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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수문장(2009.4.11일 오후)
 덕수궁 수문장(2009.4.11일 오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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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3시 무렵 덕수궁(사적 제124호)에 들렀다. 만발한 봄꽃들 때문인지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경복궁이나 경희궁과 달리 덕수궁에는 커피나 과자,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가게와 앉아 쉴 수 있는 곳이 많아 '궁궐'이란 유적지로서의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공원 같은 느낌이 더 강한 것 같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꽃이 거의 없는 계절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나 또한 일정이 일찍 끝나 시간 여유가 있거나, 누군가를 만날 때면 들르곤 한다. 입장료 1천 원을 내야 하지만 그래도 참 편안한 곳이 덕수궁이다.

그날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잠깐 쉰 후 중화문 맞은편 쪽 광명문에 다가갔다. 광명문에는 사료적 가치가 높은 '흥천사 종(보물 제1460호)'과 '보루각 자격루(국보 제229호) 및 '신기 전기 화차'가 보관·전시되어 있다. 때문에 덕수궁에 갈 때마다 잠깐이라도 꼭 들른다.

덕수궁 광명문-'흥천사 종(보물 제1460호)'과 '보루각 자격루(국보 제229호) 및 '신기 전기 화차'가 보관, 전시되어 있다.
 덕수궁 광명문-'흥천사 종(보물 제1460호)'과 '보루각 자격루(국보 제229호) 및 '신기 전기 화차'가 보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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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마찬가지. 광명문 한가운데 전시된 흥천사 종(고려 시대)을 보고 있었지 싶다. 그때 다섯 살가량의 계집아이가 '신기전기화차' 안내문에 매달리다시피 하더니 광명문 속으로 쏙 들어가 신기전기화차를 만져보기도 하고 그 주변을 뱅뱅 돌며 놀기 시작했다.

오빠로 보이는, 함께 온 남자아이는 안내문(판) 위를 양손으로 잡더니 안내문으로 엎어지다시피한다. 그렇게 몇 분. 그러거나 말거나 남매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아무런 말 한마디 없다.

덕수궁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들어가지 마라'는 경고 팻말이 광명문 신기전기화차 앞쪽에 있다. 사실 이런 경고 팻말도 실은 필요하지 않다. 들어가지도 만지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니까 말이다.

덕수궁의 버들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이름 그대로 죽죽 늘어진 버드나무 줄기와 가지에 일반 벚꽃보다 좀 작고 꽃 색깔이 진해 훨씬 야무져 보이는 꽃이 핀다. 죽죽 늘어진 가지에 올망졸망 피어난 꽃들이 운치 있는 그런 나무다. 창경궁의 버들벚꽃은 아직 못 봤다.

덕수궁 관리인들은 어디에 있을까?

전각 뒤에서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덕수궁은 사적, 중화전과 함녕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외에 즉조당이나 준명당, 석어당 등 눈여겨 볼 전각들이 있다.
 전각 뒤에서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덕수궁은 사적, 중화전과 함녕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외에 즉조당이나 준명당, 석어당 등 눈여겨 볼 전각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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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벚꽃이 피어 있는 시립미술관 앞을 지나 뒤뜰로 갈 수 있는 석조전 왼쪽. 그런데 초등학생 5~6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 다섯이 석조전 계단을 뛰어오르거나 계단 밑으로 기어다니면서 떠들썩하다. 다가가 보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몇 마디 해봤지만 이런! 아이들은 대꾸 한마디 없이 나를 흘낏 보더니 노느라 정신이 없다. '아줌마 잔소리 귀찮다'는 듯한 표정이다. 아이들의 엄마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덕수궁 관리인들은 또 어디에 있을까? 아니, 나만 너무 민감한 건가?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황위를 뺏긴 고종이 1907년 이곳에 억류되다시피 남았다. 이때 일제가 '덕수'란 궁호를 강요했다. '덕수'는 '상왕이 덕을 누리며 오래 사시라'는 뜻. 조선시대 초기, 정종이 상왕 태조를 위해 지은 궁궐 이름이다.

이들은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다. 오른쪽 제일 끝 여자가 품계석에 앉아 있다. 인솔자(관광 가이드)들의 제대로 된 문화적 소양도 중요한 것 같다.
 이들은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다. 오른쪽 제일 끝 여자가 품계석에 앉아 있다. 인솔자(관광 가이드)들의 제대로 된 문화적 소양도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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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전은 덕수궁의 중심 전각이다. 중화문과 함께 보물 제819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경희궁의 숭전전처럼 즉위식 같은 중요한 행사나 중신 회의가 열리던 곳이라 중화전 마당에도 신하들의 품계별 지정석인 품계석이 서 있다.

중화전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중화전을 오르는 계단 '답도'에 새겨진 '두 마리의 용'이다. 조선시대 궁궐 정전 중, 봉황 대신 '용'이 새겨진 유일한 '답도'다. 근정전(경복궁)이나 숭정전(경희궁)의 답도처럼 봉황을 장식하지 않고 용을 장식한 이유는 중화전이 대한제국 출범 이후 세워진 전각이기 때문이다. (1902년에 지었으나 1904년에 의문투성이 화재로 소실, 1906년에 재건) 이런 이유로 '황제를 상징하는 용을 장식'한 것이다.

'중화'라는 전각 명칭 때문인지 다른 궁궐들보다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덕수궁 중화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날도 중국 단체 관광객을 만났다. 그들이 왁자지껄, 무리지어 사라진 후 연인으로 보이는 이들 가운데 남자가 중화전 마당 품계석에 걸터앉더니 여자가 깔깔거리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중화전 계단 소맷돌에 걸터앉아 번갈아 사진을 찍었다. 그러더니 답도에까지 들어가 사진을 찍는 그들.

"그곳에서 나오세요. 그곳에 들어가 사진을 찍으면 어떡해요. 이 줄도 안 보여요? 저기 품계석이나 소맷돌도 앉으면 안 되는 곳이에요"
"@#$%&#%@&$#@…."

그들은 중국인들이었다. 남자는 중국말로 내게 몇 마디, 자기들끼리 눈을 껌벅거리며 몇 마디 주고받더니 내 눈치를 살피면서 앞서간 무리들이 사라진 쪽으로 도망치듯 가버렸다. 그들이 사라진 후 씁쓸한 기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들이 하필 중국인이라 더 씁쓸했다. 우리와 중국은 많은 영향을 주고받다 보니 건축물도 많이 닮았다고 한다. 때문에 세계 어떤 나라 관광객들보다 중국 관광객들은 우리의 궁궐에 익숙할 것 같다. 그렇다면 궁궐이 어떤 존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겠건만, 남의 나라 궁궐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중국인들이라니!

불현듯 "중국인들이 뻐기면서 가는 곳이 덕수궁이라더라!"던 친구 말도 생각났다. '우리의 문화재 보존 부실과 문화적 소양이 부족해 외국 관광객들까지 우습게 알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아닐까? 외국 관광객을 이끄는 사람들이 좀 더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품계석에 앉고 소맷돌에서 미끄럼 타는 아이들

품계석에 올라타 놀던 아이들이 소맷돌에서 미끄럼을 탄다.
 품계석에 올라타 놀던 아이들이 소맷돌에서 미끄럼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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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마음으로 중화문을 나서기 직전 문득 뒤돌아 본 중화전. 그런데 한 아이가 품계석 사이를 뛰어다니며 품계석마다 앉아보고 엎드려보며 놀더니 계단으로 뛰어가 오른쪽 소맷돌을 미끄럼 타듯 타고 노는 것이 아닌가!

그런 아이에게 "잠깐만 그대로 있어!"라며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누르는 엄마.

"품계석이나 이곳(소맷돌)은 올라가거나 앉으면 안 되는 곳인데..."
"이 쬐그만 아이가 앉는다고 돌로 만든 게 뭐 닳기라도 해요? 그리고 좀 앉으면 어때요?"

"누가 닳는다고 그래요? 역사 유적물이잖아요. 원래는 손으로 만져도 안 되는 거예요! 게다가 미끄럼까지 타면 애가 다칠 위험도 있잖아요!"
"그런데 아줌마가 뭔데 참견이에요? 신경질 나게 괜히 참견이야! 재수 없게!"

덕수궁 중화전 앞 품계석과 소맷돌에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
 덕수궁 중화전 앞 품계석과 소맷돌에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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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 월대 위에 세워진 중화전 계단 양쪽 소맷돌이 길다. 소맷돌이 길기 때문인지 이 소맷돌에 올라가 노는 아이들이 많다. 조금 전의 그 사람들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또 다른 남매가 소맷돌에 당연하다는 듯 턱! 올라가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왼쪽(전각 중심) 소맷돌에 엎드려 마당으로 얼굴을 향하여 미끄럼을 타는 남매는 '얼굴 다치면 어쩌려고'의 걱정까지 들건만, 그 엄마는 놀이터에서 미끄럼 타는 아이들 바라보듯 "조심해"라는 말 한마디 이따금씩 던지며 바라볼 뿐이다.

자주 갔었지만 무심히 보다가 중국 관광객 때문에 민감해져 관심을 두고 보니 참 많은 사람들이 품계석에 앉아 쉬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것 같다. 30여분 동안 20여명, 한 무리가 물러가면 또 다른 무리가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소맷돌도 마찬가지. 심지어는 들어가지 말라고 줄을 친 답도에까지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는 무리까지 심심찮게 보인다. 씁쓸한 기분으로 봄꽃이 만발한 덕수궁 대한문을 나섰다.

[후기] 덕수궁 관리소는 어떤 조치를 할까?

경복궁 금천의 해태. 궁궐이든 사찰이든 모든 유적지의 문화재적 가치는 부속물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유적지에서는 '만지거나 앉지 말라'는 등의 별도 안내 팻말이 없어도 손으로 만져보거나 앉는 등의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경복궁 금천의 해태. 궁궐이든 사찰이든 모든 유적지의 문화재적 가치는 부속물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유적지에서는 '만지거나 앉지 말라'는 등의 별도 안내 팻말이 없어도 손으로 만져보거나 앉는 등의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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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대한문 출구 쪽 안내소 앞에 한복을 입은 한 여자 분에게 중화전 마당에서 봤던 것을 이야기하며 '마땅한 어떤 조치'를 요구했다. 그때 "지적하신 것을 사무실에 전달, 경고 안내문 등을 설치하도록 하거나 우선 임시 안내문이라도 곧 세우도록 해보겠다"는 대답을 들었었다. 그리고 1주일 후인 18일에 다시 덕수궁에 확인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을 내지 못해 다시 가지 못했다. 그리하여 19일 오전 9시 30분. 덕수궁 관리소 측에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 그 이후 조치에 대해 물었다. 아래는 10분 가까이 전화 통화한 것을 정리한 것.

- 지난주에 보니 중화전 품계석이나 소맷돌에 앉아 놀거나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아 그 사실을 말하고 어떤 조치를 해줄 것을 요청했었는데?
"아마도 그때 안내소 앞에 서 계셨던 여자 분이 '도우미'였나 보다. (잠깐 기다리라며 확인한 후) 요청하신 것에 대해 특별하게 전달받은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 광명문 앞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팻말을 세웠다. 이 정도라면 중화전 앞에도 세울 필요가 있지 않나?
"광명문 앞에 그런 팻말을 세운 것은 그곳에 유물을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내 팻말을 별도로 세우진 않았지만 중화전 답도에 들어가지 말라고 쇠줄을 둘렀다. (그럼 됐다는 식으로 말했지 싶다.) 그리고 유물을 함부로 만지거나 품계석이나 소맷돌에 앉으면 안 되는 것이 당연한 상식 아닌가? 꼭 앉지 말라는 팻말까지 세워야 하나? 또, 그런 팻말을 세우면 '보기에 좋지 않다', '당연한 건데 팻말까지 굳이 세울 필요 있나? 기분 나쁘다"는 식으로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 내가 알기로 경복궁 근정전 마당 한쪽에는 '품계석에 앉지 말라'는 안내 팻말이 서 있다. 맞다. 품계석이나 소맷돌 등에 앉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데도 당연한 상식을 모르거나 문화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이 함부로 대한다면 팻말이라도 세워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 아닌가? 아니면 관리하시는 분이라도 항상 머물면서 바로잡든지. 아무튼 하루빨리 어떤 조치를 했으면 좋겠다.

내 전화가 귀찮은 걸까? 아님 껄끄럽다는 건가? 통화 중에 어서 빨리 전화를 끊어주었으면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더니 이야기 중에 문득 묻는다. "전화하신 분은 보통 일반인이세요?"라고. 이 물음이 나는 싫다. 시민으로서 당연한 요구 아닌가? 문화재 보호는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건가?

아, 잊고 있었다. 내가 그날 덕수궁 중화전에 30여 분 넘게 있는 동안 덕수궁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궁궐보다는 공원 느낌이 더 강한 곳, 덕수궁. 때문에 그에 맞는 문화재적 보호가 분명 필요하건만 그렇지 않은것 같다. 덕수궁 관리하시는 분들도 덕수궁이 궁궐이란 사실을 잊고 공원 관리하듯 관리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요구한 조치에 대해 화요일쯤에 통보해주겠다며 연락처를 남기란다. 매주 월요일 덕수궁은 휴관한다.(창덕궁도 월요일에 휴관, 경복궁과 창경궁, 종묘는 매주 화요일 휴관) 때문이란다. 약속한 대로 화요일인 어제(21일)오후에 전화가 왔다. 답변은 이렇다.

"지난 가을에 조선 5대 궁궐 안내문 설치를 모두 끝냈다. 궁궐마다 안내문이 다르거나 많을 경우 지저분하고 보기에 좋지않다는 이유로 문화재청 주관으로 5대 궁궐의 안내문를 통일, 문화재청이 지정한 장소에 설치했다. 때문에 요청하신대로 중화전 바로 앞에 중화전이 문화재(보물)라는 안내문이나 품계석에 앉거나 소맷돌 답도 등에 앉지말라는 팻말을 설치하기는 우리로서는 힘들다. 하지만 관리하는 분을 언제나 그곳에 있도록 하여 관리에 신경 쓰겠다. 전각 주변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좀 더 신경써서 단속하겠다."

전화를 끊고 실속있는 문화재 관리보다는 보기에 좋은 문화재 관리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씁쓸하다. 그날도 8명의 관리자들이 순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덕수궁에 2시간 남짓 있으면서 만난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은 석조전 앞에서 단 한사람. 약속이 지켜질지 다시 눈여겨 봐야겠다.


태그:#덕수궁, #중화전, #광명문, #문화재보호, #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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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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