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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穀雨)라는 지난(20일) 촉촉한 단비가 메마른 세상에 내리기 시작할 때 집을 나섰다.

작은 몸뚱이를 모두 감싸앉는 큰 우산을 펼쳐들고 흥겨운 빗소리에 발맞춰 고갯길로 걸어갔다. 빗속을 오붓이 걸어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질 않았지만 특유의 비 냄새를 잊지는 않았다.

 

 

 

살벌한 8차선 도로를 따라 단풍나무와 벚나무가 번갈아 늘어선 가로수 길을 나아가니, 작은 빗방울과 살랑이는 비바람에 연분홍 벚꽃잎이 흩날렸다. 집게손가락으로 살짝 집어보기도 두려울만큼 꽃잎들은 너무 연약해 보였다.

 

 

그 꽃잎들이 비단처럼 얇게 깔린 길 위를 조심스레 걸어가다, 육중한 덤프트럭이 쉼없이 오가는 공촌정수장 증설 공사현장 입구의 벚나무 가지가 찢겨져 나간게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에 세게 부딪쳐 꺽여버린 것을 보니, 필시 조심성 없는 무자비한 덤프트럭의 소행일 것 같았다.

 

 


생가지가 우악스레 찢겨진 벚나무 뿐만 아니었다. 손만두처럼 탐스런 하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탱자나무가 철조망과 함께 낯선이의 출입을 가로막고 있는 숲 속에서는 포클레인과 트럭, 인부들이 빗속에서도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나무를 옮기고 있었다.

 

 

 

 

지구의날, 찢기고 뿌리잘린 나무의 아픔에 부끄러워!

 

철조망 안 숲 속에 심어둔 나무를 내다 팔려는지 인부들은 요 며칠간 단풍나무 뿌리를 전기톱으로 잘라내며 땅 속에서 포클레인를 동원해 끄집어 냈다. 그렇게 찢기고 뿌리마저 잘려나간 나무들의 아픔이 벚꽃잎을 떨구는 비와 함께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지구의 날'이라는 오늘(22일)도 단풍나무들은 우왁스런 포클레인의 힘에 뿌리채 뽑히고, 나무들이 서있던 자리는 무덤같은 구덩이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자식을 잃은 어머니 숲의 애처로운 눈물이 구덩이에 고여 있었다. 그 눈물마저 빼앗으려 지자체는 철조망 안 계곡 깊숙한 곳까지 포클레인을 끌고 들어가 사방댐을 만들고 있었다. 그곳은 터무니없는 '날림치' 자연형 하천공사가 벌어지는 공촌천의 발원지다.

 

 

언제까지 나무과 숲의 아픔과 슬픔을 마주해야 하는건지? 언제까지 필요 이상으로 나무와 숲을 해치면서 인간만 살아갈 것인지? 연두빛으로 물든 계양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내게 물어왔다.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고 그만 푹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곳곳에서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 150억 원짜리 국내 최대 생태통로를 만들며 내건 "동물들아! 고맙지?"라는 낯뜨거운 현수막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차마 부끄러워 오가지 못하고 마냥 빗속에 서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숲, #지구의날, #나무, #생태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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