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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 집에 '꽝' 소리가 났구먼. 아이구… 올해 그 집 운수가 사나워. 방패를 좀 해야겠구먼."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작년 초, 우연찮게 친구 따라 점집에 들르게 된 그날. 안 그래도 보살님의 예리한 눈매에 기가 질려 있는데 느닷없는 보살님의 그 한 마디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사실 점집에 가기 사나흘 전, 남편의 차를 버스가 뒤에서 들이받는 큰 사고가 났던 터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등으로 식은땀이 줄줄 미끄럼을 탔다.

방패? 어떤 방패…. 굿을 하란 말씀인가? 아니면 부적을 쓰란 말씀인가? 굿을 하면 대체 돈이 얼마나 드는 걸까? 부적은 그래도 굿보다는 좀 저렴할 텐데 그럼 부적이라도 써달라고 해야 하나…. 주워들은 이야기는 있어 그 방패란 것이 굿 아니면 부적일 거라 단정 지으며 오만가지 생각에 빠져들다 문득. '알면 병이고 모르면 약'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한번 생각해 볼게요'라며 슬며시 꽁지를 빼버렸다.

친구 따라 점집에 갔다가

"기도는 재가집이나 무당의 정성이 절대적이지요. 기도하는 동안 몸도 마음도 부정 타지 않게 매사 최선을 다해야 하고 절 한번을 하더라도 정말 정성을 다할 때 그 효험을 볼 수 있는 것이거든요."
 "기도는 재가집이나 무당의 정성이 절대적이지요. 기도하는 동안 몸도 마음도 부정 타지 않게 매사 최선을 다해야 하고 절 한번을 하더라도 정말 정성을 다할 때 그 효험을 볼 수 있는 것이거든요."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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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년 가을 즈음. 우연히 동네아주머니들의 수다 속에서 아주 용한 보살님이야기를 듣게 됐다. 굿보다는 기도로 절박한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준다는, 아주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를. 정초에 만나 뵌 그 보살님의 말씀을 한 번쯤 확인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어물어 보살님 댁을 찾아갔다. 동그랗고 해맑은 얼굴이 천생 아기 같아 중년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해원보살은 나를 보시더니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그것도 아주 무심하게 '가까운 사람, 누구 하나 잃겠어요'라고 하신다. 

정초에 연세 드신 그 보살님은 올 한 해 내 운수가 사납다고 하시더니, 해원보살은 가까운 사람 누구 하나를 잃겠단다. 가까운 사람 누구란 말인가. 순간 서늘해지는 가슴을 몰래 쓸어내리며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가까운 사람이라면 부모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 꼭 부모님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보살님에게 마음으로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야기예요."
"마음으로 가까운 사람? 누구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어차피 가실 양반이니 편하게 가시도록 기도라도 열심히 하세요."

대체 그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지 도통 가늠해 볼 수가 없었다. 네 분 부모님들도 연로하신 연세에 비해 그래도 건강하신 편이었고 형제들 중 누가 병중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 잠깐 생각에 빠진 사이 보살님이 누군가를 아주 반갑게 맞이하고 계셨다.

"아이는 별 탈 없이 잘 크고 있지요? 많이 자랐을 텐데…. 한 번 보고 싶네요."
"네. 건강하게 아주 잘 자라고 있어요. 언제 한 번 데리고 올 게요. 그리고 이거 김친데 친정엄마가 갖다 드리래요. 이거는 참기름이고…."

서른을 갓 넘겼을까 싶은 그 아기엄마는 보자기를 풀어 이것저것 보살님 앞에 꺼내놓더니 다음달에 또 오마며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서둘러 일어서는 아기엄마나 그런 아기엄마를 바라보는 보살님이나 서로 간 아쉬움에 두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그 아기엄마는 누구인지.

술에 절어살던 아들, 가출했던 딸이 기도 삼일 만에

"무당은 재가집의 그 절절함을 무당이 모시는 신령님을 통해 더불어 빌어 주는 것이지, 재가집의 정성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무당은 재가집의 그 절절함을 무당이 모시는 신령님을 통해 더불어 빌어 주는 것이지, 재가집의 정성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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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초죽음이 다된 중년 여인 하나가 보살님을 찾아왔다고 한다. 아들이 잘 다니던 회사를 아무런 이유 없이 사표를 내던지고는 날마다 술에 절어 살고, 얌전하던 딸도 갑자기 헛소리를 하며 가출했다고 했다. 

대체 왜 갑작스레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며 보살님을 찾아와 눈물로 하소연을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묘탈 즉, 죽은 남편의 묘에 물이 차서 자식들에게 탈이 난 것이었다고 한다. 보살님은 즉시 남편의 묘를 이장할 것과 아들과 딸들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를 권유했다고 한다.

그 중년 여인과 보살님의 3박4일의 절절한 기도가 끝난 바로 다음 날. 닷새면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보살님 말씀대로 가출한 딸은 거짓말처럼 성큼 집안으로 들어섰고, 아들의 회사에서는 사표 수리가 되지 않았으니 어서 빨리 출근하라는 믿기지 않는 통보를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 그 아들과 딸은 시집 장가를 가 어엿한 부모가 되었고 지금껏 별 풍파 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고마워 지금은 예순이 다된 그 중년의 여인은 한 달에 한 번씩 어김없이 당신이 직접 오든, 아니면 딸을 시키든 해원보살에게 꼭 인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절실히 빌어야 할 사람들은 무당보다 재가집"

해원보살은 신령님의 깊은 뜻을 늘 가슴 깊이 되새기며 앞으로도 더더욱 기도에 정진하고 싶다고 한다.
 해원보살은 신령님의 깊은 뜻을 늘 가슴 깊이 되새기며 앞으로도 더더욱 기도에 정진하고 싶다고 한다.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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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정작 내 점을 보러 갔다 해원보살의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빠져 든 것이 계기가 돼 그와 인연을 맺은 것이 6개월여. 이따금씩 들러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또 해원보살에게 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수만 가지 인생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내겐 재미난 일상이었다.

해원보살에겐 몇 년씩 인연을 맺고 있는 재가집이 부지기수고 그 재가집 대부분이 기도로 효험을 봤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그 공을 잊지 못해 몇 년씩 인연을 끌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원보살은 왜 굳이 재가집들에게 기도를 권유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점집을 찾을 땐 정말 막다른 길에 내몰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을 때예요. 그럴 때 무당들이 해줄 수 있는 건 그 막다른 길에서 돌파구를 찾아주는 것이지요. 그 방법이 굿이나 부적이나 기도예요. 그런데 저는 주로 재가집들에게 기도를 권유하는 편이지요. 기도는 재가집이나 무당의 정성이 절대적이지요.

기도하는 동안 몸도 마음도 부정 타지 않게 매사 최선을 다해야 하고 절 한 번을 하더라도 정말 정성을 다할 때 그 효험을 볼 수 있는 것이거든요. 무당은 재가집과 그 조상님들의 매개체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작 절실히 빌어야 할 사람들은 무당이 아니라 재가집이거든요."

신내림 10년 보살님의 무속철학은 '함께 기도'

해원보살이 신 내림을 받은 지 10년.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재가집들의 절박함은 재가집과 무당이 함께 풀어야한다는 나름의 무속철학이다. 더러 돈만 '툭' 던져놓고 기도를 해달라는 재가집들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고.

"세상엔 돈으로 못할 것이 없다지만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있어요. 바로 정성이죠. 집안에 갑자기 우환이 닥쳐 한달음에 점집을 찾을 땐 무당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할 듯이 해요. 그러나 막상 며칠씩 산에 들어가서 기도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슬며시 꽁무니를 빼고는 대신 돈으로 그 정성을 다 하려고 해요.

청정한 산에 들어가 깨끗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정말 절절하게 절 한 번 더 하는 것, 그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정말 갸륵한 정성이거든요. 그런데 정작 본인의 정성은 뒷전이고 무당이 그걸 다해주길 바라요. 무당은 재가집의 그 절절함을 무당이 모시는 신령님을 통해 더불어 빌어 주는 것이지 재가집의 정성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또 한 가지 해원보살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당에 대한 재가집의 긍정적인 믿음이라고 한다. 한번은 4형제 중 장남이 췌장암에 걸린 재가집의 기도를 하게 되었다고. 우환의 원인은 바로 부모님의 묘를 잘못 쓴 것에서 기인되었다고 한다.

서둘러 이장을 하고 재가집과 더불어 죽기 살기로 기도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해원보살이 기도 도중  '병이 낫거든 그 자손들이 부모의 본향(태어난곳)을 찾아 꼭 기도를 올리고 이후 3년을 조심하라'는 공수(신령님의 응답)를 선명히, 아주 선명히 들었다고 한다.

이후 거짓말처럼 췌장암에 걸린 환자는 병이 낫게 되었고 해원보살의 말대로 형제·자매가 부모님의 본향을 찾게 되었는데 그중 한 형제가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3년이 다가도록 부모님의 본향을 찾지 않았던 것.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그 형제가 간암에 걸려 사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물론 해원보살은 이 모든 사실을 무속과 연관지으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다분히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단다. 그러나 정성이 부족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 사실이라고 단언한다.

처음 큰형이 췌장암에 걸려 온 집안이 초상집을 방불케 했던 때와는 달리 병이 낫고 난후엔 그 절박함이 사라져 버려 조상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해원보살은 신령님의 깊은 뜻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되새기게 되며 더더욱 기도에 정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경기, 갑자기 닥친 우환 아냐"

지극한 정성은 하늘도 감동시킨다는 평범한 세상 순리를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극한 정성은 하늘도 감동시킨다는 평범한 세상 순리를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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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점집을 찾는 대부분의 손님이 다 그렇듯 해원보살을 찾는 손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것이 불경기로 인한 경제난이라고 한다. 해원보살은 이런 손님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불경기는 결코 갑자기 들이닥친 우환은 아니지요. 지금은 누구나 다 어려울 때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긴 안목이 필요한 것 같아요. 혹시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 중 어떤 허점은 없었나. 아니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도전정신도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데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다 어려운데 유독 나만 어렵다고 하소연만하는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이 고비를 어떻게 슬기롭게 잘 넘길 수 있는가하는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지요."

더불어 점집에만 오면 또 굿을 하기만 하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꼭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고.

"무당이 하는 말을 100% 맹신하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어떠한 일에 대해 판단은 자신이 내려야 하는 것이지요. 무당의 말은 자신이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중요한 조언으로 생각하는 게 현명한 일일 겁니다. 굿만 하면 모든 절박한 일이 해결된다는 지극히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지극한 정성은 하늘도 감동시킨다는 평범한 세상 순리를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해원보살과 만난지 6개월 여. 아침이면 주방 한 켠에 맑은 물 한 그릇 떠놓는 습관이 생겼다. 예전 우리네 할머니들이 새벽마다 장독대 위에 정화수 올려놓고 자손들의 무사안일을 빌던 것처럼.

두어 달 전. 당숙모께서 돌아가셨다.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그래도 남들에 비해 큰 병 고생 안 하시고 돌아가셨다. 내가 아주 어릴 적. 꽃 같은 새색시였던 당숙모는 엄마 떨어져 시골에서 할머니와 살고 있던 나를 애지중지 참 많이도 아껴주셨다.

가까운 사람이 당숙모이셨던가 보다. 아침마다 주방 한 켠에 떠놓는 내 정성이 지극했다면 아마도 지금쯤 당숙모는 천국에서 행복하시겠지.


태그:#점, #해원보살, #기도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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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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