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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동성당 들머리에 마련된 농성 천막, 농성 34일째임을 알리는 게시판이 붙어있다.
▲ 농성 34일째 답동성당 들머리에 마련된 농성 천막, 농성 34일째임을 알리는 게시판이 붙어있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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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거셌다. 인천 답동 성당 어귀에 세워진 비닐 천막은 바람에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위태로웠다. 지난 3월 18일 시작한 사제들의 경인운하 백지화 촉구 릴레이 단식 농성이 34일째를 맞이한 가운데, 열 평 남짓한 천막 안에서는 이날도 어김없이 생명평화기원 미사가 열렸다.

"주님과 나는 함께 걸어가며 지나간 일을 속삭입니다. 손을 맞잡고 산과 들을 따라 친구가 되어 걸어갑니다. 손을 맞잡고 산과 들을 따라 친구가 되어 걸어갑니다."

가톨릭 성가 '주님과 나는'으로 시작된 미사를 집전한 김성훈 부천 심곡성당 주임신부는 강론에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와서 국민들이 느꼈던 배신감과 소외감이 우리를 이 자리에 앉게 한 것"이라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위에 하느님의 사랑이 실천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하자"고 말했다. 이 날 미사에는 인근 송현동과 송림동, 부천 심곡동에서 온 신자 30여 명이 참석했다.

(왼쪽으로부터) 이준희 총대리 신부, 김성훈 신부, 박병석 신부, 이재천 신부
▲ 천막안의 사제들 (왼쪽으로부터) 이준희 총대리 신부, 김성훈 신부, 박병석 신부, 이재천 신부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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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농성에 참가하는 사제들은 매일 오후 3시에 시국미사를 집전하고 다음 날 오후까지 24시간을 금식하며 천막을 지킨다. 230여 명의 인천교구 소속 사제들 중 이미 30여 명의 신부들이 농성에 참여했다. 인천에서 사제들이 노상 농성을 한 것은 지난 1987년 호헌철폐를 요구하는 농성이후 22년 만의 일이다.

농성을 주도한 박병석 신부(43·인천교구청 사회사목 차장)는 "기공식 바로 전날까지도 (공사 착공 일자를 문의했더니) 언제 할지 모른다고 답변했던 정부였다"며 "시골에서 도랑 하나 새로 파는데도 동네 어른들이 모여서 상의를 하는데, 2조2500억 원의 막대한 혈세가 들어가는 공사를 벌이면서 얼마나 떳떳치 못하면 기공식도 쉬쉬하며 했겠느냐"고 말문을 열었다.

박 신부는 "정부는 굴포천 방수로 공사와 경인운하가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하지만, 수심이 80cm밖에 안 되는 방수로와 최소 6.3m의 수심을 유지해야 하는 운하는 분명히 다르다. 이렇게 되면 애초 공사의 목적이었던 홍수 조절 기능은 없어지고 오히려 홍수의 위험이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엄청난 공사를 벌이면서도 공무원들과 대형 건설사, 일부 찬성 측 주민들만 모아놓고 반대 목소리는 철저히 차단한 채 공청회를 여는 것을 보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국민의 목소리를 대신하기 위해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게 됐다"고 밝혔다. 박 신부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계"라며 "지속가능한 세상을 지켜나가는 것이 사제의 양심에 맞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병석 신부가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하고 있다.
▲ 성체를 분배하는 박병석 신부 박병석 신부가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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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도 지난 12일 발표한 부활절 메시지에서 이례적으로 전체의 1/3을 할애해 경인운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최 주교는 이 메시지에서 "정부가 하는 사업들이 사리에 맞고 국민 전체의 이익과 후손에게 길이 이익이 되도록, 신중하고 철저한 연구와 국민적 공감대를 거친 뒤에 이뤄지기를 소망한다"며 "정직한 정부가 되기를 기도한다"고 밝혔다.

'가톨릭환경연대'의 권창식 사무처장은 "경도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83%의 시민들이 경인운하 건설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서울·인천·경기 지역의 150여 개 단체로 구성된 '경인운하 백지화 공동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경인운하 반대운동을 벌여나가겠다"고 말했다. 권 처장은 "오는 29일 인천 부평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3당 후보들에게 경인운하 건설과 관련해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인천교구는 다음 달부터 역 주변 기도회와 시국미사, 도보순례 등을 통해 경인운하 백지화 운동의 수위를 높여 나갈 계획이다.    


태그:#경인운하, #경인운하 백지화, #인천 답동성당, #인천 사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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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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