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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길거리에서도 10cm 이상 되는 구두를 신고 '또깍또깍' 자신감 있게 발을 내딛는 여성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힐을 신고 다니는 걸까.
 요즘 길거리에서도 10cm 이상 되는 구두를 신고 '또깍또깍' 자신감 있게 발을 내딛는 여성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힐을 신고 다니는 걸까.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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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불안 하다 싶더니, 사달이 났다. 지난 시즌, 프라다 쇼에서 생긴 일이다. 무려 17cm의 하이힐을 신은 모델 2명이 런웨이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난 것. 이 일로 이 모델은 무릎 수술이 불가피해 다음 시즌 쇼에 서지 못할 거라는 보도를 봤다. 세상에 17cm라니.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높은 굽의 하이힐, 비단 패션쇼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요즘 길거리에서도 10cm 이상 되는 구두를 신고 '또깍또깍' 자신감 있게 발을 내딛는 여성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힐을 신고 다니는 걸까.

1960년대 복고 분위기 하이힐 유행

고객에게 신발을 신겨주는 가게 주인.
 고객에게 신발을 신겨주는 가게 주인.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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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 바뀌신 분들도 안심하고 들어오세요. 모른 척해 드립니다."

두세 사람만 들어서도 꽉 차는 3평 남짓한 비좁은 부천역 지하상가 한 가게에 들어가 본다. 입구에 붙어 있는 문구가 곰살맞아 '피식'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정말로 남자친구 바뀐 여자 분이 오면 모른 척하나"라고 묻자 판매원 양윤정(27)씨가 웃으며 말한다.

"그럼요~ 당연하죠. 한번은 여자친구와 함께 온 남자친구가 제게 가까이 다가와 귀엣말로 '얘 다른 남자친구랑 같이 온 적 없어요?'라며 물어서 웃었던 적도 있어요."

- 올 봄 유행하는 트렌드는 뭔가요? '킬힐'이라고 부르는 하이힐을 찾는 사람도 많나요?
"올 봄에는 앞뒤가 막혀있는 펌프스 대신 앞 코 부분이 트여있는 오픈 구두가 유행이에요. 땅바닥에 '착' 달라붙는 듯한 플랫 스타일이나 7~9cm 높이의 다소 클래식한 무드를 풍기는 두툼한 하이힐도 예년에 비해서 많이 찾는 편이죠. 발뒤꿈치 쪽은 물론 구두 앞에도 굽을 달아 1960년대 복고 분위기를 풍기는 스타일로 경쾌한 느낌을 주는 12cm 정도의 높은 하이힐도 있어요."

"하이힐은 자존심... 자신감 생겨요"

아이힐을 신고 나타난 삼총사
 아이힐을 신고 나타난 삼총사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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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시끌벅적 3~4명의 학생들이 들어온다. 하이힐 마니아라는 삼총사,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한애란(23), 오하영(22), 박예슬(23) 양이 신발 AS도 받을 겸, 예쁜 신발도 봄 겸 들렀단다. 약속이나 한 듯 모두 하이힐을 신고 있다.

- 키도 커 보이는데 하이힐을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하이힐은 제 자존심이거든요. 굽이 낮은 신발을 신으면 자꾸만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 하이힐만 찾게 되요. 매사에 자신감도 생기고 하이힐 덕분에 키가 커지는 기분이고, 또 날씬해 보이잖아요."

- 하이힐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대부분 한 번쯤은 하는 거죠, 뭐. 하수구 구멍에 굽이 끼어 빠졌던 거? 창피했지만 뻔뻔함으로 버텼죠."
"저는 발이 삐끗해서 깁스를 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하이힐을 포기할 순 없어요. 그런데 남자친구는 가끔 싫어하기도 해요. 제가 하이힐을 신으면 남자친구 키가 작아 보여 자존심상한다다 뭐라나. 호호호"

곁에 있던 하영이 학생도 거든다. 젊은이답게 발랄하다.

하이힐을 좋아한다는 이진주(27)씨가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하이힐을 신어보고 싶은 마음에 가게에 들렀다. 언뜻 보기에도 12cm 정도 되는 그야말로 '킬힐(kill hill)'이다. 평소에 낮은 단화나 운동화만 신던 나 같은 아줌마는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하이힐을 즐겨 신다보니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급히 뛰어가다 높은 굽이 부러져 쩔쩔맸던 적도 있어요."

"10번 신어 보고 그냥 가도 어쩔 수 없지요"

00백화점 구두매장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정용우(27)씨, 친절과 미소가 우선이란다.
 00백화점 구두매장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정용우(27)씨, 친절과 미소가 우선이란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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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 보이기 위한 킬힐 마니아들의 피나는 노력이 가상하다. 내친김에 고가의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백화점 구두매장에도 들러봤다. 역시 이곳도 알록달록 화려한 색상과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치장을 한 '하이힐'이 대세다.

저렴한 가격대의 지하상가는 대부분의 고객이 학생들인 반면 이곳은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이나 중장년 여성들이 주고객이다. 4년째 신발매장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정용우(27)씨. 신발 하나 구입하려고 10여 켤레 넘게 이것저것 신어보는 고객에게도 깍듯하다.

- 요즘 고객들은 어느 정도의 굽을 선호하나요?
"연령층마다 다양하죠. 가령 20대는 유행이라 그런지 킬힐을 많이 찾는 거 같아요. 하지만 8cm 이상의 굽은 가급적 권하지 않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몸에 무리한 하이힐은 엄지발가락 쪽에 변형이 생기는 '무지외반증'에 걸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높은 힐(킬힐)을 찾는 분에게는 플랫폼이 추가되어 있는 걸 권합니다. 30대 경우는 6~7cm 정도의 굽을,  40대 경우 4~5cm 정도 단화나 모카신 같은 디자인을 권하죠. 50대는 우선 편한 디자인을 선호하는지라, 6cm 이상을 찾는 분은 드물어요."

- 킬힐이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여자친구나, 와이프 등이 사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킬힐은… 이름 그대로 사람 죽이는 굽 높이죠.^^;; ㅎㅎㅎ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 다른데, 원하는 사람에게는 권하지만, 웬만해서 제 주변인에겐 그다지 권할 만한 신발은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하이힐은 압력밥솥의 4배가 가는 압력을 발에 가하기 때문에 무지외반증이나 척추디스크 등에 노출되기 십상이거든요. 의상과 어울리거나 키가 커 보이고 싶은 욕망은 이해하지만 웬만하면 말리고 싶네요!"

- 근데, 남자들도 키높이 구두를 찾나요?
"상당히 많지요. 간혹 저처럼 키가 작아 콤플렉스가 있는 분, 결혼식 때 신부보다 키가 커보이려고 맞추는 경우, 바지 길이에 맞춰 주문하는 고객이 예년보다 상당히 많아졌지요. 요즘 남자들의 키높이 구두나 부츠 등은 요즘의 대세, 트렌드라고 할 정도니까요. 저는 허리가 좋지 않아 신지 못하지만요."

- 황당 여자 고객들이 있었다면? 예를 들면, 애인보다 키커 보이고 싶은 여자 손님이 있었다거나….
"자기 애인보다 키가 커 보이고 싶은 여자는 거의 못 봤어요. 여자 고객이 가끔 남성구두(스니커즈)가 예쁘다고 사이즈를 주문해서 신는 경우는 간혹 있습니다. 남성 스니커즈가 색상이나 디자인이 예쁘게 나온 경우가 있거든요. 그 외에도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 많지만 저의 신변을 위해 노코멘트…."

- 구두 파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고객이나 판매하다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당연 단골고객이겠지요. 그중에서도 아무 불평 없이 빠른 시간에 편하게 사가는 고객이지요. 하하. 하지만 많이 사는 것 이상으로 가장 좋은 고객은, 판매 직원에게도 인간적인 예우를 갖춰주는 고객이 가장 반가운 고객이랍니다. 신발을 신겨주려고 하면, 가끔 고객 중에 발 냄새가 난다며 혼자 신겠다고 거부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맙죠."

- 정말, 얼굴만 봐도 구두 살 사람, 안 살 사람 구분이 가요?
"100%는 아니더라도 70~80% 정도는 알 수 있어요. 하지만 구경만 하고 가는 고객이라도 허투루 대할 수는 없죠. 다음에 다시 찾아오게 해야하니까요."

올 봄 킬힐을 신고 거리를 당당하게 활보할 그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이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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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숙


태그:#하이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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