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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 병아리들을 품을 씨암탉들을 이리 잡아버렸으니...
 올 봄에 병아리들을 품을 씨암탉들을 이리 잡아버렸으니...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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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솔솔 내리는 아침이다. 창문 너머 보이는 들판에 안개가 옅게 깔려 있다. 안개 저 너머로 마리산이 슬쩍 보인다. 오늘도 날이 좋을려나 보다.

그가 밖에서 주방 창문을 톡톡 두드린다. 음식물 쓰레기가 있으면 달라는 신호다. 식구래야 우리 둘 뿐, 때문에 나오는 쓰레기도 얼마 안 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담은 바가지를 넘겨주니 그가 닭장 쪽으로 들고 간다.

매일 아침 그는 개들에게 사료와 마실 물을 떠다 주고 닭장에 음식물 쓰레기를 뿌려준다. 일 년 삼백 예순 날을 한결같이 그리한다. 날이 추워도 비가 내려도 아침마다 동물들 챙겨주는 일을 거르는 일이 없다.

토종닭 키우려면 음식물 쓰레기 치우기부터

그는 닭 키우는 걸 좋아한다. 그가 닭 키우는 걸 좋아하는 까닭은 유정란을 먹기 위함도 아니고 토종닭 고기 맛을 보기 위함도 아니다. 그가 닭을 키우는 오직 하나의 목적은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들을 보기 위함이다. 그거 하나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 치우는 거도 마다않고 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키우는 닭은 순수 토종닭이다. 시장에서 병아리들을 사와서 집에서 키운다고 다들 토종닭이라고 말을 하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그건 토종닭이 아니다. 양계장에서 부화한 병아리들은 다 커서 어른닭이 되어도 알을 품을 줄 모른다. 알은 잘 낳지만 그걸 품어서 병아리를 낼 줄 모른다.

유정란을 먹기 위해서 닭을 키운다면 알 잘 낳는 양계닭을 사다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알을 까고 나오는 병아리들을 보고 싶어서 닭을 키운다면 이런 양계닭은 키워봐야 재미가 없다. 알 잘 낳고 살 잘 쪄서 먹거리로는 좋을지 몰라도 알을 품을 줄 모르니 그런 쪽으로는 키우는 재미가 없다.

반면 순수 토종닭은 덩치도 작고 자라는 속도도 느리다. 또 날이 춥거나 그러면 알도 잘 안 낳는다. 잡아서 삼계탕이라도 끓일 양이면 고기가 질겨서 무슨 닭고기가 이러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토종닭은 알을 품어서 병아리를 깝니다. 보통 한 번에 품는 알은 15개 내외입니다.
 토종닭은 알을 품어서 병아리를 깝니다. 보통 한 번에 품는 알은 15개 내외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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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많이 낳지않고 살코기 또한 많지 않지만 순수 토종닭은 알을 잘 품는다. 봄이 오는 기척이 들리면 벌써 알 품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병아리들을 까서 데리고 다니며 훈련을 시킨다. 어미닭과 병아리들이 뿅뿅뿅뿅 다니는 봄날의 마당을 보면 마치 먼 옛날의 시골 집을 보는 듯 하다.

남편은 그걸 보고 싶어서 닭을 키운다. 병아리들이 어미를 따라 다니는 봄날의 마당과 다 자란 닭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부리로 땅을 헤집는 시골 집 풍경을 그리면서 닭을 키운다.

한 바탕 회오리 바람이 몰아치고

그런데 남편의 이런 꿈은 며칠 전 사건으로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알을 모아서 부화시키고 닭들이 판을 치는 세상을 꿈꾸던 남편에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지난 주 수요일이었다. 전화가 왔기에 받아보니 옆집 아줌마였다.

"영준아, 개 풀려서 닭 다 잡더라! 빨리 와서 개 묶어라."

개 끈이 풀려서 닭을 잡고 있단다. 안 봐도 그림이 그려졌다. 개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닭들을 쫒는 모습이 그려졌다.

아무리 튼튼한 끈으로 개를 묶어놔도 언젠가는 줄이 느슨하게 풀리거나 아니면 사슬이 끊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이라도 집에 있으면 얼른 다시 개를 묶어주면 되는데 집에 사람이 없을 때는 그야말로 개판이 되는 거다.

닭 쫒던 개 지붕만 쳐다본다는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말이고 현실 속에서는 쫒고 쫒기면서 닭털이 난무하는 사냥터가 된다. 묶어서 키우는 개들은 끈이 풀리면 제어를 하기가 힘들다.

닭과 개는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닭도 개한테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배우지 못했고 개 역시 닭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므로 둘은 타고난 본성대로 움직일 뿐이다.

봄 날의 한 때, 보기 좋습니다.
 봄 날의 한 때, 보기 좋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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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집에 돌아와보니 마당이 조용하다. 평소 같으면 마당이나 텃밭을 돌아다니며 부리로 땅을 쪼는 닭들을 볼 수 있는데 한 마리도 안 보였다. 대신 삽살개 갑비가 주인이 오자 반갑다며 온 몸으로 달려온다.

이왕 당한 일이니 닭들이 많이 죽지 않았기만을 바라면서 찾아보았다. 잔디밭 여기 저기에 닭털이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옆구리를 물리거나 엉덩이를 물려서 죽어있는 닭들이 보인다. 찾아보니 세 마리나 죽어 있었다. 모두 암탉이었다. 올 봄에 알을 품을 씨암탉들을 거의 다 물어죽인 거다.

저녁 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개가 풀려서 닭사냥을 했다는 말을 했더니 입은 옷 그대로 닭장으로 갔다. 손전등을 들고 한참이나 둘러보더니 장닭이 한 마리도 안 보인다고 그랬다.
암탉도 한 마리 안 보인다며 닭들이 놀라서 산으로 도망갔을 수도 있으니 내일 날 밝으면 찾아보라 그런다.

좋게 생각하면 문제 될 게 없다

전 같았으면 펄펄 뛰면서 닭 죽은 걸 아까워 했을 남편이 이제는 도가 통했는지 별 말을 안 한다. 한 두 번 당한 일이 아니라서 마음을 비웠는지, 그러면 그러려니 하며 별 내색을 안 한다. 다만 병아리 깔 일을 잠깐 걱정하긴 했다. 수탉이 한 마리도 안 남고 다 죽어버렸으니 유정란을 어디서 얻을 것이며 남은 닭 서너 마리로 어떻게 토종닭 세상을 꿈꾸나 하며 한심해 했다.

그 날 우리 개가 사냥한 닭은 암탉 4마리에 수탉이 2 마리나 되었다. 모두 합해 아홉 마리 있었는데 그 중 여섯 마리를 잡아버렸다. 삽살개 갑비는 닭을 물어 뜯어 놓고는 잘했는 양 의기양양해서 주인을 쳐다본다. 저걸 그냥 콱 걷어차 주고 싶었지만 본능이 시키는대로 움직인 개가 무슨 잘못이 있겠나 싶어 참아줬다.

한꺼번에 닭이 여섯 마리나 죽었으니 그거 다듬는 거도 일이었다. 물을 데워서 닭을 슬쩍 뜨거운 물에 튀긴 다음에 털을 뽑아야 잘 뽑힌다. 너무 뜨거운 물로 튀겨도 안 된다. 그러면 살이 뜯겨져 나온다. 또 덜 튀기면 털이 안 뽑힌다. 그러니 적정한 온도의 물로 적당하게 튀겨야 털이 잘 뽑힌다.

닭을 풀어놓고 키우면 아무데나 닭똥을 찍찍 갈기기 때문에 귀찮을 때도 있습니다.
 닭을 풀어놓고 키우면 아무데나 닭똥을 찍찍 갈기기 때문에 귀찮을 때도 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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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잡자말자 피를 뽑아야 고기 맛이 있는데 개가 잡아죽인 닭은 피를 뽑지 않았으니 그냥 요리를 하면 맛이 없다. 비릿한 냄새가 나면서 영 맛이 없다. 그러니 속을 가르고 살을 분리할 때 엉켜있는 피를 깨끗하게 다 씻어내야 한다. 검게 엉켜있는 피를 다 씻어내야 고기맛이 좋다.

속을 갈라보니 알집이 다 잡혀 있다. 이 알집들이 계속 자라면서 계란으로 나오는 건데, 아깝다. 어떤 놈은 개사료를 욕심껏 훔쳐 먹었는지 모이집이 볼록하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닭 역시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몰랐나 보다.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남편은 역시 속이 쓰리긴 쓰린가 보다. 죽은 닭을 쳐다도 안 본다. 그러니 여섯 마리나 되는 닭을 나 혼자서 용을 쓰면서 털 뽑고 속 가르고 다 했다. 닭 비린내를 하도 맡아서 닭털 뽑기가 진력이 났다.

닭을 키우기는 키우지만 우리 손으로 닭을 잡아본 적은 거의 없다. 딸과 아들이 수험생으로 몇 년씩이나 있다보니 살생을 안 하려고 닭을 더 안 잡았다. 그래서 닭고기 맛을 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

좋게 생각하면 또 좋은 거다. 주인이 못하는 걸 우리 개가 대신 해준 거라 생각하자. 덕분에 토종닭 고기 실컷 먹게 생겼다. 병아리야 또 어찌 되겠지. 토종닭 키우는 이웃 집에 가서 장닭 한 마리 빌려오고 계란도 좀 얻어오면 어떻게 되겠지.

그 집도 아쉬울 때 우리 집 닭 얻어가고 했는데 우리도 그 집 닭 얻어와서 또 명맥을 이어가면 되겠지. 그런 길이 있으니 남편도 덜 아쉬운지 아무 말도 안 한다. 몇 마리 안 남은 닭들에게 여전히 음식물 쓰레기 갖다주고 챙겨준다. 병아리떼 몰려다니는 따뜻한 봄날을 그리면서...


태그:#토종닭, #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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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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