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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방송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방송들은 한마디로 말해 끔찍한 수준이었다. 특히 뉴스 방송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대한뉴스>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은 KBS나 MBC나 '오십보백보' 수준이어서 어떤 때는 두 방송사가 충성 경쟁을 벌이는 것 같은 보도를 하기도 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때는 오히려 <동아>· <조선> 같은 종이 신문이 정권에 비판적이었다.

한국의 언론 지형은 80·90년대를 거치면서 급변하기 시작한다. 여기다 정권교체였던 김대중 정부의 등장 이후 격변을 거치게 된다. <조선>과 <중앙>이 막대한 자본력으로 <동아>를 앞질렀다. 이렇게 하여 이른바 '보수·수구의 삼각축'이라고 할 수 있는 조중동이 완강하게 정립하게 되었다.

신문이 보수·수구화한 반면 KBS나 MBC 등의 방송이 언론 본연의 비판 기능을 행사하면서 다소나마 진보적 성향을 띠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이 두 방송이 없었더라면 한국 사회는 조중동에 의해 거의 보수·수구화되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처럼 식민지를 체험하고 분단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 지역감정까지 발호하는 사회가 보수·수구화되는 것은 절망적인 일이다. 이런 점에서 KBS와 MBC 두 방송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의 이념적 균형추의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여기에 두 방송의 중차대한 존재 의의가 있다고 본다.

정권은 다시 보수· 수구 세력에게 넘어갔다. 그들은 지난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지칭하며 거의 필사적으로 지난 10년의 것들을 지우고자 했다. 이 작업에는 언론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조중동은 진작부터 그들의 우군이었지만 방송이 문제였다.

KBS는 정연주 사장이 축출되고 이병순 사장이 기용되면서 급속히 순치되었다. 하지만 MBC는 그들 뜻대로 되지 않았다. 광우병을 집중 부각시켜 촛불집회의 촉매 역할을 한 MBC는 그들의 눈에 영락없는'좌빨 방송'이었다. 게다가 MBC는 대부분의 사원이 똘똘 뭉쳐 미디어법 개정 반대의 선봉에 섰다.

정권의 압력은 다각도로 현실화되었다. <PD수첩>의 수사 과정에서 현직 피디가 체포되었고 그들의 자택 압수 수색이 실시되었다. 급기야 본사 사옥에도 압수 수색 영장이 집행되기에 이르렀다. 불경기 탓도 있지만  MBC는 올해 들어 광고 수주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웬일인지 다른 방송사에 비해 현저히 큰 감소폭이었다.(1분기 -41%, KBS와 SBS는 -20%대)

조직개편 때부터 보인 이상 징후

검찰이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보도와 관련해 8일 오전 MBC본사 압수수색을 시도한 가운데, 출입구를 봉쇄한 MBC 노조원들과 검찰 수사관들이 대치하고 있다.
 검찰이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보도와 관련해 8일 오전 MBC본사 압수수색을 시도한 가운데, 출입구를 봉쇄한 MBC 노조원들과 검찰 수사관들이 대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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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지난 3월 6일 조직 개편을 하면서 뚜렷한 사유 없이 박광온 보도국장을 6개월 만에  물러나게 하고는 그 자리에 전영배 기획조정실 통일방송협력팀장을 앉혔다. 공교롭게도 전영배 신임 보도국장은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과 같은 고교, 같은 대학, 같은 과 동문이다.

MBC의 보도 변화가 감지된 것은 보도국장 교체 이후부터였다. MBC의 보도 태도에 확연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일련의 경제정책과 권력기관에 대한 보도에서 비판이 무뎌지거나 축소 보도되고 정부정책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 MBC 내부에서 먼저 제기되었다.

MBC는 신영철 대법관이 촛불재판에 개입할 소지가 있다는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 이후 <뉴스데스크>에서 신 대법관의 거취에 대한 리포트 보도를 한 건도 내보내지 않았다. 또한 국방부가 불온서적 목록 지정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냈던 군법무관을 파면한 소식은 단신으로 처리했다. 반면에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계 인사를 방문했다는 내용은 기자 리포트로 보도했다.

또한 3월 23일 <뉴스데스크>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받은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구속과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기사를 WBC 한일전 예고기사(13건)를 내보낸 뒤에야 보도했다.

경제 보도에도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정부가 다주택 소유자들에 대한 중과세를 폐지하자 이날 <뉴스데스크> 두 번째 리포트에서, "그동안 양도세가 무서워서 부동산을 팔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번 조치를 크게 반기고 있다"는 긍정적 반응을 집중적으로 전달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에서 우리는 독재정권 시대의 끔찍했던 방송 모습을 연상하게 되어 착잡해진다.

그러면서 8일 MBC는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와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 김미화씨 교체론을 꺼내들었다가 내부 반발로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전영배 신임 보도국장은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의 교체를 거론했다. 서경주 라디오본부장은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 김미화씨를 "내부인력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13일부터 새 진행자가 맡을 것"이라고 교체 일정까지 밝혔지만 저녁 무렵에는 "아직 최종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을 바꿨다.

오전 라디오 피디들이 연가 투쟁에 돌입하고 오후 늦게 이근행 노조위원장이 엄기영 사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사기를 꺾는 의사 결정은 문화방송을 자멸로 이끌 것"이라는 뜻을 전달하자 엄 사장이 "심사숙고하겠다. 10일까지 시간을 달라"고 한 발 물러섰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김미화 진행자의 교체 문제는 물론 신경민 앵커의 거취 문제까지도 조만간 모종의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용 절감' 위해 교체? 궁색한 변명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 중인 방송인 김미화씨.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 중인 방송인 김미화씨.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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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많은 사람 중에서 왜 하필이면 김미화 진행자와 신경민 앵커인가? 다름 아니라 두 사람은 MBC 프로그램 진행자 중에서 '잃어버린 10년'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터이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이나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그리고 신재민 문화부 차관 등이 보기에 두 사람이 마뜩할 리가 없다.

김미화씨는 미군 장갑차에 죽은 효선·미순양 사건 때 촛불집회에 나간적이 있다. 그리고 지난해  MBC <PD수첩> 수사에 항의하는 촛불집회에도 참석한 적이 있다.

양심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누구에게나 양심에 따라 행동할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방송인을 비판하고 하차시키려면 방송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문제를 삼아야 한다. 고작 한다는 말이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이는 궁색하기 짝이 없는 주장일 뿐이다. 김미화씨 경우 출연료가 다른 출연자에 비해 그리 높은 편도 아니라고 한다. 

지난 6년 동안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공정성이나 도덕성 시비를 일으킨 적도 없다. 프로그램 청취율도 매우 높으며 광고 수주도 단연 많다. 그는 개그우먼 출신이지만 늦깎이로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와 언론정보를 공부하는 등 방송인으로서 성실히 노력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다만 거의 파시즘 수준의 <독립신문>에서 그를 좌파, 반미, 친노라고 비난하는 기사를 20여 차례나 내보냈을 따름이다.

만약 MBC 경영진이 그를 축출한다면 이유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일 터이다. 첫째 경영진이 <독립신문> 류의 파시스트적인 생각을 가졌거나, 둘째 권력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거나, 셋째 '알아서 미리 기는 것' 중 하나가 아니고서는 그를 내몰 이유가 없다고 본다.   

8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정부가 불편해 할 뿐 국민이 지지하는 방송인을 교체하는 것은 정론직필을 포기하고 부역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MBC 노조도 이날 성명을 내어 "사측의 주장은 일부 친권력적인 성향의 인사들이 느끼는 불편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경쟁 위기 속에서 경영진이 자신들의 무능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권력에 빌붙어 자신들의 안존만을 챙기려는 후안무치한 작태"라고 평가했다.

MBC의 타락이나 굴복은 비단 MBC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뜩이나 조중동이 신문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데다 이명박 정부 들어 KBS마저 권력에 순치된 현실에 MBC의 타락 또는 굴복은 곧장 한국 언론자유의 무덤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태그:#MBC, # 김미화, #신경민, #전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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