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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기간인데 푸념처럼 글을 쓰고 있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엔 모두 4과목을 시험 본다. 지역사회복지론, 사회복지개론, 사회복지조사론 등 사회복지분야 3과목과 상담심리학 1과목 등 모두 4과목이다.

오늘(21일) 오전 10시에 본 첫 시험 '지역사회복지론'을 예상대로 망쳤다. 아내는 학점에 연연하지 말고 무사히 졸업만 하라고 하지만 성적표를 보면 딴소리 한다. 나도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초지일관 학업에 전념해서 '평균 4점이 넘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만학도'가 되고 싶다. 그래서 역경을 이긴 만학도의 인간승리 스토리의 지면을 장식하고 싶지만 맘뿐이다.

후배가 운영하는 잡지사에 보낼 원고마감에 어제오늘 쫓기다 방금 보냈다. 엊그젠 분신자살한 재중동포 문제로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그렇게 쫓기다보니 공부할 시간이 있다 해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제 종일 원고 때문에 끙끙거리면서도 '시험공부는 언제 하노! 아, 인생이여!' 투덜투덜 조마조마하다가 자정 넘어서 잠들었는데 시험이 무섭기 무서운가보다. 꿈에서 시험에 쫓기다 새벽에 깨어나 일찌감치 씻고서 평상시 등교 때보다 1시간30분 이르게 학교에 도착, 강의실 들어서니 수녀님이 나보다 앞서서 시험공부 중이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란 말처럼 틀림없이 저 수녀님이 나보다 훨씬 시험을 잘 볼 것이고, '당근' 학점도 앞설 것이다.

아무리 나를 생각해도 학생 본연의 자세가 되어 먹질 못했다.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전철 안에서 교재나 강의노트를 봐야할 텐데 그렇게 하질 못하고 <한겨레신문>이니 시집을 펼쳐들고 시간을 잡아먹곤 했다. 난 지금 반성하면서 나의 행위를 되돌아보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신문을 접어버리고 강의노트를 펼쳐들었다. 전철 안에서도, 셔틀버스 안에서도, 걸어가면서도, 화장실에 갈 때도, 커피 뽑으러 갈 때도 강의노트를 놓지 않았다. 그런데 시험은 망했다. 급한 밥은 설익기 마련이다. 진즉에 그렇게 하지 ㅉㅉㅉ! 이제 남은 것은 교수님의 선처를 바라며 읍소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늘의 뜻을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

"아빠, 제가 대신 시험 봐 줄까요! 히히^^"

인터넷 기업대표 초청특강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인터넷 기업대표 초청특강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 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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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큰아들(08학번 휴학)과 전화통화를 했다. 알바를 마친 아들이 아빠 걱정 때문에 전화를 한 것이다.

"아빠 시험 잘 봤어요?"
"시험지는 잘 봤는데… 쩝!"
"아빠, 제가 대신 시험 봐줄까요! 히히^^^"
"야아, 정말 그래주면 좋겠다!"
"아빠! 커닝은 그래도 괜찮지만 대리시험은 안돼요!"

"야, 임마! 아빠도 잘 알아! 오죽하면 이런 소리가 나오겠냐. 그런데 아빠하고 같이 시험 본 복학생 하는 말이 '복학하면 A+ 받을 줄 알았는데 완전 망했어요!'라며 한숨 쉬는데 2년 후면 너도 이렇게 될 수도 있으니 열심히 공부해야 돼!"
"알아요, 아빠! 알았으니까 나머지 시험 잘 보세요!"
"알았어, 넌 집안 청소나 하고 '햇살'(입양한 유기견)이 똥이나 잘 치우고 있어!"

아, 시험! 주기도문처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이런 것 말고 '제발 시험에 들게 하옵시며…'라고 주억거리고 있다. 시험보게 되면서 막내아들(고2)의 심정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무쉰 놈의 시험이 그리도 많은지 아 이놈의 시험공화국! 막내아들아 힘내라 힘!

그런데 왜 인간성에 대해선 시험을 보지 않는 거야! 그러니 인간성은 '개싸가지'면서도 공부 잘하는 것 하나로 출세하는 개싸가지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된 거야. 중요한 건 인성이라고 인성! 이런 헷소리도 늘어놓다가 이런 생각도 든다.

'아! 이거 가방끈 늘이려다 생명 끈 짧아지는 거 아냐!'

블로그가 왜 그래! 완전 개점휴업이야!

도서관 밖으로 나가 담배 한 대 피웠다. 피우면서 블로그 개설을 촉구한 선배와 전화통화를 나누었다.

"조형, 요즘! 블로그가 왜 그래! 완전 개점휴업이야!"
"개강한 뒤 학교 다니랴 리포트에 쫓기랴 뭐 정신이 없습니다."
"블로거는 정식 기사처럼 글을 쓰려는 근엄한 얼굴을 버려야 해. 잠깐 짬을 내서 단상이라도 그냥 쓰는 게 블로그의 장점인데, 바로 학교 다니고, 리포트 이야기를 쓰면 되겠네."
"예, 그렇게 하렵니다. 그런데 오늘은 중간고사 시험기간이라서…."
"어렵게 생각할 것 없소. 그 시험 보는 어려움을 한두 줄이라도 쓰면 되지!"
"알겠습니다. 머리도 아프고 공부도 안 되는데 한두 줄이라도 쓰겠습니다."

통화 끝낸 뒤 가방끈 늘이기 두 번째 글을 쓰게 됐는데, 버릇이 들어서 한두 줄로는 끝나질 않는다. 이렇게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시험공부 시간 빼앗긴다는 뜻.

올해 1월 1일 개설한 블로그 '햇살 따스한 뜨락'. 방학 동안엔 그야말로 열나게 썼는데 개강하면서 개점휴업 상태임. 오, 나의 불쌍한 블로그여.
 올해 1월 1일 개설한 블로그 '햇살 따스한 뜨락'. 방학 동안엔 그야말로 열나게 썼는데 개강하면서 개점휴업 상태임. 오, 나의 불쌍한 블로그여.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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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아닌 거리로 나서라, 나의 어여쁜 실업자 학우들이여!

도서관은 초만원이다. 자리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쫓겨 다녔다. 좌석 발권을 받은 뒤 그 자리에 갔더니 어떤 학생이 가방으로 자리를 잡아놓고 어디론가 갔다. 할 수 없이 빈자리에서 자료정리를 한참 하는데 어떤 학생이 발권표를 보여주면서 자리를 비켜달라고 한다. 도서관 벽면에는 도서관을 사석화 하는 문제로 대자보가 부착돼 있다. 좌석 발권이 되지 않은 좌석과 좌석에 놓여진 물건을 수거하겠다는 것이다.

아, 취업도 되지 않는 예비 실업자들의 자리 전쟁이 심각하다. 백수들이 넘쳐나면서 도서관은 시험기간이 아니더라도 만원이다. 학점 경쟁은 더 치열하다.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들의 신경전은 더하다. 그런데 말이야, 여기서 치고 박고 경쟁하면 뭐하나. 도대체, 인력시장이 열려야 몸을 팔든 지식을 팔든 할 것 아닌가 말이야? 그래서 학우들에게 이렇게 선동하며 부추겼다.

"실업은 학내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고 정치문제라고, 그러니 도서관에만 있지 말고 거리로 뛰쳐나가야지. 이놈의 정권이 실업자 양산하면서 기껏 인턴 따위로 우롱하는데 날 좀 봐주십쇼! 한다고 실업문제가 해결 되겠냔 말이야! 나만 뽑힐 것 같은 착각 버리라고, 나만 먹고 살겠다고 아옹다옹하다가 지금처럼 졸업과 동시에 백수로 전락하는 거야. 자기의 권리는 자기가 찾는 거야. 거리로 나가야 한다니까! 거리!"

투쟁을 외치지는 않았지만 거의 선동이었다. 하지만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만 피 보면 어떻게 하려고요! 뭐 이런 표정이다. 아아, 나의 예쁜 06학번 동기인 여학생을 도서관에서 만났는데 벌써 4학년 졸업반이란다. 예쁜 건 예쁜 거지만 현실의 그대 얼굴을 보니 가엾은 것이다. 아아, 그대도 몇 개월 지나면 백수가 되어야 한단 말이오. 잊지 마시오, 직시하시오, 조국이 그대를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

내가 이럴 때가 아니다. 기껏 선동할 처지가 아니다. 내 코가 석자인데 말이다. 조금 후 저녁 8시엔 상담심리학 시험을 본다. 시험범위는 왜 그리 오살나게 넓은지.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열공 모드에 돌입하자, 열공!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tajin.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험, #실업, #만학도, #대학,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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