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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아 집안 대청소를 했습니다. 겨울바람을 막으려 창문에 붙인 비닐을 떼고 겨울옷도 정리했습니다. 거실에 깔아놓은 카펫까지 정리하니 집안 공기까지 가볍습니다. 이제는 제 몸을 청소할 차례입니다. 겨우내 몸이 무거워진 건 겨울외투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많이 먹고, 충분히 먹고도 만족하지 못해 몸이 둔해졌습니다. 굳이 아내가 구박하지 않아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단식하면서 과도하게 먹고 욕심 부린 삶을 돌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식탐이 많은 저에게 음식을 끊는다는 건 쉽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아내가 함께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에서 혼자 하려니 안 그래도 옹졸한 마음이 더 졸아듭니다.

 

때마침 아름다운마을 수련실에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하는 봄 단식'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단단한 마음', '맑은 몸'을 기대하며 신청했습니다. 참가인원을 선착순 30명으로 제한한 터라 서둘렀습니다. 이왕 하는 거 늦장부리며 신청을 늦춰보았자 마음만 흔들릴 뿐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어서 든든합니다. 단식을 처음 하는 건 아니지만 할 때마다 큰마음을 먹어야 하는 게 사실입니다. 먹는 문제 앞에서는 성자도 전문가도 없다 하지 않았나요.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엉망인 도시 사람들이 자신 내면을 들여다보고 진솔하게 나누면서, 힘든 고비들을 함께 넘는다고 생각하니 훨씬 수월할 거라 의지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5일 단식이라더니 15일간 이어지네

 

알림장에는 5일간 단식한다고 나왔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실제로는 15일 일정으로 짜여있습니다. 단식 들어가기 전에 5일간 서서히 식사량을 줄이고, 단식 후에도 천천히 식사량을 늘리는 보식 과정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단식 과정을 지도하는 김수연 수련실장은 감식은 예비 단식, 보식을 마무리 단식이라고 부르네요. 김 실장은 "먹던 사람이 먹지 않는 것은 응급상황이다. 단식은 몸 안에선 비상체제로 넘어갈 일이다. 머리로 계획을 세웠더라도 몸과 의식 저변까지 먹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거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감식과 보식을 강조합니다.

 

단식하면서 충분히 나를 돌아볼 계획입니다. 아내는 내게 늘 "식탐 좀 그만 부리라"고 했습니다. 마뜩찮게 여기며 무시했지요. 맛집 찾아가 먹는 재미로 살고, 야식으로 닭을 즐겨 먹었습니다. 이제는 비대해진 부분을 가볍게, 푸짐한 삶을 소박하게 바꾸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늘어나는 뱃살과 무거운 발걸음이 아내 구박보다 무섭습니다. 동네 뒷산에서 파릇파릇 솟아오르는 어린잎들과 우리 집 마당에서 망울망울 피어나는 꽃다지들이 "기름진 너도 이제는 가볍고 산뜻하고 소박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단식은 어떤 면에서 죽음을 예행하는 연습과 같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인생의 파고를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세를 훈련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그동안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누구와 함께 먹었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내 배만 허겁지겁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인생을 살찌우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합니다.

 

내 배만 채우는 탐욕스런 인간에서 거듭나기

 

물론 힘이 들겠지요. 그냥 굶는 게 아니라 풍욕과 냉온욕, 숙변 배출을 돕는 관장, 자연의학이 권하는 운동요법까지 성실하게 실천하려면 안 그래도 바쁜 하루가 더 짧을 겁니다. 단식 기간 죽염을 먹는 일도 곤혹스럽습니다. 왜 죽염을 먹으면 자꾸 구토가 나올까요. 누군가는 큰 병을 치료하려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곡기를 끊는다는데, 나는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몸을 더 건강하게 가꾸어가려고 정성들여 만든 죽염과 산과 들에서 나는 풀과 과일로 만든 효소를 먹어가면서 고급스러운 단식을 하면서 '참 배부른 고민한다' 싶습니다.

 

단식을 하면 군살이 빠지겠다는 은근한 기대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새롭게 살아가보려는 마음이 큽니다. 김 수련실장도 "단식을 하는 의미에 맞게 도시문명이 인간에게 강제하는 생활리듬과 생활양식을 전체적으로 반성하게 되면서 기대치 않았던 생활과 관계의 변화까지 맛볼 수 있다"고 희망을 줍니다.

 

몇몇 마을 사람들에게 권했습니다. "자기 몸과 생활이 어떤 형편인지 보고 스스로 책임감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은가요? 그럼 저와 함께 봄맞이 몸 대청소하실래요. 맑은 몸, 단단한 마음으로 함께 행복한 세상 열어가 봅시다."


태그:#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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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에 살면서, 산림형 예비사회적기업 영월한옥협동조합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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