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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년만에 한국땅을 밟고 그곳에서 중국비자를 다시 만들어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뜻하지 않게 부산에 위치한 중국 영사관 직원과 말다툼을 했다. 발단은 비자신청서에 내 한자이름을 적어넣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여행을 본업이었던 내가 다녀본 수 십개의 나라들이 한국문화를 중국의 한 부분처럼 취급하는것에 마음이 상했었다. 그 이후로 한자사용, 특히 이름을 한자로 쓰는 짓은 하지않는다. 아쉽게도 지금 내가 사는 곳이 중국이라 한자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이름 석자만은 결코 한자로 적지 않는다. 중국 비자연장을 할 때에 누군가 내게 한자 이름을 강요하면, '나는 한국사람이기에 한자이름 따윈 없어'라고 쏘아붙였다.

그렇기에 우리조국 내에 있는 중국 영사관에서 내 이름을 한자로 쓰라고 요구하는 것을 당연히 거절했다. 한자 이름이 없다라고 계속 버티는 내게 영사관 직원이 말했다.

'한자를 모르신다면 제가 대신 써드리죠.'

이 말이 한자를 쓸 수 없다면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한국 분위기처럼 보여 화가나서 소리쳤다.

'여기는 한국이잖아요. 한국에서 왜 꼭 한자를 사용해야 해요? 여기는 한국이에요.'

한국과 중국이 속한 동아시아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2가지 언어체계가 있었다. 하나는 소리를 중심으로 뜻이 연결되는 '소릿말'로서 한국어, 일본어, 만주어, 몽고어, 터키어(돌궐어)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뜻을 중심으로 소리가 따라오는 '뜻말'로서 한족어, 중국소수민족어, 베트남어 등이 여기에 속한다.

뜻말은 소릿말에 비해 상형(像形)이 쉽기 때문에 '뜻글'인 한자가 먼저 생겨났다. 글이 없던 소릿글 민족들은 뜻말 민족들(초기 중국은 여러 민족들의 집합체)로부터 한자를 배워 사용해봤다. 예를 들어, '나는 배움터에 간다'를 '羅嫩 配音攄愛 間多(나눈 배음터애 간다)' 혹은 '那亂 倍陰土哀 干茶(나난 배음토애 간다)'로 사용했다.

이런 사용의 흔적은 주몽이라는 발음과 비슷한 한자로 만든 주몽(朱蒙)·추모(鄒牟)·추몽(鄒蒙)·중모(中牟)·중모(仲牟)등의 이름에서 나타난다. 소릿글인 '주몽'을 뜻글자인 한자로 표현하자니 같은 발음의 여러 한자이름이 생겼다.

신라의 다른 이름인 신로(新盧)·사라(斯羅)·서나(徐那:徐那伐)·서야(徐耶:徐耶伐)·서라(徐羅:徐羅伐)·서벌(徐伐) 등과, 가야의 가야(加耶 ·伽耶 ·伽倻) ·가라(加羅) ·가량(加良) ·가락(駕洛) ·구야(狗邪 ·拘邪) 등의 여러 이름들도 뜻글을 소릿말에 적용함으로서 생겨나는 부산물이었다.

이런 방식은 너무 불편하기에 좀더 쉽게 사용하기 위해 설총의 '이두'가 나타났다. 이두에서는 '나는 배움터에 간다'가 '我わ  學校に 行もす'처럼 표현된다. 물론 わ, に, もす는 현대 일본어이지만, '향가'에 나오는 '隱(~~은), 乙(~~을)' 등과 원리가 같기 때문에 예로 사용했다.

쓰기 간단한 한자(隱, 乙, 일본어는 간단한 한자에서 더 간단한 히라가나로 변화)를 조사 발음으로 약속하고 다른 것은 한자의 뜻만 빌리는 것이다. 예에서 보이는 わ를 '는', に를 '에',  もす를 '니다'라는 발음으로, 我와 學校, 行은 그 뜻에 해당하는 소릿글로 읽는다고 신라인 모두가 약속해 버리면 '我わ  學校に 行もす'라는 글을 읽을 때 '나(我)는(わ) 배움터(學校)에(に) 갑(行)니다(もす)'로 읽혀진다.

이두글 속의 '隱, 乙'와 같은 조사 대신에 일본 글을 쓴 이유는 이두글의 조사가 일부만 발견되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일본 문자가 이두글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신라인이  わ, に, もす를 '는, 에, 니다'로 약속했다면, 일본인은 '와, 니, 마스'로 읽는다고 약속했다.
我, 學校, 行은 그 뜻에 해당하는 소릿글로 읽는다. 따라서 일본인이 '我わ  學校に 行もす'읽을 때는 '와타시와 가꼬니 이키마스'로 읽힌다.

이런 이두식 한자사용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상당히 많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大田, 光州, 大邱로 쓰고 읽을 때는 한밭, 빛고을, 달구벌로 읽는 것이 대표적이다. 학교교가에는 특히 지명이 많이 들어간다. 그들 교가의 가사에는 틀림없이 大田, 光州, 大邱 라고 적혀있더라도 노래부를 때는 한밭이나 달구벌로 불려질 것이다.

소릿말로서 뜻글을 사용하는 어려움들은 1446년 음력 9월 3일을 시작으로 사라져갔다. 동아시아 소릿말 민족들 중 최초로 완전한 소릿글인 '한글'이 반포된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한글'은 500년 조선의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60년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도 핍박받는다.
순한글은 비천하게 여겨지며, 그동안 이두형식으로나 남아있던 한밭과 같은 우리말들이 '대전'같이 한자명으로 완전히 바뀌어졌다.

그래서 중국인 친구들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독립했다'라며 예를 드는 한국인들의 이름(중국식)과 서울(漢城, 한족의 도시)나 한국(韓國, 춘추전국시대 중국 제후국 중의 하나)에 말문이 막힐 수 밖에 없다. 물론 漢城이 큰 도읍, 칸의 도읍이라는 뜻이며 韓國 한(큰) 나라라고 애써 설명해 보지만, 한국내에서도  순우리말이 사라져가는 마당이라 뒤가 개운치 않다.

이런 불행은 우리 소릿글 민족들의 운명인지... 강대한 소릿글 민족이었던 만주족은 한족에 흡수되었고, 터키(돌궐)나 흉노는 멀리 서쪽으로 쫓겨나서 현재는 동아시아인이라 부를 수도 없으며, 몽고마저 '전쟁'만 아는 야만인으로 여겨진다. 그나마 일본이 경제강국으로서 소릿글 민족의 자존심을 세워주기는 하지만 미덥지 못한것도 사실이다.

일본글은 좋게 말해서 뜻글과 소리글의 하이브리드, 나쁘게 말하면 키메라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Mc Donald'를 '마꾸도나르도'로 'Hamberg'를 '함바가'로 밖에 나타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이런 비판에 대해 일본말 테츠(鐵)의 '츠'발음은 외국인이 발음할 수 없으니 히라가나 발음의 독립적이다라는 반박도 들어봤다. 하지만 가깝게 한국의 '아래 아(훈민정음 창제 시에는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사라져버린)'는 일본의 '츠'발음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지금도 대구 사투리의 '희야(어린 애가 친형을 부를때 사용하는)'나 부산 사투리의 '새야'의 '희'나'새'는 아래 아(콧소리 섞인 아) 발음을 사용한다. 테츠야(은하철도 999의 주인공)의 '츠야' 발음은 앞서의 '희', '새'와 거의 똑같다. 더구나 만주족이나 몽고인의 발음에서도 심심찮게 아래아 발음을 들을 수 있다.

또한 북방 중국어(몽고 원나라 시절에 형성되어 만주족 청나라를 거쳐 발전된)에서조차 '아래 아'와 비슷한 권설음(zh, ch, sh, r)이 있다. 그에 비해 진대에 형성되어 한, 당, 남송을 거쳐 형성된 남방 중국어(북방 소릿말 민족에 밀려 장강이남으로 밀려내려간)에는 아직까지도 권설음이 없다.

어쨌거나 '대표적'인 소릿글인 히라가나가 소릿글민족들의 발음을 반도 표현하지 못하지만, 우리 '한글'로는 더 많은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漢字化된 한글이 안쓰럽다.

지나가듯 '뜻말 '민족들의 근황을 살펴보면, 재미난 현상들을 볼 수 있다.

沒接我的打電話
汝帶來挺多麻煩
今天有重要會議
早一点來准備好

오늘 받은 휴대폰 문자 중 하나다. 현대 중국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문구들로서 뜻은 전할 수 있어도, 소리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다. 부수에 발음 정보가 있는 문자도 있지만 전체 한자의 30% 이하이며, 발음부수가 있어도 정확한 발음을 유추해내기는 힘들다. 여기에 성조까지 더해지면 발음 유추하는 것은 암호 해독수준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같은 글자를 읽으면서도 발음은 지역마다 달라져 버린다.

한국발음은,

몰 접 아 더 타 전 화
여 대 래 점 다 마 반
금 일 유 중 요 회 의
조 일 점 래 준 비 호

북경 표준어는,

메이 지에 워 더 따 띠엔 후아
니   따이 라이 팅 뚜오 마 판
진 티엔 요우 쭝 야오 후에이 이
쟈오 이  띠엔 라이 쭌 뻬이 하오

광동화는, 
모 집 모 개 따 띵 와
니 따이 라이 호 뚜 마 판
깜 약 야오우 쭝 유 워이 이
쪼우 얏 띠 라이 쫀 삐 호

이렇게 발음이 다르고 보니 같은 중국인이어도 지역이 다르다면 서로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발음통일과 교육을 위해 '핀인쯔무'를 도입했다. 핀인쯔무란 간단히 말해서 한자의 발음을 서양 알파벳을 사용해서 표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沒接我的打電話'의 발음을 알파벳인 'mei jie wo de da dian hua'으로 표기한다.
사실 핀인쯔무만 표기하더라도 대화는 가능해서 중국어 지원이 안되는 해외사이트에서 중국인들이 대화할 때 많이 사용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중국 조차 '뜻글'인 한자의 한계를 인정하고 소릿글의 활용이 점차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뜻말 민족의 다른 하나인 베트남에서는 백년 전부터 한자를 완전폐기하고 중국의 핀인쯔무와 비슷한 '쿠옥 암(國言이라 생각되어지는)'을 사용한다. 베트남 말로 남자는 nan, 여자는 nu로 한자인 男女의 발음이 아직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대 베트남인들은 한자를 '한자'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공문서나 교육, 생활 어느 곳에서도 한자는 찾아볼 수 없지만 그들은 불편해하거나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다른 뜻말 민족인 태국에서도 이같은 변화가 있었다. 중국 남부 남조라는 국가를 세웠던 태국인이 쿠빌라이칸에 패해 남쪽인 인도차이나반도로 쫓겨내려갔다. 그러면서 그곳에 있던 크메르제국을 빈사상태까지 몰고가며 지금의 태국을 건설했다. 그러면서 소릿글인 크메르와 몬의 영향 받아 현제의 태국어가 만들어졌다. 12세기 경부터 한자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앞의 베트남보다 더욱 한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무에타이(武泰?)처럼 소리는 남아있다.

태국어는 뜻말임에도 중국어와 어순이 조금 다르다. 중국이라면 무에타이(武泰?)대신 타이무에(泰武), '코(島?,섬이라는 뜻) 사무이' 대신 '사무이 코'라고 했을 것이다. 어순이 중국내 언어들(한족어,소수민족어)과 사뭇 다르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뜻말의 대표적 특징인 성조를 가진다.

뜻말의 구조상 한 음절(한개의 모음을 가진 음절, 라이(來), 야오(要)등은 한 음절로 취급)마다 뜻이 있고,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음절의 수는 수십개에서 수백개가 고작이다. 그렇기에 한 음절에 성조(음의 높낮이, 음절의 모음위에 ~-^" 등의 기호를 넣어 구별)를 넣어 음절의 수를 확장했다.

예를 들어 '마'라는 한 음절은 한국어와 같은 소릿글에서는 의미가 없지만, 뜻말에서는 성조에 따라 의미가 여러가지로 나눠진다. 중국어에서 1성의 마는 '엄마', 2성의 마는 '산초', 3성의 마는 '말', 4성의 마는 '나쁜'이다. 베트남어에서 1성의 마는 '귀신', 2성의 마는 '엄마', 3성의 마는 '어떤', 4성의 마는 '벼심기' 5성은 '무덤', 7성은 '말'이다. 이처럼 뜻말은 적게는 4개에서 많게는 10개가 넘는 성조를 사용한다.

길게도 적은 서론글이다. 이제 본론으로 드러가자. 분명히 한국어는 한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불구언어가 아니다. 더욱이 한글이라는 세계최강의 소릿글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한자(번체, 한국발음)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유식하게 본다. 한국한자의 발음만으로는 대화가 불가능한 '쓰기 전용'의 불구문자임에도 말이다.

이런 상황을 바꾸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선택권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는 한국이잖아요. 한국에서 왜 꼭 한자를 사용해야 해요? 여기는 한국이에요'라고 말하고도 이상한 사람취급을 안 받았으면 한다.

참고로 연극 '누가 집현전의 학사를 죽였는가'에서 나온 보수학자 최만리의 항변을 소개한다.

새로운 글자는 불과 28자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세상을 바꿀 엄청난 힘을 가졌네.
그 문자가 반포되는 날이면 이나라는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되는거야.
상것들과 노비들도 모두 글을 읽고 쓰는 세상을 생각해 보게.
상것들이 학문을 한다고 거들먹거릴것이고 노비가 상전과 사리를 따지게 될 것이야.
아랫것과 윗것, 양반과 상놈, 임금과 신하의 위세는 뒤죽박죽이 되고 관가에는 제 이익을 찾으려는 자들이 목소리를 높일 것이야.
무엇보다 대국의 글을 버리고 오랑캐의 글을 만들어 쓰는 조선을 대국이 그냥 보고만 있지 않겠지.


태그:#한자,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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