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은 온갖 새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잡는다는 옛말은 빈 말이 아닌가 보다. 아침은 항상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기분 나쁜 소리가 있다.
 
거친 짐승이 웅크리고 앉아 내쉬는 숨소리 같은, '웅~'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또 어디에선가 포크레인이 땅을 파고 있나보다. 부지런하기는 그들을 따라올 것이 없을 듯, 아침 일찍부터 새 소리를 잡아먹으며 기계음이 들려온다.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 그런데 저 소린 뭐지?
 
우리 집 뒤는 야트막한 동산이다. 동산 전체를 다 합해봐야 만평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작은 동산이다. 하지만 그 산에도 어엿한 이름이 있다. '알뫼산'이라는 이름이 앙증맞게 붙어 있다.
 
알뫼산은 우리 동네 주민의 태반을 이루는 청주 한씨 문중 산이다. 산의 절반은 한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나머지 절반은 그 문중의 큰 집 명의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집 형편이 안 좋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부부가 별거 중인데 이혼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사업을 하다가 진 빚도 좀 있는데 아무래도 재산 정리를 할 거 같다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집은 땅이 많으니 설마 선산을 팔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가을께부터 뒷 산에 알림막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무연고묘'를 언제부터 언제까지 정리한다는 걸 알리는 알림막이었다. 그래서 둘러보니 여기저기 조금 볼록하다 싶은 곳엔 다 무연고묘를 알리는 번호패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 때부터 우리 부부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집 뒤를 에워싸고 있는 산이 좋아서 이 집을 샀는데 산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니 우리로써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안 그래도 산을 개발해서 전원주택 단지를 만드는 곳들을 보면서 그 흉물스러움에 혀를 찼는데 우리 집 뒤가 바로 그리 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래서 땅을 산 개발업자와 협상 아닌 협상에 들어갔다. 그들은 산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진입로와 하수구가 빠져 나갈 땅이 필요했고 우리는 집 뒤의 나무들을 살리고 싶었다. 집 뒤에 있는 큰 참나무들만은 살리고 싶었다.
 
집뒷산이 개발된단 소리에...
 
하지만 협상은 잘 되지 않았다. 우리 땅을 좀 떼어 주는 대신 집 뒤의 땅을 두 배로 달라고 했다. 우리는 집 둘레에 있는 나무들만이라도 살리고 싶어서 그런 제안을 했지만 그들은 그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진입로로 쓸 땅은 보통 땅보다 더 값을 쳐주기 때문에 그 정도로 협상해도 된다고 아는 이가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서 그런 제안을 했는데 그들은 다른 복안이 있는지 응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고 우리도 담대해졌다. 처음에는 나무없는 우리 집 뒤를 상상할 수 없었지만 나중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게 아닌 이상 언젠가는 개발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개발이 되더라도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개발되었으면 하는 쪽으로 우리는 마음을 정리했다.
 
지난 2월 초순 무렵에 드디어 측량이 시작되었다. 측량 기사가 와서 이리저리 땅을 측량하고 빨간 말뚝을 경계 지점에다 다 박았다. 그들에겐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나는 그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뚱하게 지켜봤다.
 
측량이 끝나고 며칠 뒤에 포크레인 소리가 웅웅 하고 들리더니 무연고묘를 정리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포크레인이 들어갈 수 있도록 나무들을 베어내고 정리 작업을 했다. 빽빽하게 서있던 밤나무들을 좀 베어내자 뒤산이 보기좋게 훤해졌다. 그 새 우리 마음이 간사하게 바뀐 건지 뒤산이 훤한 게 그 전보다 좋아 보였다.
 

 
개발되면 땅값 올라 좋고 이웃 생겨 좋고...
 
옛 말에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이제 그말은 바뀌어져야 한다. 요즘은 십 년이 아니라 일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일 년이 뭔가 한 달 사이에 바뀔 때도 있다. 분명 없던 집이 한 달 쯤 뒤에 보면 떡 하니 서있는 경우도 있다.
 
바다를 끼고있는 산과 밭들은 이미 많은 부분이 개발되었다. 이제는 안으로 들어온다. 바다를 끼고 있지 않아서 개발의 바람이 덜 불었던 우리 동네 근처도 새 집들이 자꾸 들어선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좋다고 한다. 개발이 되면 땅값이 오르고 그러면 좋지 않냐고 한다. 그 말도 맞긴 맞는 말이다.
 
우리도 이제 마음을 바꿨다. 나무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내 것이 아닌 것에 미련을 둘 필요는 없다 싶다. 이왕 개발될 거라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웃이 생기면 같이 어울려 놀 사람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그들과 함께 산에도 가고 들길도 걸을 꿈을 꿔본다. 또 사람들 말대로 땅값이 오르면 좋으면 좋지 나쁠 건 없다. 그래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음을 정하고 우리는 그 때부터 나무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계속 아쉬워하고 욕심 내봐야 내 마음만 상할테니 일찌감치 마음을 접는게 낫다고 생각한 거다.
 
살아남을 나무라면 살아남겠지. 설마 산을 온통 다 밀고 집을 짓진 않겠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오늘도 뒷산의 나무들은 이런 사실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굳건하게 서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비가 오면 또 비를 맞으면서 나무들은 서있다.  이 평화가 언제까지 갈 지 알 수가 없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봄에 우리 집 뒷산은 지금 속으로 떨고 있다.
 

 

태그:#나무, #전원주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