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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단 "신대법관 재판개입 소지"

 

16일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촛불재판 개입' 진상조사 결과 발표로 '사법부를 뒤흔든 20일' 전반전이 끝났다.

 

지난 2월 24일 MBC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의혹은 20일 동안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격한 논쟁을 불러왔다. 한쪽에서는 '좌파 판사들의 사법부 흔들기'를 주장했고, 반대편에서는 '헌법상 보장된 재판 독립 훼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신 대법관의 전화와 이메일을 "재판 개입 소지가 있다고 본다"고 결론 내림에 따라 큰 논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남은 후반전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된 신영철 대법관의 거취가 결정돼야 끝날 것으로 보인다.

 

전반전은 끝났지만, 대법원의 조사결과를 놓고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 대법원의 결정을 수용하고, 공직자윤리위 결정을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진보 성향의 정당과 시민단체는 신 대법관의 '사퇴'나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의 결정이 옳은지에 대한 평가는 일단 유보하자. 다만 대법원이 사회적 의혹에 대해 신속히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국민의 '사법 불신'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점은 평가할 만 하다. 또 사실상 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을 인정함으로써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낸 사법부의 용기도 칭찬받을 구석이 있다.

 

이번 사건 진상규명에서 정작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사법부가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바깥에서는 끊임없는 '음모론'이 퍼졌다. "좌파 판사들이 조직적으로 사법부를 흔들고 있다"는 게 음모론의 핵심이었고, 그 진원지는 보수언론이었다.

 

보수언론-여당 "좌파 판사들의 사법부 파괴공작"

 

<조선일보>는 지난 6일 사설(사법부 비판을 넘어선 조직적 사법부 공격에 대해)을 통해 "이 사건은 일부 판사들이 좌파 신문과 TV에 이 이메일을 제공해 폭로, 알려지게 됐다"면서 "일부 신문과 TV들은 얼마 전부터 신 대법관을 향해 파상적인 폭로 공격을 퍼부어왔다"고 색깔을 덧씌운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 신문은 또 "지금 법원 내부에서 이런 성향이 짙은 일부 판사들에 의해 반년 전 일이 특정 성향 언론에 차례로 폭로되고 같은 성향의 재야 법조인들이 이를 토대로 법원 상층부를 조직적으로 공격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설 끝에는 "인민재판식 사법부 파괴공작"이라고까지 했다.

 

<조선일보>의 사설에서 영감을 얻은 듯 곧바로 여당이 가세했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지난 9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정치지향적이고 권력지향적인 법관들의 정권교체에 대한 반발에 그 뿌리가 있다"며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일부 법관들이 사법부 흔들기를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도 다음날인 10일 "지난 10년 진보정권 아래 사법부에서는 과연 국민을 위해서 재판을 해왔고, 또 사법부 내 진보 좌파 성향의 분들이 없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 우익단체 뉴라이트전국연합도 때맞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11일 논평에서 "진보좌파의 교묘한 공격에 대한민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며 "진보좌파 판사들의 누워서 침뱉기가 법원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과거 좌파정권과 코드를 맞춘 '좌파 판사들'이 사법부를 흔들고 있다는 얘기다.

 

 

대법원장-진상조사단장도 좌파인가

 

하지만, 16일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신 대법관의 행위가 재판 개입 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놓자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입장은 머쓱해졌다. 대법원 내부 인사들로만 채워져 "공정한 조사가 안 될 것"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던 진상조사단이 신 대법관의 월권 행위를 인정하면서 할 말을 잃게 됐다.

 

사실 '색깔론'을 내세운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주장이 힘을 얻으려면 이쯤에서 또 한번 일관된 주장이 나와야 한다. 이를테면 '알고보니 이용훈 대법원장이나 김용담 법원행정처장도 좌파'라는 주장이다. 하다 못해 '대법원마저 좌파 판사들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대법원 진상조사 결과 발표 이후 이들의 '색깔론'은 쑥 들어갔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16일 오후 논평을 통해 "조사결과는 일단락 됐다"면서 "더 이상의 정치적인 공세는 여기서 멈춰서야 한다"고 밝혔다. '색깔론'으로 정치공세를 펴던 한나라당의 이전 입장을 반성하는 말 한마디 없었다. 사법부를 흔든 것은 '좌파 판사들'이 아니고, 자신들의 '색깔론'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나마 한나라당보다 <조선일보>가 일관성은 있어 보인다. <조선일보>는 17일 사설에서 "국민은 이번 파동을 통해 대한민국 법원이 횡적으론 이념의 좌우로, 종적으론 세대간 갈등으로 크게 찢겨 있고, 사법부 안에 세계 어느 나라 사법부에도 없는 사조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고 썼다. 조금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이념적으로 왼쪽에 서 있는 '좌파 판사'가 법원 내에 있고 이번 '사법 대란'도 이 같은 배경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일보> 등은 대법관 한 사람이 '재판의 독립'을 훼손해 사법 불신을 가중시킨 이번 사태에 대해 보수 내부에도 자성의 목소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번 일은 법원장이 법과 재판에 대해 부당한 간섭을 한 것으로 봐야지, 지나치게 이념적으로 이렇게 보는 것은 좀 타당하지 않다."

 

보수논객으로 통하는 이상돈 중앙대 법대교수의 말이다. 


태그:#신영철, #촛불재판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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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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