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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지난 9일 오후 석면 함유 탈크를 사용한 의약품 1,122개 품목에 대해 판매·유통 금지 및 회수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한 가운데, 서울 은평구 녹번동 식약청 실험실에서 한 연구원이 의약품 샘플을 편광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고, 모니터에는 석면이 표시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지난 9일 오후 석면 함유 탈크를 사용한 의약품 1,122개 품목에 대해 판매·유통 금지 및 회수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한 가운데, 서울 은평구 녹번동 식약청 실험실에서 한 연구원이 의약품 샘플을 편광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고, 모니터에는 석면이 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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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이 담당하던 음식점 등 업소에 대한 지도·단속기능과 허가업무를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는 조직개편안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최근 차관회의에서 통과된 '식약청 기능·조직 개편안'은 가뜩이나 부족한 식약청 인력을 더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어 '거꾸로 간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식약청 조직개편안은 21일 국무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이에 대해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진단"이라며 "멜라민과 석면 탈크 사태를 겪은 정부가 국민의 식·안전 문제는 아예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청장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윤여표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식약청에서 열린 '석면 탈크 관련 후속조치 발표 기자회견'에서 동아제약 3개, 일양약품 32개, 휴온스 55개 등 국내 주요 제약사 제품 등 1,122개 품목에 대해 판매·유통 금지 및 회수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하고 있다.
 윤여표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식약청에서 열린 '석면 탈크 관련 후속조치 발표 기자회견'에서 동아제약 3개, 일양약품 32개, 휴온스 55개 등 국내 주요 제약사 제품 등 1,122개 품목에 대해 판매·유통 금지 및 회수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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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청 안에서 직능·학연·지연에 얽매여 끼리끼리 모이고, 인사철만 되면 온갖 로비와 투서가 난무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다."

윤여표 식약청장의 말이다. 석면 파동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눈물'까지 흘린 윤여표 청장은 지난 18일 열린 직원 워크숍에서 '소통 부재', '인사 로비' 문제 등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정면으로 질타했다.

식약청 관계자에 따르면, 윤 청장은 "(쓰레기 불량 만두 파동이 터진) 2004년에도 부서 간 조율이 안 돼 '칸막이 행정'이니 하는 비판을 들었는데 그 이후 지금도 전혀 개선이 안 되고 있다"며 "지금은 식약청 창설 이래 최대 위기다.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직의 위상'에 대한 위기감의 발로인 셈이다.

그는 "'내일은 또 식약청의 어떤 잘못이 보도될까' 싶어 뉴스를 접하기 두려울 정도지만, 그럴수록 미리미리 대처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 가능한 개선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지금이야말로 스스로를 반성하고 쇄신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충북대 약대 교수 출신인 윤 청장은 '생쥐머리 새우깡' 사태가 터졌던 지난해 3월, 이명박 정부 첫 식약청장으로 기용됐다. 독성 전문가이자 학자 출신인 그가 지난해 멜라민 파동과 이번 석면 사태를 겪으면서 느꼈을 자괴감은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윤 청장이 직원들을 상대로 한 워크숍에서 작심한 듯 쓴 소리를 쏟아낸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특히 식약청은 이번 석면 사태를 거치면서 조직의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석면 탈크를 사용한 의약품에 대해 판매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지만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이율배반적인 설명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유해하지도 않은 약을 왜 못 팔게 하느냐"는 제약사들의 불만은 둘째 치고, "그래서 먹으란 얘기냐, 먹지 말란 얘기냐"는 환자들의 아우성이 빗발쳤다. 식약청의 '오락가락' 행정이 사태를 확대 재생산시키고,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셈이다. 

지난 13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타에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윤 청장은 결국 "식약청 직원들이 밤새우면서 일하는데 범위가 워낙 넓어 힘들다"며 눈물을 흘렸다.

모든 책임을 식약청에만 돌리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향이라고 할 수 없다. 윤 청장의 말대로 업무에 비해 식약청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수입식품 증가 등으로 인해 매년 10% 이상 업무량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995년 9만4875건이던 수입식품은 2005년 21만5363건으로 약 2.7배 증가했다. 중국산 수입식품은 같은 기간 6배나 늘었다.

우리나라 식약청은 199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모델로 출범했지만 수준 차이는 현격하다. 직원 1인당 2만5234명의 국민을 담당하는 FDA에 비해 식약청은 3만9382명을 담당한다. 직원 1인당 1.6배 정도 더 많은 국민을 책임지는 셈이다. 전체 정부 인력에서 차지하는 식약청 인력 비중도 미국이 6.7배 더 크다. 업무에 비해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사전 예방 행정은커녕 의약품이 시판된 후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창구 전 식약청장이 "식약청 직원들은 평균적으로 1년 중 3분의 1을 야근해야 할 만큼 격무에 허덕인다"며 "식약청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최소 2000명은 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오죽하면 전재희 장관도 반대했겠나?"

윤여표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식약청에서 열린 '석면 탈크 관련 후속조치 발표 기자회견'에서 동아제약 3개, 일양약품 32개, 휴온스 55개 등 국내 주요 제약사 제품 등 1,122개 품목에 대해 판매·유통 금지 및 회수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한 뒤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윤여표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식약청에서 열린 '석면 탈크 관련 후속조치 발표 기자회견'에서 동아제약 3개, 일양약품 32개, 휴온스 55개 등 국내 주요 제약사 제품 등 1,122개 품목에 대해 판매·유통 금지 및 회수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한 뒤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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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가뜩이나 부족한 식약청 인력을 더욱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차관회의에서 통과된 '식약청 기능·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현재 114개 과가 108개로, 1425명의 인원은 1401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무엇보다 식약청이 가지고 있던 음식점 등의 지도·단속 업무를 자치단체로 이전하도록 한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 식·의약품 안전은 흥정대상이 아니다"며 "정부는 식약청 단속권의 지방이관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자치단체로의 기능 이전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해왔던 식약청조차 찬성으로 입장을 바꿔,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식약청은 "행정안전부가 각 자치단체에 식·의약품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과를 두고 식품과 의약품 안전관리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후속조치를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식약청의 한 관계자는 "업무량이 늘어난 데 비해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범정부적 조직개편이 추진되는 가운데 인원을 늘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지도·단속 업무와 인원이 넘어간 대신 식약청에 77명이 새로 배치된 것이므로 내용상 조직이 축소됐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식약청은 그동안 식품업소의 지도 단속과 집행기능 인력을 지방으로 이양하려는 데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심지어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은 지난해 8월 취임 직후 "지자체가 식약청 업무를 처리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를 이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시 식약청 기능의 지자체 이전 방안은 청와대까지 보고를 마친 사안이라는 점에서 전재희 장관의 발언에 이목이 집중됐다.

전 장관은 "자치단체장의 경우, 선거를 의식해 단속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고 식약청이 지자체에 대한 인사와 예산 감사권한이 없어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하다"며 "업무 이양은 국민의 건강관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견을 청와대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영희 의원은 "식·의약품 안전은 예방적 차원의 단속이 최선이다. 오죽하면 전재희 장관조차 취임 일성으로 이를 반대했겠느냐"며 "주차단속이 지방정부로 이양된 후 불법주차단속 실적이 1/4~1/5수준으로 떨어진 점이 이를 반증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2007년 1월부터 2008년 6월 사이 지자체가 단독으로 음식점 단속했을 때 적발율은 0.9%인 반면, 식약청 주도로 지자체와 합동단속을 벌였을 때는 거의 10배에 가까운 8.76%에 이르는 높은 적발율을 보였다. 최 의원에 따르면,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미국은 150개, 캐나다는 203개, 일본은 9개의 지역사무소를 두고 지자체와 유기적인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최 의원은 "결과적으로 지방 식약청의 식·의약품 지도·단속기능과 허가업무를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는 것은 이 정부가 국민의 건강관리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며 "식약청 단속 기능을 지방으로 이양해 식·의약품 안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자유선진당 소속 변웅정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장은 최근 1400명 수준인 식약청의 인력을 2000명 선으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식약청 혁신특별대책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태그:#석면 파동, #식약청 조직개편, #윤여표 식약청장, #최영희 민주당 의원, #전재희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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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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