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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이래로 전해져 온 솟대 신앙은, 첫째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마을의 경계신으로서 액이나 살, 또는 잡귀의 침입을 막는 수호신적인 존재, 둘째 풍수 지리적 형국에 따라 보허, 진압, 살막이, 화재막이 등 기능과 풍농 풍어, 행운과 방재 축원의 대상으로 신앙시됩니다. 이러한 솟대의 주기능은 아무래도 마을의 안녕과 수호입니다.

솟대 신앙을 심리적인 기원에서 보면 새는 지상과 하늘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영물이라 숭배 되어왔다고 합니다. 솟대는 또 지상에서 천상을 향해 높이 솟았기 때문에 지상의 온갖 소원을 천상의 신들에게 매개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하겠습니다.

만든 마을 솟대
▲ 김씨 할아버지가 만든 마을 솟대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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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의 이런 솟대 신앙 풍경은 요즘 도심에서 만나기는 힘듭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 산책길에 솟대를 만났습니다. 해운대 청사포 어귀에서 말입니다. 청사포는 구석기 시대에 생성된 부산에서는 가장 오래된 촌락입니다. 그렇지만 솟대 신앙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던 솟대가 새벽 어둠 속에서 눈에 띄게 보였습니다. 처음엔 긴가민가 했지요. 가까이 다가가보니 분명 솟대였습니다. 솟대가 세워진 자리는 (해운대의 청사포 입구는 두 군데인데,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닌) 청사포 동구 앞이었습니다. 또 그 자리는 파릇파릇 마늘과 겨울초 등이 자라고 있는 김씨 할아버지 텃밭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마침 할아버지는 채마밭에 뿌릴 우물물을 길어오고 있었습니다.

만든 마을 솟대에 동네 사람들 흐뭇해.
▲ 할아버지가 만든 마을 솟대에 동네 사람들 흐뭇해.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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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할아버지 이 솟대는 누가 만든 거에요 ?"
"아, 내가 만든 거지. 며칠 안 보이더니 새벽 일찍 산책 나왔네 ? 정말 산책을 함께 다니는 부부 모습이 보기 좋다..."
"어머, 감사해요. 할아버지도 일찍 밭에 나오셔서 일하시는 모습도 정말 보기 좋은데요. "

산책을 따라 나온 아내는 할아버지와 다정한 대화를 나눕니다. 벌써 몇 년전부터 새벽 산책길에서 김씨 할아버지가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대화를 나누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습니다.

가꾼 할아버지 텃밭
▲ 새벽 일찍 나와 가꾼 할아버지 텃밭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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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그런데 저 솟대는 할아버지가 만드신 거에요 ?"
할아버지는 고개만 끄덕입니다.

"할아버지 정말 잘 만드셨네요 ? 어쩜 이렇게 솜씨가 좋으세요? 못 하시는 게 없으신 거 같아요." 

평소 할아버지의 농사 짓는 솜씨도 여느 채마밭과 달랐습니다. 채마밭은 크지 않지만 없는 게 없습니다. 대추나무, 매화나무, 포도나무, 토마토, 오이, 가지, 고추, 도라지, 민들레 등은 할아버지의 부지런한 솜씨가 아니면 재배하기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솟대를 만든 솜씨까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무짝에 쓸모 없는 나무 막대기와 나뭇가지를 주워 만든 것 같아 보이는데 너무 근사합니다. 인위적인 대패질로 다듬어 만든 솟대보다 더 자연스럽고 멋져 보였습니다. 정말 솟대 하나로 이렇게 동네 분위기가 달라 보이다니 말입니다. 채마밭 주위는 연립아파트와 원룸 등 현대식 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도심의 동네 가운데 마치 새들이 날아와서 지저귀는 듯한 솟대를 세운 할아버지의 마음에 나는 어릴 적 자란 고향 마을 동구 앞에 서 있는 착각을 했습니다. 

"할아버지, 정말 훌륭하십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 
나와 아내는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뭐 그냥 쓸모 없는 나무 막대기가 굴러다녀서 주워와서 만든 건데...보기가 괜찮은가 ? 괜히 쑥스러운데 실은 난 목공이었다오." 
 "어머 할아버지는 농사도 지으시고 목공 기술까지 가지고 계세요? 그런데 목공소는 어쩌시구 농사 일을 하세요?"
"몇 년전부터 목공소 일이 거의 없어서, 이렇게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오. 나는 목공소 일보다 농사 짓는 일이 더 재미 있다우. 새벽에 나와 별보고 들어가지. 어떤 때는 이 움막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오. 채마밭은 어린애 돌보듯 돌보지 않으면 안되니까 말이요." 

동네 분위기 이처럼 달라지다니...
▲ 솟대 하나로 동네 분위기 이처럼 달라지다니...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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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클 때는 마을 어귀에 솟대가 다 있었다오. 사실 내 목공 기술도 솟대 만드는 기술에서 시작된 거지. 그때는 나는 땔감나무만 보이면 솟대를 만들곤 했지. 나처럼 이렇게 솟대를 좋아하는 사람 만나니 내가 더 감사할 뿐이지..."

할아버지는 덧붙여 우리의 생활이 아무리 문명화 되어도 사람의 삶은 신앙(믿음)이 없이는 삭막한 삶이 된다고 덧붙이셨습니다.

만나 찍어 둔 김씨 할아버지의 땀을 흘리며, 민들레(간암 등에 좋은 약초) 밭 가꾸는 모습이시다. 힘들게 키워 투병 생활하는 이웃들에게 선물하신다는 아름다운 마음씨처럼 텃밭이 기름져서 무얼 키우던 잘 큰다.
▲ 작년 가을 어귀 산책길에서 만나 찍어 둔 김씨 할아버지의 땀을 흘리며, 민들레(간암 등에 좋은 약초) 밭 가꾸는 모습이시다. 힘들게 키워 투병 생활하는 이웃들에게 선물하신다는 아름다운 마음씨처럼 텃밭이 기름져서 무얼 키우던 잘 큰다.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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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가 어릴 적에는 고향 동구 앞에 솟대가 여러 수호신처럼 서 있었지요. 그곳을 지나다니는 마을 할머니와 마을 어머니들은 두 손을 합장하고 성심으로 솟대 앞에서 각자 소원을 빌었지요.

그 당시 난 너무 병약했는데, 돌아가신 어머니 말씀으로는 솟대 앞에서 빌고 빌어서 내 병이 완쾌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정말 병원이 너무 멀고 약도 구하기가 힘들었지요. 어머니가 믿는 것은 오직 솟대 앞에서 막내 아들을 살려달라고 빌고 비는 그 성심 하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를 살린 것은 '솟대'입니다.

아니 어머니의 믿음이 나를 살린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네 어머니들은 나무 하나 돌멩이 하나 흙 한줌에도 신이 있다고, 그것을 굳게 믿는 대자연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고, 뒤늦게 깨닫습니다. 모두들 미신이라고 함부로 여긴 우리네 신앙은 바로 자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농부의 아침에서 시작된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농부의 아침에서 시작된다.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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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김씨 할아버지 텃밭 이웃에서 텃밭을 가꾸시는 아주머니도 한마디 거드십니다.

"진짜 김씨 할배는솜씨도 좋지만 부지런해서 내가 많이 배웁니더. 세상에 나무 막대기 하나도 저 할배 손만 닿으면 예술인기라. 그라고 요즘같이 삭막한 세상에 채소를 땀 흘려 키워,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김씨 할배보면 마음이 저 바다보다 넓은 기라...."

아주머니는 김씨 할아버지의 칭찬을 늘어 놓으십니다.

작은 땅이지만 알뜰 살뜰 내 밭을 가꾸는 게 삶이고 취미
▲ 바닷가 어촌마을에는 땅이 귀해요. 작은 땅이지만 알뜰 살뜰 내 밭을 가꾸는 게 삶이고 취미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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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자랑스럽다
▲ 할아버지의 솟대 솜씨 너무 자랑스럽다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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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는 풍어와 풍년 등 마을의 수호와 안녕을 상징하는 우리네 풍습의 신앙의 상징. 김씨 할아버지의 솟대 솜씨로 갑자기 동네 분위기는 동화 같습니다. 여명 속에 하늘을 향해 비상의 자세를 취하는 솟대 위 나뭇가지, 막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갈 듯 합니다.

내 남은 삶도 저렇게 자연처럼 아름답게 살아 갈 수 있길 솟대 앞에 고개 숙여 빌어 봅니다.


태그:#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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