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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관련,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가 8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관련,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가 8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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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가 무너지는 듯한 충격과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박주선 최고위원)

'노무현 사과문'이 나온 다음날인 8일 민주당은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박연차 리스트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의 칼끝이 노 전 대통령을 향할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당사자가 직접 고해성사를 하고 나설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4.29 재보선을 코앞에 두고 나온 노 전 대통령의 '자백'은 민주당의 앞길에 먹구름만 더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경북 경주와 울산 북구 재보선 사무실 개소식을 방문해 선거운동을 독려할 예정이었던 정세균 대표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서슬퍼런 검찰의 칼날을 막을 '방패'가 신통찮을 뿐이다.

당황한 민주당 "천신일도 수사하라"... 공허한 메아리에 그쳐 

일단 당 지도부는 노 전 대통령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열린 회의에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면서도 "노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어떤 연유로 (돈을) 받게 됐는지 명백한 진위가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역없는 수사가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을 옹호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이 8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함께 여권 실세와 관련된 세무조사 무마 청탁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이 8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함께 여권 실세와 관련된 세무조사 무마 청탁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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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가 무너진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 박주선 최고위원도 "검찰은 이 사건을 한점 의혹, 성역이나 예외없이 철저히 수사해 국민에게 진상을 공개해주기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은 '노무현 사과문'이 4.29 재보선을 앞둔 정치권의 정치공세 소재로 악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박 최고위원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미명 아래 전직 대통령을 정치보복 수단으로 삼기 위한 기획, 편파수사가 진행돼서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현 청와대와 여권에 대한 엄정 수사도 촉구했다. 송 최고위원은 "추부길 전 비서관이 이상득 의원에게 청탁성 시도를 했다는 보도가 있다"며 "추부길씨가 2억 받았으면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송 최고위원은 또 "천신일이 몸통"이라며 검찰의 수사를 거듭 요구했다. 박 최고위원도 "현 정권 실세, 몸통을 보호하고 전 정권과 깃털만을 처벌하기 위한 가장무도회 연극연출이 아닌지 의혹을 접을 수 없다"고 가세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의 '추문'과 자백 앞에서 민주당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가 돼 가는 모습이다.   

'친노 진영'도 충격에 휩싸이긴 마찬가지다. 이미 이광재 의원이 구속됐고, 서갑원 의원, 안희정 최고위원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마저 검찰청사에 들어선다면, 지난 5년간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친노세력은 말 그대로 "폐족"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입 닫은 '친노 진영', 끝내 "폐족" 위기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관련,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8일 오전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안희정 최고위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오른쪽은 박주선 최고위원.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관련,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8일 오전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안희정 최고위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오른쪽은 박주선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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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 진영'은 일단 납작 엎드렸다. 안희정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에서 "사과문 발표에 대해 어떤 생각이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다, 양해해 달라"고 즉답을 회피했다.

참여정부 때 법무부장관을 지낸 천정배 의원은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국민들께 우선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는 심정"이라고 사과했다. 천 의원은 또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수사에 응하겠다고 했으니 검찰의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에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여러 가지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서갑원, 백원우 등 대표적인 친노 386의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이 나온 이후 입을 닫고 있다. 백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백방으로 알아봐도 사태 파악이 안 된다"고만 말했다.

'노무현 사과문'으로 민주당은 말그대로 벼랑 끝에 몰리게 됐다. '정동영 공천 배제'로 내전이 확산되는 가운데 터진 악재는 '4.29 재보선 전패'라는 악몽을 현실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자백은 '무능했지만 깨끗한 민주당'의 이미지를 '무능하고 부패하기까지 한 민주당'으로 굳게 만들고 있다.

민주당으로선 빨리 이 수렁을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탈출로가 없다. 위기감만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당내 비주류 중진인 이종걸 의원은 "충격적"이라며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지 앞길이 묘연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의원은 이날 오전 'YTN 강성옥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저희(민주당)로서는 엄청난 사태에 직면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 의원은 "(참여정부가) 준비 안된 대통령 세력이라 하더라도, 민생을 잘 챙기지 못한 무능한 측면이 있었다 하더라도 깨끗하고 청렴하고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세력이었다는 점이 우리에겐 자부심이었다"며 "그런 과거 역사가 이제는 혹시라도 완전히 무색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쏟아지는 여야 비난 속 "앞길 묘연" 한숨만

당장 이 의원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당장 정치권부터 민주당을 향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7일 오후 "(노무현 사과문은) 재임시절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노 전 대통령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자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박근혜 의원은 8일 기자들과 만나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짤막하게만 언급했다.

권선택 자유선진당 원내대표도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 비꼬았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 역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비극"이라는 논평을 냈고,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도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철저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태그:#노무현, #민주당, #4.29 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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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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