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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소격동 학고재신관에서 '국토: 세 가지 풍경'이라는 주제로 농민화가 이종구展이 4월 26일까지 열린다. 그는 안주하지 않는 자세로 30년간 농촌을 주로 그려왔다.
 
여기서 국토의 세 가지 풍경은 '검은 대지', '살림', '만월'을 말한다. '검은 대륙'에서는 농촌의 암담한 현실을, '살림'에서는 농부들이 땀 흘려 인간생명을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을, '만월'에서는 농촌의 어려운 여건 속에도 꽃피우는 희망을 담고 있다.
 
올해가 '소의 해'인데 이번 전의 주인공도 소다. 최근 이충렬 감독이 연출한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30년 동고동락하며 살아간 촌로와 소이야기로 사람들 심금을 울렸다. 관객 2백만을 넘겨 화제를 낳았다. 하지만 여기 소는 워낭소리나 이중섭, 장욱진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이종구의 소는 농촌의 사회적 전기(傳記)가 담겨져 있다.
 

소의 눈빛, 농민의 마음을 닮아

 

작가 이종구는 충남 서산 오지리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은 어려서 식구처럼 같이 자란 소와 고향이야기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지리에서', '아버지의 소', '숙부', '모내기' 등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작가는 소가 바로 농부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정말 그러고 보니 소의 눈빛은 영락없이 농민의 마음을 닮았다.  

 

그는 농민들의 절박한 삶과 역사를 그림의 주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촌의 흙내와 땀내와 현장감이 넘치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그는 80년대 신학철, 임옥상, 박불똥, 강요배 등과 민중미술의 문을 연다. 하지만 미술평론가 고충환의 지적대로 농민이라는 당파성에도 정치적 경향성은 크지 않다. 

 

순박한 소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2008년 작인 '질주'는 농민의 애타는 마음뿐만 아니라 촛불시민들의 열혈한 심경도 뒤섞여있다. 소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화가 나 보인다. 평생 사람들 위해 몸 바쳐 일하고 죽어서는 고기까지 다 내주는데 날 버리고 뜬금없이 위험천만한 미국소를 수입해 먹겠다니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우리도 민주화과정을 겪으며 정권교체를 했지만 농촌은 여전히 피폐하고 소외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자꾸 멀어진다. 그런 와중에 작년엔 미국소고기수입으로 한우농가에 더 큰 타격을 입혔다. 작가는 이런 농민들의 분노와 도심의 촛불시위로 인해 벌어진 갖가지 해프닝을 농축시켜 질주하는 소의 눈빛에 담았다.

 

땅의 찬가와 한과 꿈이 서린 나무

 

'잠자는 부처'는 이번 전에서 '소'만큼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의 국토와 자연, 백두대간을 주제로 한 그림 중 하나다. 땅을 하늘처럼 모시면서 작가는 국토의 순례자로 살아감을 짐작할 수 있다. 경주 남산, 낙화암, 해남 미황사, 장흥 보림사, 남해 세존도, 태백산 정암사가 그렇게 그려진 것이다.

 

위 작품은 부여에 있는 천년된 나무가 소재다. 작가가 우연히 부여를 지나다가 보고 영감을 얻었다. 말 그대로 하느님 같은 신목(神木)이다. 작가는 역사에 묻혀버린 백제사를 그림으로 부활시키려는 건가. 운주사의 와불처럼 한 시대를 뛰어넘어 용화세상을 이루는 미륵불이 되려는 것 같다.

 

몸빼와 플라스틱용품의 성화(聖化)

 

이종구도 초기에는 여러 공모전에서 입상하면서 그런 화풍을 굳혀나가나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독자적 노선을 걷는다. 그는 당시 70년대 유행한 단색화보다는 구상화에 더 심취한다. 그의 사실주의는 눈속임에 가까운 극사실로 농촌을 리얼하게 재현한다. 그러나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시골출신답게 농촌의 진면모를 르포기사처럼 그려나간다. '쌀부대'로 캔버스를 대신한 착상은 독보적이다. 그 자체가 이미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삶을 진실 되게 보여준다. 이는 낯설고 하찮은 것에서 뜻밖의 것을 찾아내고 발굴하는 현대미술의 맥락과도 통한다.

 

작가는 '빨래연작'은 통해 농촌을 미화했다기보다는 성화(聖化)시켰다. 농사일에 편한 그러나 볼품없는 몸빼바지나 자주 쓰는 적청색 플라스틱용품을 보라는 듯이 그린 것이다. 그건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 애쓰는 농부로서 땀 묻힐 옷가지와 용품이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긍지와 자부심의 반영일 것이다.

 

농민의 상황과 작가의 심정

 

여기 두 작품은 농부들의 내면에 쌓인 시름과 걱정이 보인다. '농부'에서는 무뚝뚝한 표정과 누추한 옷차림은 농촌의 정황을,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에서는 농민에 대한 작가의 연민을 드러낸다. 그런데 주름 깊이 팬 할머니 머리 위엔 웬 헬기인가. 그건 아직도 우리가 분단국으로 작전통제권도 없는 반쪽 독립국임을 상기시키는 장치 아닌가.   

 

그럼에도 헬기 밑에 흐릿하게나마 초승달이 떠 있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아무리 참담하고 힘겨워도 좌절할 수 없다는 그 나름의 비전제시이다.  

 

이런 작가의 심경을 미술평론가 홍경한은 "어쨌든 이종구는 '미술의 사회적 기능과 힘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사실에 새삼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땅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만은 사실이다"라고 평했다.

 

작가의 현실인식과 이상세계

 

'무자년(2008) 여름'에는 소와 함께 델타비행기가 등장한다. 이 항공기는 농민을 괴롭히는 기제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정부가 농민을 위한다면서 자유무역(FTA)을 내세우고 세계무역기구(WTO)는 공정한 무역질서라며 쌀개방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내지 불신감의 표현이리라.

 

미술평론가 박영택은 이종구의 작품에서 "농민은 농촌희생 위에 격렬하게 추진된 남한자본주의의 드라이브 속의 고개 숙인 사람들"이라고 지적했지만 농민들은 국내외로 이중고를 겪는 건 사실이다. 작가는 이에 대한 반대극부로 민족통일을 상징하는 '부부'와 분단모순을 풍자한 '무자년 여름'을 나란히 전시한 것이 아닌가싶다.

 

소 위에 보름달, 공존과 상생을 여는 제의

 

이번 전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검은 대지-월출'이다. 단출한 구도지만 그 속에 농촌사회의 서사가 압축되어 있다. 하늘의 달과 땅의 소가 하나가 되듯 자연과 인간, 도시와 농촌, 부국과 빈국이 공존하며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보려고 제의(祭儀)를 올리는 것 같다.

 

하여간 듬직한 소등 위에 정겹게 떠 있는 대보름달은 처연하도록 아름답다. 백자 달항아리를 볼 때 같은 넉넉함과 정겨움도 느껴진다. 작가는 농촌의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 작품을 통해 그의 꿈을 실현해 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농민화가 이종구, 그는 누구인가?  

 

작가 약력 및 경력 I 1954년 충청남도 서산 출생. 1976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졸업. 1988년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현재 중앙대예술대학 서양화학과 교수

 

수상 및 선정 I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 2005년 '올해의 작가' 선정 1994 가나미술상, 가나아트 1983년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중앙일보사) 1982년 중앙미술대전-특선(중앙일보사)

 

작품 소장 I 고대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문화체육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성곡미술관, 인천문화재단, 전북도립미술관,  청와대,  청주지방검찰청, 하나은행, 한국은행 등등 

 

저서 I <땅의 정신 땅의 얼굴>, 한길아트, 2004 

덧붙이는 글 | 학고재(HAKGOJAE)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70번지 신관 www.hakgojae.com 관람료 무료. 관람문의 02) 720-1524. 작가 이종구홈페이지http://www.kcaf.or.kr/art500/leejonggu/index_main.htm


태그:#이종구, #농민화가, #검은 대지 연작, #서산 오지리, #민중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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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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