 봄의 생명을 한데모아 무친 모둠나물생채가 그렇다. 씁쓰름한 생채에서는 봄의 기운이 연출되었다. 입맛이 돌 수밖에.

잡채에도 상당한 공력을 들였다. 식감의 조화가 우수하다
 잡채에도 상당한 공력을 들였다. 식감의 조화가 우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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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미정의 당면은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잡채는 갖가지 재료가 어우러져야 제맛이다. 당면이 주재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면이 지배적인 잡채가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진미정에서는 잡채란 무엇인지 잘 말해준다. 당면의 비중은 줄이고 재료의 비중은 높였다. 식감을 살린 천연의 재료와 부드러운 당면의 조화라니. 혹, 그대가 진미정을 찾는다면 다른 곳에서 무심코 대했던 요리에도 관심을 두길 권한다. 지짐이나 잡채 같은 요리 말이다. 

가리비와 굴찜
 가리비와 굴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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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미정은 부산이라는 이점을 살려 해산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문어숙회나 가리비찜, 주꾸미초회 등은, 식탁의 조화와 풍성함을 연출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양파와 부추를 곁들인 소고기구이와, 채소탕수까지 이어지는 요리 여정의 대미는 연잎약밥이다.

연잎약밥, 밥을 보면 그 식당의 모든 게 보인다
 연잎약밥, 밥을 보면 그 식당의 모든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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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밥이 그렇다. 밥에는 그 식당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앞서 진미정의 요리에 대해 장황하게 상찬을 늘어놓았지만 모두 잊어주시라. 나의 백마디 설명보다 눈에 보이는 연잎약밥 하나가 더 많은 진실을 보여주지 않겠는가.

맛객의 음식철학은 자연주의이다. 이 철학을 외식업 현장에서 실천하는 업소가 진미정이다. 최근에 들렀던 부산의 고깃집 談(담) 역시 자연주의 식단을 추구한다. 두 업소는 화학조미료와 가공식품을 배제하고 요리에 진실한 마음을 담아낸다. 요리를 통해 철학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맛 이상의 기쁨이자 보람이었다.

시대의 가치는 점차 맛있는 음식에서 이로운 음식으로 옮겨가는 추세이다. 혀가 원하는 음식이 아니라 몸이 원하는 음식 말이다. 그런 경향에 진미정은 딱 들어맞는 음식점이다.

음식의 가치는 맛에만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언제나 음식의 화두는 맛이었고, 맛을 위해 음식의 가치가 훼손되는 경우도 왕왕 있어 왔다. 갈수록 맛집이 넘쳐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재료가 지닌 순수성을 살리지 못한 요리는 더욱 늘어만 갈 것이다. 이제 우리 시대 진정한 맛과 맛집의 의미에 대해서 새롭게 고찰해 볼 시점이 되었다. 진미정의 자연요리가 그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약선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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