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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15일은 미국의 납세 기일, 즉 연방정부와 주정부 소득세 신고 마감일이다. 그러나 올해 4월 15일은 좀 특이했다. '티파티'(Tea Party)라는 그룹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이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를 열었기 때문이다.

Taxdayteaparty.com 의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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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스데이티파티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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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오바마 시위' 벌이는 티파티 운동

1773년 '보스턴 차 사건'(보스턴 티 파티)의 의미를 되새겨 '납세일 티파티'(Tax Day Tea Party)라 명명한 이번 티파티 운동은 택스데이 티파티 사이트(Taxdayteaparty.com)에서 주도했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티파티 운동'이란 비대해진 현 정부가 국민의 돈을 빼내어 월가의 은행을 구제하는 것에 반대하기 위한 모임이다. 이밖에도 인종, 총기, 낙태, 불법이민자, 안보 문제 등을 주요 어젠더로 다루고 있다.

(* 보스턴 차 사건-1773년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영국의 과세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영국의 차를 보스턴 항구에 버린 사건)

이들을 본격적으로 행동의 장으로 끌어들인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2월 17일 오바마가 서명한 7870억 달러의 경기 부양책이다. 오바마 경기부양책은 35%의 감세와 65%의 정부지출을 주 골자로 하는데, 이 감세안이 시행되면 오는 6월부터 전 국민의 약 95%가 세금 혜택을 받게 된다. 연소득 7만 5천 달러 이하의 싱글은 400달러, 연소득 15만 달러 이하의 부부는 800달러의 세액공제를 받게 되는 것. 또 자녀가 있는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세제 혜택의 범위도 대폭 확대됐다.

전 하원의장이었던 공화당의 뉴트 깅그리치가 15일 택스데이 티파티 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비디오
 전 하원의장이었던 공화당의 뉴트 깅그리치가 15일 택스데이 티파티 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비디오
ⓒ 뉴트 깅그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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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티파티 운동의 참여자들은 "95%의 미국인들에게 세금 공제를 해준다는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은 언제나처럼 거짓으로 판명되었다"면서 오바마의 감세 정책을 비난하고, 실업자와 저소득층 지원에 대해서는 "공짜 집, 공짜 의료 서비스, 공짜 모기지, 공짜 음식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주의"라며 반대하고 있다. 또한 불법 이민자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것이 미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움직임을 '반 오바마 운동'이라 부르고 있다. 실제 이 티파티 운동은 공화당의 공식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미국의 유명 보수 단체와 보수 언론인 폭스뉴스(Fox News)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그 세를 불려왔다.

마침, 내가 사는 네브래스카 주 링컨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거리에 있는 오마하에서도 15일 택스데이 티파티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직접 가보기로 했다.

반 오바마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
 반 오바마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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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지출을 멈춰라, 저항이 끓어오르고 있다", "국민을 대변하지 않는 세금은 반역이다!", "이 과세와 지출의 광기를 멈춰라!"
 "과도한 지출을 멈춰라, 저항이 끓어오르고 있다", "국민을 대변하지 않는 세금은 반역이다!", "이 과세와 지출의 광기를 멈춰라!"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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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불법 이민자에게 내 돈 주는 걸 멈춰라"

"과도한 지출을 멈춰라. 저항이 끓어오르고 있다"
"국민을 대변하지 않는 세금은 반역이다"
"큰 정부에 대항하라!, NO 사회주의!"
"오바마, 불법 이민자에게 내 돈 주는 것을 멈추시오!"
"부의 재분배, 칼 막스-1867, 오바마-2009"
"다음 번 투표할 때는 법안을 읽어라!"
"더 적은 세금, 더 적은 지출, 더 많은 자유"
"우리에게 빚이 아닌 자유를 달라"
"우리 국민들은 지금 중국에 소유됐다"
"수십억 달러를 쓰는 의회는, 법안을 읽지도 않았다"
"Stop, 오바마, 사회주의"
"최고 도둑 사령관"
"사회주의가 나라를 망친다"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우리에게 반역자가 있다. 우린 애국자가 필요하다"

성조기는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금융을 받은 월가의 경제인들과 워싱턴의 정치인들을 '응징'하겠다며 삼지창을 들고 나온 시위참가자.
 성조기는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금융을 받은 월가의 경제인들과 워싱턴의 정치인들을 '응징'하겠다며 삼지창을 들고 나온 시위참가자.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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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바람이 셌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도 여럿 보인다. 집회장 주변의 한 경찰에게 물으니, 적어도 800명은 온 것 같다고 했다. 한 여가수가 나와서 "United We Stand America"(우리 함께 지키는 미국)를 열창하자 많은 박수와 환호성이 나왔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두 손에 위의 다양한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또 성조기는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 금융을 받은 월가의 경제인들과 워싱턴의 정치인들을 '응징'하겠다며 삼지창을 들고 나온 이도 있었다.

크리스티나는 다섯 살짜리 딸과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 그녀는 인디언 스타일의 조끼를 입고 각종 메시지를 적은 티백을 주렁주렁 달았다. 손에 들린 피켓에는 "네브래스카여, 훔친 돈을 받지 말라!"라고 적혀 있었다.

- 어떻게 집회에 참석하게 됐나.
"정부가 너무 커지고 있다. 외국, 특히 중국으로부터 많은 돈을 빌려 경기 부양책을 쓰는 게 불만이라 나왔다."

- 오바마의 경기 부양책으로 미국 국민의 95%가 세금 공제를 받게 되는 것 아닌가?
"남의 돈 빌려서 받는 돈은 다 가짜다. 도대체 달러의 가치가 얼마나 떨어질지 생각해 보았나? 딸 아이 세대가 정부의 부채 때문에 큰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 오바마의 경기부양책 중 또 맘에 안 드는 게 있나?
"사회주의화되는 의료 제도도 문제다. 국민의료제도를 시행하는 영국에서는 임산부가 11달이 되도록 병원에 못 갔고, 산모가 마취의가 없어서 제왕절개를 못해 죽은 경우도 있었다더라."

반 오바마 시위에 참가한 크리스티나와 그의 딸. "네브래스카여, 훔친 돈을 받지 말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반 오바마 시위에 참가한 크리스티나와 그의 딸. "네브래스카여, 훔친 돈을 받지 말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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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사회주의자보다 더한 막시스트"

또 다른 참가자인 필 카이저 목사와 보험회사 직원 존 트루의 의견도 들어봤다.

두 사람은 "의원들이 경기부양 법안을 읽지도 않고 통과시켰다"며 "이는 명백한 반 헌법적 행위"라고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필 카이저 목사와 보험회사 직원 존 트루. 이들은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좌). 우측의 사진은 물리치료사 짐 일행. 짐은 중국의 오성기를 들고 시위에 나왔다.
 필 카이저 목사와 보험회사 직원 존 트루. 이들은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좌). 우측의 사진은 물리치료사 짐 일행. 짐은 중국의 오성기를 들고 시위에 나왔다.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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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카이저 목사는 손바닥만한 미국 헌법책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헌법 조항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도대체 헌법 어디에 세금으로 은행을 구제하라고 되어 있냐"며 흥분했고. 존은 "GM과 크라이슬러에 구제자금 수백억 달러가 들어갔지만, GM은 결국 파산하게 되었다"며 "망해야 할 회사가 망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

집회참가자 다수는 오바마 대통령을 '사회주의자'로 칭했다.

필 카이저 목사가 늘 갖고 다닌다는 헌법책.
 필 카이저 목사가 늘 갖고 다닌다는 헌법책.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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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 목사는 "오바마는 사회주의자보다 더한 막시스트"라며 "최근 미국 정부가 점점 사회주의화 되고 있어 걱정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중국 오성기가 그려진 큰 피켓을 들고 있던 물리치료사 짐은 '왜 중국기를 들고 있냐'고 묻자 "중국으로부터 거의 2조 달러를 빌렸다, 외국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문제지만 최대 채권자가 하필 공산국가라는 사실은 더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오바마의 세금 공제에 대해 그는 "중국에서 빌린 돈으로 국민을 조종하려 든다"며 "정부가 커지면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라고 했다.

민주당과 진보진영도 '세제감면'에는 도리질

설상가상으로 오바마의 경기부양책 중 35%를 차지하는 세제 감면 부분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진보진영 내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나 같으면 오히려 진짜 일자리를 더 빠르게, 더 확실히 만들어낼 수 있는 인프라나 직접 투자, 에너지 전환 같은 것들에 돈을 쓰겠다." - 매사추세츠의 존 케리 상원의원
"소액의 세액 공제로 소비자들의 소비 습관을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람들은 어려운 시기에 약간의 돈으로 생긴 작은 변화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 -오리건의 민주당 상원의원 론 와이든

특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진보적 경제학자로 유명한 폴 크루그만은 2월 9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오바마의 경기 부양책에 대해 한마디로 "비효율적"이라고 일갈했다. 돈은 돈대로 들어가면서 경제에 도움은 거의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오바마가 세액 공제를 큰 비중으로 다루는 이유는 보수파들의 의견을 반영함으로써 스스로가 당파를 넘어서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헛된' 믿음 때문이다."

한편,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는 15일, 텍사스 어스틴 시티홀 집회에 모인 참가자들에게 "정부의 무분별한 지출이 계속된다면 텍사스는 연방정부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까지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월가와 저소득층(특히 불법이민자)를 지원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보수주의자들, 왜 인프라 구축 등 장기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비효율적으로 현금을 쏟아 붓느냐며 몰아붙이는 진보진영.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이 실효를 거두기까지는 꽤 긴 진통이 예상된다.

집회참가자들이 들고나온 다양한 문구의 피켓. "스톱 오바마 사회주의"라는 피켓이 눈에 띈다.
 집회참가자들이 들고나온 다양한 문구의 피켓. "스톱 오바마 사회주의"라는 피켓이 눈에 띈다.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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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반 오바마 시위, #텍스데이 티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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