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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천막 농성장', 왠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그 만남을 날마다 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명지대 서울 캠퍼스입니다. 대학노조 명지대 지부는 2월 24일부터 학생회관 앞에서 '천막 농성'으로 학교와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2월 17일부터는 파업 투쟁도 벌이고 있습니다.

 

싸우는 까닭은 여느 기업 노동자들이랑 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비정규직 부당해고'입니다. 명지대는 지난 3월 1일자로 일반조교 95명을 '해고'했습니다. 아니, 일반조교제도를 아예 없애고 효율성을 높이고자 새로운 제도인 '행정보조원제'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홈에버 노동자들을 그렇게 괴롭혔던 '비정규 악법'을 근거 삼아, '정당한 해고'라는 명분으로.

 

명지대 사건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직접 몸으로 만난 건 얼마 안 됩니다. '알고만' 있던 저를 움직이도록 이끈 건, 바로 '천막 농성장'입니다. 노동자들이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한다는 그 '천막 농성'이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서, 그것도 대학 안에서 펼쳐지고 있다니 가보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맨 처음 천막에 찾아가던 날, 앞으로 만나게 될 장면을 두고 걱정보다는 설렘이 앞섰습니다. 각오마저 들었죠. '또 다른 세상으로 내가 발을 들여놓는구나. 이 발걸음이 그냥 스치는 인연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이어지는 또 다른 인연을 낳을 것인가.'

 

 

처음에는 조심조심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았죠. 그래서 알았습니다. 이번에 해고된 일반조교 대부분이 여성이자, 나와 비슷한 30대라는 것. 그걸 알고 나니 마음이 전과 많이 다릅니다. '이랜드 투쟁'에서 지독하게 겪었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니까요. 더불어 내 또래 이야기고요.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고 말문도 막 트입니다. 그대로라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았죠. 천막을 나오면서도 그렇게 떠나는 마음이 아쉽지 않았어요.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으니까.

 

그렇게 찾아간 뒤에는 매주 명지대 앞에서 열리는 촛불 문화제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첫 방문에 이어 망설임 없이 다시금 천막에도 가보았습니다. 명지대 투쟁 현장에 갈까 말까 하는 고민, 이제 더는 저와 상관없는 일이 되었거든요.

 

두 번째 방문에서는 명지대 용인 캠퍼스 조합원 두 분을 만났습니다. 두 분 다 어찌나 쾌활하던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분은 저랑 동갑내기였는데 조교로 일한 지 6개월 만에, '행정보조원'으로 전환하는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까닭으로 해고됐답니다. 계약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다른 한 분은 14년째 일하다가 해고를 당했고요. 정말 가족같이 일했는데, 기가 막히고 억울해서 이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두 분 말씀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두 분은 특히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많이 말씀해 주셨어요. 전에 학교에서 집회를 하려는데, 정문에서 총학생회 관계자를 비롯한 학생들이 100명 정도 모여 그들을 막아서려고도 했답니다. 학생들이 그 정도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는, 그때 받은 충격이 너무 컸다는 말씀에 제 마음도 덩달아 슬퍼집니다. 명지대 일반조교 가운데 그 학교 졸업생이 많다고 하니, 결국 후배들한테 탄압받는 셈이 된 거죠.  

 

학생들이 학교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장학금 못 타지는 않을까, 다른 어떤 불이익을 보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학생답지 않게 지레 움츠러든 것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학생들의 이런 모습을 보며 기업에서 언제 잘릴까,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전전긍긍하는 노동자들이랑 참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기 학교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탄압, 그것도 같은 학교를 다녔던 선배들이 받고 있는 탄압에 무심한 학생들.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외면하는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참 닮아보였습니다.

 

그렇게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웃으면서 나누었습니다. 무척이나 밝게 이야기하는 두 분 모습에 자주 웃으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죠. 그렇게 웃다보니 이런 말씀도 하시네요. "어느 날 천막당번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는데 남편이 그래요, 당신한테서 노조 냄새가 난다고. 그 이야기가 재미나서 다른 조합원들이 두고두고 우려먹네요.(웃음)"

 

처음으로 '투쟁'이란 거 해 본 다른 분들한테 들었던 말씀도 여지없이 나옵니다. 처음엔 노조 조끼 진짜 입기 싫어서 어떻게든 안 입으려고 했는데, 이젠 조끼를 안 입으면 너무 이상하다고. 머리띠도 스스로 꼭 두르게 된다는 그런 익숙한 이야기들.

 

 

저는, 밝게 웃으며 투쟁하는 두 분이 진심으로 멋져서 그런 제 마음을 수줍게 전해드렸는데 두 분은 오히려 그러시네요. "자기 일도 아닌데 이렇게 지지하러 와주는 분들이 저희는 더 신기하고 놀라워요." 얼른 대답했죠. "지지방문 하러 온다지만, 실은 우리들이 힘을 받고 가는 거예요. 아직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어떤 가능성을 실제로 느끼게 되거든요. 그래서 투쟁하는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워요. 움직임 하나하나가 저희들한테 다 가르침이거든요."

 

그렇게 솔직담백하게, 때론 서로 깔깔 웃으며 세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고는 천막에서 나왔습니다. 전에 없던 '희망 담은 노란리본' 피켓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는데 리본에 적힌 글들, 이랜드 투쟁에서 보았던 내용이랑 왜 그렇게 닮았는지요. 다만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바로 이 글입니다.

 

'학생 여러분, 제발 눈을 크게 뜨시고 여기를 좀 봐 주세요.'

 

그렇죠. 명지대는 학교니까요, 학생들한테 가장 먼저 호소하는 게 맞겠죠. 이제 이십여 명 남은 조합원들, 그들이 즐겁게 투쟁하는 시간들이 계속되는 한, 적어도 명지대 정문을 오고가는 많은 학생들 마음속에 자기도 모르게 이 투쟁이 스며들고 있을 거라고 믿어봅니다. 저도 믿고, 우리도 믿고, 학생들한테 철저하게 배신당한 조합원들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명지대 서울 캠퍼스에서는 '부당해고'를 알리는 촛불 문화제가 매주 열립니다. 4월 2일 열린 네 번째 촛불문화제에서 저는 '노래 공연'도 했습니다. 천막 농성장에 두 번 다녀온 뒤로는 그들과 노래로 '연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거든요. 경사진 언덕에서 마음을 담아 노래 세 곡을 부르고 나니 그들의 투쟁이, 조합원 한 분 한 분이 한결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다음에 천막에 찾아갈 때는, 전보다 훨씬 더 살갑게 그분들과 '수다' 떨 자신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분들과 더 친해지고 싶지는 않아요. 나한테 명지대 천막 농성장이 익숙해지고 조합원들과 마음을 깊게 나누게 된다는 건, 그 투쟁이 길어진다는 말과 같은 거니까요. 명지대 조합원들이랑 자주 볼 수 있지 않도록, 그래서 저 천막 농성장이 나한테 더는 익숙한 곳이 되지 않도록, 명지대 투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다행히도 오는 목요일에 학교 측과 면담을 하기로 했다니,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 저부터 괜히 설렙니다.

 

'노동자의 오늘은 학생의 미래다.' 현수막에 써 있는 저 글, 명지대 조합원들이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그 진리를, 학생들부터 먼저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명지대 조교협의회 공식카페(http://cafe.daum.net/MJU-MWM)'에 서수경 명지대 노조 지부장님이 남긴 아래 글을 명지대 학생들, 그리고 또 다른 학생 분들께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눈물을 닦았다고 생각했는데, "부당해고 철회하라!" 목이 터져라 외치는 저희들 옆을 눈치 보며 지나치는 절친했던 명지가족을 뵐 때면 복받치는 마음을 주체하기 어렵더군요. 뭐가 그리 서러운 건지, 이젠 악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이라 그런 게지요, 짐승이 아닌 사람이라. "비정규직 철폐하고 사람답게 살아보자." "노동자는 하나다, 비정규직 철폐해서 되물림을 막아보자!" 오늘도 공허한 외침이 될지도 모르는 구호를 외치며 우리들 진심을 명지가족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끝까지 힘내고 싶습니다! 그럼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명지대 서울캠퍼스(남가좌동)에서 뵙겠습니다.'

-2009. 4. 3. 서수경 

 


태그:#명지대, #비정규직, #조교 ,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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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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