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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을 끊임없이 강남과 비교하면서 비교열위에 놓아두는 일 이제 그만하자!" 이런 제안이 들어 있을 줄 알았다.
▲ 서울시 강북구 정양석(한나라당) 의원의 대정부질문 자료집 "강북을 끊임없이 강남과 비교하면서 비교열위에 놓아두는 일 이제 그만하자!" 이런 제안이 들어 있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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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 마을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정양석 의원의 의정활동보고서를 받아 보았다. 교사라서 교육부 장관에게 질문한 내용에 눈길이 갔다. "원어민 영어교사 학교당 배치, 강남구가 강북구의 두 배"라는 선정적인 제목과 함께 지역별 원어민 교사 배치도를 그려 놓고, 그 배치도에 따른 영어 학업 성취도 결과를 비교해 놓았다.

재정 자립도가 높아(속된 말로 구청에 돈이 많아서) 원어민 교사 배치도가 149%(학교당 2명인 곳도 있다는 말)에 이르는 강남구의 영어 학업 성취도 결과는 95.1%인 반면, 재정 자립도가 낮아 원어민 교사 배치도가 88% 밖에 안되는 강북구의 영어 학업 성취도 결과는 79.4%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교육 편차를 줄여야 하고, 이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교육 평준화가 필요하다고 쉽게 이 논리에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 국가 재정 지원을 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 뒤에는 우리를 끊임없이 서열화하며 주눅 들게 하거나, 앞만 보고 달려가게 하는 성공 지상주의, 강남 지상주의, 원어민과 영어 지상주의가 깔려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현실을 깨는 것이 막중한 일이다. 강남 지상주의, 성공 지상주의, 영어 지상주의와 같은 가치와 정반대되는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 지역별 재정 자립도와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 배치 비율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현실을 깨는 것이 막중한 일이다. 강남 지상주의, 성공 지상주의, 영어 지상주의와 같은 가치와 정반대되는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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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강북구의 원어민 배치 비율 88%는 강남구의 149%에 견줘 낮은 수치이다. 그러나 인천시 58.3%, 경기 55.2%에 견주면 강북구는 높은 수준에 속한다. 울산 19.2%, 전북 15.3%, 전남 11.0%에 견주면 어떤가? 아주 높은 수준이다. 이것이 이 논리의 허구성이다. '강남은 이 정도나 되는구나, 우리 사는 곳은 열악한 곳이구나!' 비교하는 의식을 심어주며 우리 스스로 피해의식에 젖게 만드는 논리인 것이다.

둘째,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가 높으면 당연히 교육경비보조금이 높다. 교육경비보조금이 높으면 원어민교사를 더 많이 데려다 쓸 수 있다. 그렇지만 원어민 영어교사 배치비율이 곧 영어학업성취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요인들이 존재한다. 가장 절대적인 요인은 바로 사교육비와 가정 환경일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사교육비와 가정 환경 요인의 차이를 공교육이 넘어설 수가 없다. 20대 80의 사회에서 10대 90의 사회로 들어서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확인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즐거운 인생길을 찾아가도록 돕는 일이다. 영어를 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개척하는 것이다.

셋째, 원어민 영어 교사에 대한 환상이다. 원어민 영어 교사가 영어를 잘 가르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초등학교에서 4년 동안 원어민 영어 교사를 데리고 수업을 해 본 경험에 따르면 '절대 아니다'이다. 물론 초중급 수준의 학교 영어를 모두 마친 성인들에게는 원어민이 더 필요하다. 또한 매일 몇 시간씩 만나는 영어 유치원이나 영어 몰입 교육 학교라면 원어민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영어유치원에 보는 아이들의 논리적 사고 발달이 늦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연구 보고서가 있다니, 이는 또 어찌할 것인가?)

그러나 영어를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처음 만나는 아이들이나 근처 보습학원 또는 학습지를 통해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원어민 교사의 유창한 발음(아니, 사실은 이것도 원어민마다 천차만별이다)은 '소 귀에 경 읽기'이다. 잔뜩 주눅 들어 있는 아이들에게 '솰라 솰라~!' 원어민 목소리는 그냥 흘려 듣는 소리이거나, 못알아듣는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소리일 뿐인 것이다. 영어만 잘하는 원어민 교사보다, 아이들 마음을 헤아려주고 소통할 줄 아는 한국인 교사가 백 배, 천 배 낫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저기 저 높은 곳을 쳐다보게 줄 세워 놓고 일제고사를 치러서 일등부터 꼴등까지 등수를 매기는 일이 아니다. 우리 마을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원어민 배치 비율이 어쩌니 하면서 저 곳과 비교하는 것이 아이들을 정신 차리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앞으로 살아갈 인생길에 대해 진지한 '탐험'을 돕는 일이다. 정양석 의원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원어민 배치 비율을 149%로 높이면 강북구가 강남구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이다.


태그:#정양석, #원어민영어교사, #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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