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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넘게 살면서 고향인 인천과 집을 떠나 산 거라고는 강원도 양구에서 군복무를 할 때 빼고는 없다.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첩첩산중 그 곳에서 2년2개월을 그럭저럭 별탈없이 보냈다.

 

군입대 전 촌놈이 서울로 대학을 다닐 때도 교통편이 엄청 불편했지만 통학을 했고, 졸업 후 환경운동한답시고 깝칠 때도 힘들지만 출퇴근을 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늦은 밤까지 술잔을 기울이다가도 신데렐라처럼 시간 맞춰 당산역에서 밤 12시30분이 막차인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호박마차처럼 안락한 버스 안에서 고이 잠이 들면 간혹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다시 되돌아오곤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녘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말이다.

 

작년 8월 마지막 일터를 그만두고 계획없는 자전거 방랑을 시작해보려 했지만, 그것도 5박6일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나를 생각해주는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지금도 백수인 주제에 눈치 코치도 없이 일자리를 구할 생각도 않고 방안에 틀어박혀 밀린 숙제를 하고 있다. 다시 출퇴근하기 시작한 도서관에 나가기 전에. 아참 오늘은 즐겨찾는 계양도서관이 휴관일이다.

 

내 생애에 가장 찬란했던 빛은?

 

이렇게 집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나는 그 부족함이 없는 안락함에 안주해 그 흔한 사춘기 시절의 반항도 자유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철없이 나이든 지금에서야 그 방황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내 생애에서 가장 찬란했던 빛"이 언제 켜졌는지도 모른채.

 

아니 어쩌면 그 찬란한 빛은 아직 불밝히지도...평생 그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거다.

평온한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떠나온 17살 청년이 '만리장성'과 '나이아가라' 사이를 오토바이로 1분 만에 오가며 경험한 풋사랑가 그 찬란한 빛을 말이다.

 

'어른이 읽는 동화'라는 안도현님의 책 <짜장면>을 읽으면서, 참 많은 어린 추억들이 노랑머리 청년이 코뼈가 주저앉은 주방장의 싫은 소리에도 아랑곳않고 까던 양파 껍질처럼 계속 그 속살을 드러냈다.

 

 

특히 유독 어머니에게만 엄하고 살갑지 못하지만 애향심이 깊어 마을 사람들에게 유명하고 존경받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다 그만 사고를 당한 장면은, 그처럼 "붕"하고 날아오른 경험이 있는 내게는 남일 같지 않았다.

 

<비행 청소년 지도에 관한 지역사회와 학교의 공조 체제 연구>라는 논문으로 교육부장관상을 받게 된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간 뒤, 세상 일에 책임을 지고 싶어 하던 17살 아이는 친구들과 '해변미인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달리다 사고를 당했지만, 나는 아버지와 할머니가 들깨를 털고 있는 밭에 심부름을 갔다가 그만 아버지가 타고 다니는 빨간 오토바이를 냇갈에 처박아버리고 말았다.

 

비행 청소년은 아니지만 오토바이로 "붕" 날아올랐다!!

 

정확히 몇 살때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중학생이었을 거다. 동화 속의 아이처럼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하수구 웅덩이 대신 지금은 자연형하천 공사로 망가진 냇갈(공촌천)에 가득했던 풀숲이 스펀지 구실을 해줬다.

 

어떻게 날아올랐는지 모르지만 오토바이도 나도 무사했는데,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그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밭과 이어진 낮은 논길에서 윗길로 오르다가 엑셀러레이터를 실수로 세차게 당기는 바람에 "휙"하고 날아오른 게 아닌가 싶다.

 

 

암튼 옛마을은 워낙 촌동네라 버스를 타려해도 20분은 족히 논길과 산고개를 넘어다녀야 해서 집집마다 경운기나 오토바이, 자전거가 있었는데 우리집에는 기어가 없는 빨간 오토바이가 있었다. 몇 cc였는지는 모르지만 자전거보다 조금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자전거는 없고 홀로 빈 집을 지키다 심심하면 그 오토바이 안장에 올라타서는 시동을 걸고 "부릉부릉"하고 놀았다. 그러다 슬슬 집밖으로 끌고나가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곤 했는데, "붕"하고 날아오른 뒤 오토바이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책 제목인 '짜장면'에 대한 추억도 있다. 워낙 내가 고기를 먹지 않아 꼬맹이 적에는 가족들이 간혹 정말 일 년에 몇 번은 짜장면을 사주었다. 시내에 나갈 일이 있으면 말이다. 자장면이 아닌 짜장면 안에 돼지고기가 있는 줄도 모른 채 먹는 내 모습을 보고 싶었나 보다.

 

17살 노랑머리 청년만큼은 아니지만 살짝 찬란했을 어린시절의 추억이 동화 <짜장면>에서 매혹적인 짜장 냄새처럼 물씬 풍겨왔다. 오늘 점심에는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싶다. 그런데 돈이 없다!! ^-^::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짜장면

안도현, 열림원(2000)


태그:#짜장면, #안도현, #동화, #오토바이,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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