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7일 밤 10시, 체포 48시간 만에 석방된 MBC <PD수첩>의 이춘근 PD는 밤 10시 30분께 MBC 본사로 직행했다. 본사 1층에 자리를 깔고 밤샘 '사수조' 준비를 하던 조합원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이 PD를 맞았다.
 
함께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회사에서 숙식하고 있는 김보슬 PD 등 많은 조합원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 PD는 1층 노동조합 사무실과 10층 시사제작국 사무실을 방문해 선배 동료 직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이틀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그의 부인 최아무개씨도 웃음을 되찾았다. 이 PD는 부인과 반갑게 재회한 뒤 "결혼 일찍 하길 잘했다, 정권이 우리 신혼 기간을 계속 늘려주는 것 같다"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지난해 2월에 결혼했다. 최씨는 "그해 4월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을 방영한 뒤 지겨울 정도로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 PD의 입술을 바싹 말라있었고, 팔목에는 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지난 26일 아침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에서 길 건너에 있는 서울중앙지검으로 이동하며, 수갑찬 상태로 고함을 지르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다.

 

이 PD는 석방 직후 MBC 본사에서 가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한편 시청자들의 깊은 관심을 호소했다.

 

- 지난 25일 체포 당시 상황을 말해달라.

"월요일(20일)에 출근한 이후 프로그램 제작에 매달렸다. 화요일까지 거의 잠을 못 잤다. 목요일부터 '사수조' 운영한다고 해서 수요일에 부인으로 하여금 짐을 갖고 회사로 찾아오게 했다. 집에서 나오던 부인을 줄곧 뒤따라온 것 같다. 부인과 차를 타고 마포대교 근처를 지나는데 갑자기 웬 차가 급히 앞을 가로막더라. 검찰이었다."

 

- 체포를 예상했나?

"여론이 주목하고 있는 사건이어서 이렇게 긴박하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내가 체포되기 전에 YTN 조합원 4명이 체포됐기 때문에 조금 우려스럽긴 했다. 정말 납득할 수 없었다."

 

-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상태여서 제작진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미 쇠고기) 졸속 협상을 한 장본인들이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건가? 물론 <PD수첩> 방송 이후 본인들이 여론의 지탄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 건강권을 지켜내려고 노력한 <PD수첩>에게 명예훼손이라니…. 물론 검찰은 형사소송법상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왜 이 수사를 지금 시기에 강제로 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 구속 가능성도 있다고 봤나?

"구속될 줄 알았다. 체포 48시간이 지났고, 잡아온 사람은 아무 얘기도 하지 않으니 충분히 구속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봤다."

 

- 수사 내내 진술을 거부했나?

"그렇다. '<PD수첩>이 성역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능희 CP가 국회에 출석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법정까지 간다면 우리 제작진의 의견을 소상히 밝힐 의향이 있다. 그런데 검찰 수사의 정황을 보면 의심스러운 게 많다. 미디어법 앞두고 수사가 다시 시작됐다. 이것도 매우 우려스럽다. 내 양심에 따라 진술거부했다."

 

- 지난 26일 아침, 서초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가면서 "언론자유 보장하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시사 프로그램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정부의 협상에 잘못이 있었음을 지적한 것에 대해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면 언론이 감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무 말도 못할 것이다. 비판언론, 비판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말라는 얘기나 똑같다.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물론 지금 상황을 관심 갖고 지켜보는 사람이 많지만 더 깊은 관심 기울여야 한다. 언론자유 훼손은 쉽지만 복구는 대단히 어렵다."

 

- 검찰은 계속 '본사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의지를 밝히고 있다. 소환 요구 혹은 강제구인 가능성이 여전한 것 아닌가.

"이후 일정은 나 혼자 결정할 부분이 아니다. 고민되는 부분이 많은데, <PD수첩> 제작진과 노동조합과 함께 얘기하고 결정할 문제다. 중요한 점은 체포하고 압수수색하면서 이 문제를 처리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강제 수사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한 명 조사하고 끝나거나 그럴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소환에도 스스로 응할 생각은 없다. "

 

- 검찰의 초점은 명예훼손의 의도성, 번역 오류의 의도성인 것 같다.

"번역 오류 부분이야 지난해 사과방송까지 내보내지 않았나. 지난 19년간 <PD수첩>이 누구를 욕보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적 없었다. 정운천 전 장관과 민동석 전 차관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우리가 방송을 만들었다는 건데 이치에 맞지 않다. 사태가 잘 정리되지 않으면 언론 감시, 비판 기능이 크게 축소될 것이다."

 

- YTN 조합원의 체포, 구속 등과 함께 묶어 '언론탄압'이라는 주장이 거세다.

"단언하기는 쉽지 않지만… '오비이락'이라면, 까마귀가 건드려서 배가 떨어진 건지, 정말 우연인지…. 많은 분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다."

 

- 검찰 수사 과정에는 어떤 질문들이 나왔나?

"그쪽에서도 워낙 민감한 사안이니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의도성'에 대해 제작진의 입장을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지난해 수사의뢰된 내용을 물었다. 의도적인 편파, 의도적인 편집 등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인권 유린은 없었다. 그쪽도 여론이 좋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분위기였다."

 

- 체포나 압수수색 등의 과정에 대해서도 항의했나?

"원칙적으로 항의는 했다. 하지만 검찰이야 법원에서 발부받은 영장이 있으니 절차적으로는 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시청자 여러분들의 관심을 다시 한번 촉구하고 싶다. 나만의 문제, MBC만의 문제, <PD수첩>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라고 본다.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내야 하는 문제다."

 


태그:#PD수첩, #이춘근, #광우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