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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지난해 10월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지난해 10월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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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 나는 초중생 자녀를 둔 학부모 7명과 함께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 섰다. 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떠났다가 무단결석 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대리해 공정택 서울시교육감과 해당 학교 교장을 상대로 '결석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내기 위해서였다.

다 알다시피 지난해 10월과 12월에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제고사가 실시됐고, 우리 8명의 학부모와 아이들은 일제고사를 보는 대신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그런데, 교육청과 학교는 아이들에게 무단결석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초중등교육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체험학습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결석처리는 부당하다.

소장 접수를 앞두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소송단 대표인 나의 첫마디는 이랬다.

"그동안 진보신당 서울시당과 함께 소송단을 모집해 왔으나 피고가 공정택 교육감과 해당 학교의 교장인데다 학교가 소송에 필요한 서류의 발급을 미루거나 거부하는 등 어려움이 있어 처음에 뜻을 같이 했던 많은 학부모들이 중간에 포기하는 바람에 결국 8명만이 소송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선택한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잘못된 교육행정을 바로잡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일제고사 폐지를 위해서 학부모들이 구체적인 집단행동에 나선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이번 소송은 의미가 깊다고 본다. 

'왕따' 될 걱정하면서도 체험학습 선택한 아이들

행정소송을 함께 한 학부모의 마음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표집 방식' 평가가 아니라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전집 방식' 평가로 바뀌면서 일제고사가 애초 가지고 있었던 취지가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그 결과 우리 아이들이 시험성적에 따라 줄 세워지고, 이 시험이 과잉경쟁을 유발하여 빈부차이에 따른 교육 불평등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이들도 이런 일제고사가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후 아이들과 토론을 한 뒤  담임 교사 등에게 시험을 치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체험학습을 신청했다.

실제로 우성이와 예지의 아버지인 나는 일제고사에 대해 많은 시간 동안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이에 따라 지금과 같은 일제고사는 보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냈다. 물론 아이들은 '학교에서 왕따가 되는 것 아니냐'는 농반진반의 이야길 했고, 그 말은 다른 어떤 것보다 내 마음을 흔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며칠간 고민 끝에 '맞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체험학습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고, 내게 알렸다.

다른 학부모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지윤이와 지우도 그랬고, 민형이도 그랬다. 경태와 경태 부모는 그동안 학습 진단 효과는 이미 실시되고 있는 정기고사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학교마다 진도와 학습내용이 조금씩 다른 형편에서 전국적으로 동일한 시험을 동일한 시간에 엄청난 돈까지 들여서 하는 일제고사의 필요성에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못 박았다.

체험학습 결과보고서까지 냈건만, 결과는 '무단 결석'

일제고사 당인 체험학습을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무단결석 처분을 받은 아이들의 학부모 8명이 서울시교육청과 해당 학교 교장을 상대로 결석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일제고사 당인 체험학습을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무단결석 처분을 받은 아이들의 학부모 8명이 서울시교육청과 해당 학교 교장을 상대로 결석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 박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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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누구나 '차라리 중간만'이라는 말을 주문처럼 달고 산다. 그만큼 체험학습을 결정할 때 아이들의 의사가 최우선이었고, 나를 비롯한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의 결정에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는 것이다.

우리 아이와 나는 체험학습 계획서를 작성하여 담당 교사에게 제출했음은 물론이고, 체험학습 후에 체험학습 결과보고서까지 제출했다. 그런데, 결과는 무단 결석이었다.

교육청과 일선학교는 단지 그날이 '일제고사'를 보는 날이었다는 이유로 체험학습을 불허했다. 일제고사는 법적인 강제사항이 아니었고 단지 권고적인 사항이었음에도, 학부모와 아이의 체험학습 선택권을 침해한 것이다. 더구나 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일제고사 당일 체험학습 신청을 불허하라"는 초법적인 공문까지 내렸다.

학교에서 결국 무단결석 처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가지고 들어온 아이들의 늘어진 어깨를 보며, 우리 학부모들은 가슴이 아팠다.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결석을 했느냐 안 했느냐는 사소한 내용보다는 우리 가족이 내렸던 이런 판단이 틀리지 않았고, 우리의 상식에 맞는 생각들이 결국은 옳은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 싶었다.

행정 소송 낼 만한 이유, 4가지나 있습니다

우리 학부모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밝힌 법적인 근거는 크게 4가지다.

첫째, 실시 주체와 범위의 문제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제9조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작년에 실시된 일제고사는 각급 교육청이나 시도교육감협의회 주관으로 실시되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권한을 넘어선 것이다. 

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파면 또는 해임된 교사에 대한 소청심사위원회가 열리는 16일을 앞두고 서울 길동초등학교에서 해임된 최혜원 교사가 3월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뒤 해직교사 원상복직과 일제고사 폐지를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하려하자 경찰들이 막고 있다.
 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파면 또는 해임된 교사에 대한 소청심사위원회가 열리는 16일을 앞두고 서울 길동초등학교에서 해임된 최혜원 교사가 3월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뒤 해직교사 원상복직과 일제고사 폐지를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하려하자 경찰들이 막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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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체험학습 불허의 위법성 문제다. 체험학습신청권은 초등교육법에 보장되어 있는 내용이다. 그것의 권한은 '학교장'에게 있으나 서울시교육청은 체험학습을 앞두고 '승인 불허'를 일선학교에 지시하였다. 이는 일선 학교장의 권한을 교육청이 침해한 것으로, 이에 따른 결석처리는 위법이다.

세 번째로 무단결석 처분의 위법성이다. 일제고사 자체가 법적인 근거가 불명확한 시험이었음에도 이를 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단결석 처리를 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 방법에 대한 1차적 결정권자로서의 학부모 결정권 침해 문제다. 헌법이나 교육법 어디에도 아동(학생) 본인, 학부모의 뜻에 반하는 교육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법은 없으며, 오히려 교육기본법 제13조는 "부모 등 보호자는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의 교육에 관하여 학교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학교는 그 의견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헌법재판소도 "'부모의 자녀에 대한 교육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아니하지만, 이는 모든 인간이 국적과 관계없이 누리는 양도할 수 없는 불가침의 인권"이라고 한 다음, "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관하여 전반적인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인생관·사회관·교육관에 따라 자녀의 교육을 자유롭게 형성할 권리를 가지며, 부모의 교육권은 다른 교육의 주체와의 관계에서 원칙적인 우위를 가지는데, 자녀교육권은 부모가 자녀교육에 대한 책임을 어떠한 방법으로 이행할 것인가에 관하여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서 교육의 목표와 수단에 관한 결정권을 뜻한다"고 하고 있다.

나를 포함한 8명의 학부모들이 과연 무단 결석 처분으로 상처를 받았을 우리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진 않는다. 다만 이번 행정소송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힘을 가진 이의 말이 곧 정의가 아니라는 점과 언젠가는 우리의 작고 허약한 양심의 꽃이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예전에 비해 더욱더 아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해준 일제고사에게, 오히려 조금은 고마운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태그:#일제고사, #행정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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