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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 아직 책이란 쥐뿔도 모르는데 : 어느 분이 이렇게 묻는다. "지금까지 본 책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이 있다면?" 아주 짧게, 좀 건성으로, 언제나처럼 뻔하게 묻는 말. 나도 아주 짧게, 좀 건성으로, 이이가 알아듣거나 말거나 내가 책을 즐기는 매무새대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직 책을 잘 안다고 할 수 없으니, 제가 가지고 있는 책 가운데 가장 좋거나 가장 사랑한다는 책이 무엇이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좀더 책을 보고, 세상을 살아가야 비로소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말이다, 나라는 사람은 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직 책이란 쥐뿔도 모르는 주제인데, 어찌 이런 어설픈 가운데 무슨 책을 더 좋아하느니 사랑하느니 하면서 한 권을 꼽을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이다. 읽으면서 가슴 뭉클뭉클했던 책이야 수두룩하지만, 어떻게 내 알량한 머리로, 또 어리숙한 가슴팍으로 어느 한 권을 함부로 골라내어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는 소리이다. 나한테는 내 손을 거쳐 간 모든 책이 사랑스러운데. 그리고 아직 내 손에 와닿지 않으며 내가 미처 모르고 있는 수많은 책들이 하나같이 사랑스러운데.

책 하나 있는 책방입니다. 헌책이 있는 헌책방입니다. 그러면 책이란 무엇이고 헌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리 가슴을 어떤 책으로 적시거나 채울 수 있을까요. (서울 용산 〈뿌리서점〉에서)
▲ 책과 헌책방 책 하나 있는 책방입니다. 헌책이 있는 헌책방입니다. 그러면 책이란 무엇이고 헌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리 가슴을 어떤 책으로 적시거나 채울 수 있을까요. (서울 용산 〈뿌리서점〉에서)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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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 배움 : 책을 보면서 배울 대목이 참 많다. 그렇지만, 사람을 보면서 배울 대목은 더욱 많다. 그런데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바람을 느끼면서 배울 대목은 책과 사람을 보면서 배우는 대목보다 훨씬 더 많다. 나아가 아이들을 보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아야 좋은가를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느낌으로 익히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나도 아이로 살아왔고 내 둘레 모든 어른들 또한 아이로 살아왔었다. 그저, 당신들 스스로 아이였던 적이 있는 줄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주 드물긴 하다만.

(027) 이제는 책을 더 안 봐도 되지 않아요? : 내가 하는 일을 취재한다며 찾아온 기자와 헌책방 나들이를 함께한다. 나는 기자를 아랑곳하지 않고 내 마음에 꽂히는 책을 쥐어들어 파고든다. 기자는 한참 심심해 하다가 묻는다. "사진책 많이 보시지 않았어요? 이제는 더 안 봐도 되지 않아요?" 좀 어이가 없는 물음이지만 억지로 방긋 웃으면서 이야기를 한다. "아, 이제 조금 보았을 뿐인데요. 그리고, 꾸준히 새로운 사진책을 보지 않으면 저 스스로 발돋움할 수 없어요. 뒷걸음질쳐 버리죠. 바보가 돼요. 마치 자기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된다는 좁은 우물에 갇혀 얼간이가 되고 말아요. 저는 바보가 되기 싫고, 얼간이는 더더욱 되기 싫어서 더더더욱 꾸준하게 새로운 책을 찾아서 읽으려고 할 뿐이에요." 기자가 더 캐묻지 않는다. 취재를 받는 자리이지만, 헌책방 골마루에서 몇 분이나마 조용히 책을 즐길 수 있어 좋아졌다.

(028) 돌고 도는 책 : 돌고 도는 책인 만큼, 책에 담긴 줄거리도 우리들 사이에서 돌고 돌며 더 고와지고 속도 한결 알차게 될 수 있겠지.

새로운 판으로 나온 삐삐 이야기이나, 1982년에 나온 낡은 판 삐삐를 보아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어쩌면, 저 같은 사람들은 어릴 적 이 책을 보며 웃고 울었기 때문에, 요사이 나온 말끔한 판보다 이 낡은 판이 훨씬 마음에 끌리기도 합니다.
▲ 말괄량이 삐삐 새로운 판으로 나온 삐삐 이야기이나, 1982년에 나온 낡은 판 삐삐를 보아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어쩌면, 저 같은 사람들은 어릴 적 이 책을 보며 웃고 울었기 때문에, 요사이 나온 말끔한 판보다 이 낡은 판이 훨씬 마음에 끌리기도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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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구경만 할 수 있는 책 : 어떤 책이든 알맞는 임자를 만나 알맞는 값에 팔려 나가 읽힐 수 있을 때가 가장 좋겠지만, 오래오래 안 팔려 책시렁 한켠에서 먼지만 곱게 먹으면서 꽂혀 있어도 나쁘지 않다고 느끼다. 이 책이 오래도록 안 팔렸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이 책을 어느 날 문득 알아보면서 군침을 삼킬 수 있다. 또 군침을 삼킬 만하지 않다 하여도 '이런 책이 세상에 나왔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책방 마실을 하면서 넉넉히 '구경만 하고 가도' 되니까.

(030) 헌책방에 책을 기꺼이 내놓아 준 분들한테 : 다 보았거나 덜 보았거나, 마음에 들어 했거나 마음에 안 들어 했거나, 주머니 털어 손수 장만하여 갖고 있던 책을 기꺼이 헌책방에 내놓아 준 당신한테 하느님 사랑과 부처님 보살핌과 알라신 어깨동무가 골고루 내려질 수 있기를.

(031) 책 펴내는 분들한테 : 책 한 권을 펴낸다 하여도, 바로 오늘 이 자리부터 앞으로도 두고두고 읽으며 즐거웁도록 마음을 쏟아 준다면,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 또한 책 한 권 허투루 다루거나 고르지는 않으리라.

(032) 재미있는 책은 늘 나오지만 : 재미있는 책은 늘 나옵니다만, 재미있는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 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 또한 늘 있습니다. 재미있게 삶을 꾸리고 재미있게 사람을 만나며 재미있게 당신 일손을 붙잡는다면, 책방 마실을 할 때마다 재미가 넘치는 책을 기쁘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닐까요? 삶이 재미없어도 재미있는 책을 알아볼 수 있는가요. 사람을 재미나게 만나며 어울리지 못하여도 책만큼은 재미난 녀석을 골라낼 수 있는지요. 내 일이 지루하고 따분하고 지겨워도 책방 마실을 할 때에는 재미가 넘치는 책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까.

책이 있는 곳이면 어디이든 즐겁습니다. 책방이어도 좋고 도서관이어도 좋고 집이어도 좋습니다. 마음을 밝히는 책 하나 만나게 되면 넉넉하고, 마음을 밝히지 못한다 하여도 이러한 책과 만난 하루는 제 삶을 살며시 어루만지면서 새롭게 되도록 이끕니다.
▲ 책이 있는 곳 책이 있는 곳이면 어디이든 즐겁습니다. 책방이어도 좋고 도서관이어도 좋고 집이어도 좋습니다. 마음을 밝히는 책 하나 만나게 되면 넉넉하고, 마음을 밝히지 못한다 하여도 이러한 책과 만난 하루는 제 삶을 살며시 어루만지면서 새롭게 되도록 이끕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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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새책방과 헌책방 : 새책방에서 파는 책이라면 새책방에서 삽니다. 헌책방에서 파는 책이라면 헌책방에서 삽니다. 새책방에서 파는 책을 헌책방에서 살 까닭이 없습니다. 아주 드물게 선물 하나 받듯 살 수야 있습니다만. 헌책방에서 파는 책을 구태여 새책방에서 찾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헌책방에서는 헌책방에서만 파는 책을 살피고 헤아리고 느끼고 장만하여 읽으면 됩니다. 모든 새책이 언제까지나 판이 안 끊어지면서 새책방 책꽂이를 차지할 수 없기에 안타까이 목숨이 끊어지면서 헌책방으로 들어옵니다. 어떤 새책이든 헌책이 되기 마련이라, 꽂히는 자리만 옮겨갈 뿐, 종이에 새겨진 넋과 이야기는 고스란히 우리한테 따스함을 베풉니다. 이리하여,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새책방과 헌책방을 나란히 나들이합니다. 새로 나오는 책을 꾸준히 살피고, 오래도록 읽히는 책을 차근차근 돌아보는 가운데, 되살리며 북돋울 만한 빛줄기 아름다이 서려 있는 책을 가만가만 짚어냅니다.

(034) 좋은 책 하나 찾기가 어렵다면 : 좋은 책을 찾기란 어려울 수 있으나 아주 쉬울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마음을 좋게 다스려 나간다면, 모든 좋은 책을 하루아침에 알아볼 수는 없어도, 하루에 한 권씩 내 가슴으로 스며드는 좋은 책 하나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 내 삶을 좋게 이끄는 가운데 하루에 한 권씩 내 마음밭을 좋게 일구는 좋은 책을 만나다 보면, 이런 세월을 차츰차츰 쌓으며 이어가다 보면, 어느 때부터인가는 내 둘레에 온통 좋은 책이 가득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내 둘레 사람들이 하나같이 좋은 사람이 되어 있고, 내가 디디는 터전이, 내 마을이, 내 집이 모두 좋은 기운으로 가득차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책말, #책읽기, #책, #책이야기,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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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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