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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가는 산길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가는 산길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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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주산 광교산

등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여행을 떠났어도,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 나는 지독한 등산 중독이다. 수원을 가게 되었다. 며칠 동안 머물러야 할 곳. 그곳에서 나는 산을 찾게 되었다. 수원을 빙 둘러 제일 높은 산이 광교산이란다.

광교산(光敎山, 582m)은 수원의 주산으로 원래 광악산이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산에서 광채가 솟구치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고 해서 광교산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수원 8경의 첫 번째가 광교적설(光敎積雪)이라는데, 따스한 봄날 눈 보기는 힘들겠다.

주저함 없이 광교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수원역에서 13번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친절한 버스는 다음 내리실 곳이 광교산이라고 알려준다. 평일이라 그런지 등산객이 많이 내리지 않는다. 등산로 입구 맞은편으로 커다란 저수지가 있고, 햇살에 반짝거리는 물결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산길 입구에는 '반딧불이 화장실'이 지키고 있다. 화장실에 들어가려는데 몇 명의 여자 분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순간 멈칫한다. 잘못 들어왔나? 다시 보니 맞게 들어왔다. 화장실도 휴게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느낀다.

소나무 숲길이 아름다운 산

화장실을 나와 침목으로 만든 계단으로 올라선다. 산길이 푸석거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바로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와! 이렇게 분위기 있는 넓은 산길이 있다니. 햇볕을 적당히 가린 소나무 숲이다.

리기다 소나무가 쭉쭉 뻗은 산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리기다 소나무가 쭉쭉 뻗은 산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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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분홍리본을 일정한 간격으로 묶어 놓았다.
 누군가 분홍리본을 일정한 간격으로 묶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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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쭉쭉 뻗은 소나무는 리키다소나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숲이 좋기는 한데 손님이 주인행세 하는 것 같아 좋은 느낌이 조금 반감된다. 리기다소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인 수입 종으로 병충해에 강해서 우리나라 산야에 조림용으로 심어졌다고 한다. 생명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나무를 잘라도 둥치에서 새순이 나올 정도다.

등산객들은 얼굴표정들이 밝다. 도란도란 걸어가면서 따사로운 봄을 즐기고 있다. 가끔씩 보이는 분홍리본이 봄날의 미소마냥 반갑다.

친절한 산길 안내판

산이 높지 않아 쉽게 오를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산길은 길게 이어진다. 정상이 가까워질 무렵 친절한 계단을 만난다. 등산로 훼손 방지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설치했다는 계단은 길이가 212m에 380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다고 알려준다.

얼마 안 되는 구나 생각했는데, 한참을 올라간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자꾸 쉬어간다. 계단을 힘들게 올라서니 소나무 가지에 걸린 친절한 안내판을 만난다. '올라오시느라 힘드셨죠? 조금만 더 힘내세요. 140m 전방에 형제봉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은 배려지만 너무나 기분이 좋다. 정말 힘들 때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궁금하기만 한데….

친절한 안내판. 한참 힘들게 올라오는데 머리 위로 조금만 더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고 있다.
 친절한 안내판. 한참 힘들게 올라오는데 머리 위로 조금만 더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고 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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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부족한지 아름다운 시를 적어 놓았다. 잠시 멈춰서서 읽어본다.

그 곡절 많은 사랑은
기쁘던가 아프던가.

젊어 한창 때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기쁨이거든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들고
年中들어 肝臟(간장)이 저려오는 아픔이거든
가을날 울음빛 단풍에 젖어 들거라.

박재삼 시인의 <산에서> 일부

저 많은 아파트 누가 다 들어가 살는지…

능선 길 끝에 전망대가 보이고, 그 위로 커다란 바위가 있다. 바위 아래로 굵은 줄 두 개를 내려뜨리고 있다. 위를 바라보니 바위는 줄을 잡고 올라오라 한다. 줄타기를 하듯 바위위로 올라서니 형제봉 표지석이 보인다. 전망이 좋다. 몇 분이 여기저기에 앉아서 경치를 즐기는 지 사색에 잠겼는지 말이 없이 먼 곳만을 바라보고 있다.

형제봉 올라가는 바위. 두줄의 로프를 내려 놓았다.
 형제봉 올라가는 바위. 두줄의 로프를 내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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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에서 아래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형제봉에서 아래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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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표지석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 한분이 오시더니 말벗이 필요한지 한마디를 한다. "아파트를 무지막지하게 때려 짓는구만. 저기에 누가 다 들어가 살런지…." "저기가 수원이에요?" 말을 받아주니 이야기가 술술 나오신다.

2년 만에 올라왔는데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개발되고 있다고 하시기도 하고, 얼마 전까지도 산에 뛰어다녔는데, 이제는 힘들다고도 하신다. 아래로 아파트가 보이는 곳은 용인이고, 반대편 아래는 광굔데, 저곳은 개발을 막아놨다고도 하신다. 광교산 자랑도 해주시고 한참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한동안 이야기하다가 시루봉까지 가야 한다며 인사를 하고 먼저 일어섰다.

여기가 병자호란 때 전쟁터

힘들게 올라왔는데 산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간다. 점점 걸음이 힘들어진다. 가는 길에 70m를 벗어나 김준용장군 전승비가 있다고 알려준다. 갈까 말까 망설여진다. 갔다 오자. 낙엽 쌓인 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간 곳에는 커다란 바위벽에 비석모양으로 다듬고 忠襄公金俊龍戰勝地(충양공김준룡전승지)라고 음각으로 새겨 놓았다. 생각했던 것 보다는 싱겁지만 의미가 있는 비라고 한다.

김준용장군 전승비. 바위벽면에 하얀 부분에 글씨를 새겨 놓았다.
 김준용장군 전승비. 바위벽면에 하얀 부분에 글씨를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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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라도 병마절도사였던 김준용(1586~1652) 장군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병사를 이끌고 이곳 광교산에 와서 격전을 벌인 끝에 청 태종의 사위인 양고리(楊古利) 등의 목을 베어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 정조 때 축성책임자인 채제공이 화성축성에 필요한 석재를 구하러 광교산에 갔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서 그 사실을 새기게 했다고 한다.

산 능선은 서울로 향하고

따뜻한 날씨는 땀을 쭉 뺀다. 또 다른 봉우리인 죽루봉은 힘들어서 돌아가고, 시루봉으로 올라간다. 낮은 산이지만 쉽게 정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올라가는 길에 양팔을 펼친 것처럼 넉넉한 소나무가 나를 앉았다 가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앉았다 갔을 자리에서 잠시 쉰다.

올라가는 길에 잠시 자리를 빌려준 소나무. 저 큰 팔에 안기어 있으니 편안하다.
 올라가는 길에 잠시 자리를 빌려준 소나무. 저 큰 팔에 안기어 있으니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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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 시루봉 정상
 광교산 시루봉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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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삼거리가 나오고 100여m 더 가라고 한다. 그 길 끝에 광교산이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이정표를 보니 산행 시작점인 경기대까지 5,997m를 왔다고 알려준다. 걸었던 시간은 2시간 반 정도. 정상에서 바라본 능선은 서울로 향하고 있다. 쭉 산길을 따라 가다보면 서울로 갈 수 있겠다.

내려가는 길은 노루목에서 사방댐으로 내려섰다. 마음 같아서는 억새능선을 따라 계속 걷고 싶지만…. 산을 다 내려올 즈음, 연노랑으로 반짝이는 생강나무 꽃이 나는 이제 시작인데 하면서, 잘 가라고 인사를 나눈다.

내려가는 길. 길 옆으로 생강나무 꽃들이 반짝거리며 피어있다.
 내려가는 길. 길 옆으로 생강나무 꽃들이 반짝거리며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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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광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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