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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노동청에 살기 위해서 찾아왔는데, 이럴 수가 있나!"

"너무 억울하다. 우린 그동안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

 

16일 오후 5시 20분쯤, 수원시 율전동 경인지방노동청 수원지청 3층 지청장실 안팎은 노란색 점퍼를 입은 여성들의 절규와 눈물로 뒤범벅됐다. 그러나 이들의 절규는 공권력의 거대한 물리력 앞에서 맥없이 사그라졌다.

 

이날 오전부터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대책을 세워달라"며 수원지청장실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던 용인시 청석동 '88컨트리클럽'(이하 88CC) 경기보조원 노동조합 김은숙 위원장 등 여성조합원 15명은 결국 경찰에 의해 모두 강제로 연행됐다.

 

3층에서 1층으로 계단을 통해 끌려 내려간 조합원들은 노동청 후문에 대기하고 있던 대형 경찰버스 2대에 실려 사라졌다. 상급단체인 전국여성노동조합 소속 다른 노조원들이 달려와 막아섰지만, 이들 역시 전경들의 '인의 장막'에 갇히고 말았다.  

 

수원지청장과 면담 결과 불만 오전10시 20분 연좌 농성 돌입

 

대부분 30~40대인 노조원들은 수원중부경찰서로 연행돼 업무방해 및 집시법 위반 등 혐의로 조사를 받은 뒤 이날 밤늦게 풀려났다. 노조원들이 지청장실 부속실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간 것은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이들의 농성은 고장수 지청장과 면담결과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됐다.

 

노조원들은 농성에 앞서 고 지청장과 만나 "회사 측이 노조를 해체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58명의 조합원을 대량 해고하거나 일을 주지 않고, 폭력까지 행사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일삼고 있다"면서 "노동청이 나서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고 지청장은 "현행 근로기준법상 골프장 경기보조원은 근로자로 인정이 안 되기 때문에 노동청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면서 "조만간 노사협상을 중재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노동청 관계자들이 전했다. 

 

이에 노조원들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노동청이라고 믿고 찾아왔으니, 책임 있는  대책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고, 고 지청장은 "당장 대책을 내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역정을 낸 뒤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 차이로 대화 분위기가 냉각되면서 여성조합원들은  오전10시 20분부터 지청장 부속실에서 연좌 농성에 돌입했다. 이후 오전 11시쯤 전경과 정·사복 경찰 등 200여명이 청사 안팎으로 투입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날 농성현장을 찾은 박남희 전국여성노조 위원장은 "우리 조합원들은 지금 생계문제 등 극한 상황에 처해있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면서 "조합원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좀 더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노동청 측에 사정했다.

 

경찰 300여명 투입, 해산 종용하다 "업무방해" 강제 연행 

 

그러나 노동청과 경찰은 "불법 점거농성은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며 해산을 종용했고, 노조원들이 농성을 풀지 않자 경찰은 오후 5시 20분쯤 강제 연행 작전에 나섰다. 경찰에 강제로 끌려나온 일부 농성자들은 "우린 살기 위해서 왔다"면서 울부짖었다.

 

경찰은 노조원들이 여성들인 점을 고려해 여경 30여명과 전경 20여명을 체포조로 투입했다. 여경과 전경 7~8명이 노조원 1명씩 맡아 사지를 들거나 담요로 신체를 감싸 제압하는 방법으로 강제 연행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조합원들은 경찰의 강제 연행에 거칠게 항의하거나 실신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일부 노동청 공무원들은 "자식 같은 사람들한테 저렇게 끌려가다니... 참, 보기가 그렇다"라며 안타까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은 농성자 연행 작전에 앞서 노동청 청사 앞 광장에서 집회 중이던 노조원 20여명의 저항을 막기 위해 경찰특공대 100여명을 투입해 집회장을 에워싸고 고립시켰다. 청사 안팎의 노조원들을 철저히 분리해 작전을 펼쳤다. 상황은 오후 5시 50분쯤 끝났다.

 

노동청 관계자는 "지청장이 노사협상을 중재하겠다고 밝혔지만, 농성자들은 중재 일정을 잡아달라고 요구했다"면서 "우리로서는 일정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고, 농성으로 인해 업무에 큰 차질이 빚어져 경찰에 농성자 강제 연행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노조원 15명이 모두 강제 연행된 뒤 청사 밖에서 경찰특공대에 고립됐던 20여명의 조합원들은 원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경찰에게 집회공간을 열어달라고 요구한 뒤 마무리 집회를 열며 울분을 삭였다.

 

이 자리에서 박남희 전국여성노조 위원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우리 조합원들은 살기 위해 노동청을 찾아왔는데, 노동청은 농성 1시간도 안 돼 경찰 투입을 요청하고 결국 조합원들이 강제로 끌려갔다"고 목청을 높였다.

 

박 위원장은 이어 목이메인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뒤 "우리 더 이상 울지 말자"면서 "끝까지 투쟁해 88CC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세상에 알리자"고 강조했다. 노조원들은 정리 집회 후 해산했다. 이들은 17일 낮 수원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국가보훈처 위탁운영 88CC, 노사갈등 원인 "해고와 폭력"

 

그렇다면 88CC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30~40대 여성노조원들이 노동청을 찾아와 '벼랑 끝 선택'을 해야 했을까. 노조 측에 따르면 국가보훈처가 88관광개발(주)에 위탁 운영하는 88CC의 노사 갈등의 원인은 대량 해고와 폭력사건으로 압축된다.

 

노조 측은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조합원 58명이 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노조 간부 3명을 포함해 4명이 제명조치됐고, 54명이 출장유보 조치를 당했다는 것이다. 출장유보는 경기보조원인 조합원들에게 일을 주지 않아 소득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해고조치나 마찬가지라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노조 측은 "이는 지난해 정권이 바뀌자 6월에 회사 임원들이 모두 교체된 뒤 노조를 해체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일부 현장관리자는 부임 이후 '이명박 정권이라 너희들 싸워도 힘들다'는 등 노조해체를 암시했다"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노조탄압이 노골화됐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해 9월 고객이 현장 관리자의 무례함에 대해 사장에게 항의한 사건이 발생하자 그 책임을 경기보조원에게 돌려 무기한 출장정지 시킨데 이어 국가보훈처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제명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지난해 8월에는 골프카를 움직이는 리모컨을 회수하면서 골프카 사고 때 어떠한 조치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강요했으며, 7월에는 경기보조원 수칙상 경고에 해당하는 사안에 대해 한 달간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88CC 노사문제는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도 야당 국회의원들에 의해 지적을 받았다. 특히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노조가 불법"이라는 홍민 88관광개발(주) 사장에게 대법원 판례를 들어가며 합법임을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악화되고 있음이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됐다. 여기엔 법적 문제점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은 노조에 가입돼 있지만 현행법상으로는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사업자 형태의 '특수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해 들어서는 폭력사건까지 발생했다. 지난 1월 30일에는 현장 관리자가 노조 간부 2명에게 폭력을 행사해 검찰에서 약식기소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장관리자에 폭행 당해 노조간부 7명 전치 3~2주 부상"

 

지난달 28일에는 노조 간부들이 현장관리자를 찾아가 조합원에 대한 차별적인 근무배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순번에 의한 배치를 요구하자 현장관리자가 이들을 "나가라"며 밀쳐내고 멱살을 잡아끌면서 폭력사태가 빚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측은 "이 과정에서 노조 간부 2명이 각각 전치 3주, 다른 5명은 각각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으며 비디오 카메라 1대가 파손되고, 디지털 카메라 등을 빼앗겼다"면서 "아직도 이를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난해 8월부터 정해진 순번을 무시하고 노조원과 비노조원을 차별해 근무 배치를 하는 일이 잦아지더니, 올해 들어 지난 2월부터 더욱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 때문에 조합원들은 수입이 감소하고, 예측할 수 없는 시간동안 무작정 대기하는 상황이 계속돼 왔다"면서 "이는 생존권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88CC 노조는 1999년 결성된 뒤 3차례나 단체협약을 경신하며 합법적인 조합 활동을 해왔으나 정권교체 뒤 회사 임원들이 교체되면서 노조를 해체시키려 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선전전을 강화하는 등 더욱 강도 높게 투쟁할 각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88CC 회사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16일 오후부터 17일 오전 9시 30분 현재까지 경영관리본부 등에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또 경기보조원들의 현장관리자 역시 사무실과 휴대전화로 수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아, 회사 측의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태그:#수원노동청 , #경기보조원, #88컨트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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