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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한 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새 학년이 시작되고 보름동안은 1년 교육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는 때입니다.

 

새로 맡은 학년과 학급에 맞는 학년과 학급교육과정을 완성하고, 아이들이 앉을 자리 배치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교실의 교육환경을 갖추고 특활부서와 방과후 특기적성교육반을 정합니다. 1년 동안 학급에서 함께 할 교육방법을 정해서 약속하고, 모둠과 모둠장을 정하고, 학급 임원을 선출하기도 하고요, 교실에서 해야 할 일인일역, 당번 차례, 청소 구역, 우유 급식 당번, 급식 먹는 차례, 특기적성교육 시간, (농촌학교에서는)학교 버스 시간을 다 정하고, 다음 주부터는 드디어 제대로 갖춰진 환경에서 학교교육활동이 시작됩니다.

 

 아이들도 이 기간동안 작년과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나름 한 해 계획을 세우고 새 학년 다짐을 새롭게 하게 되지요. 

 

 

 학급 인원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름이 되면 담임 교사는 학급 아이들 이름이 입에 붙기 시작하고, 성품이 아주 조용해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몇몇 아이를 제외하고 반 아이들 이름도 거진 다 외우게 됩니다. 

 

 늘 시끌시끌한 초등학교 교실도 새 학년 초 보름동안은 그래도 조용한 편입니다. 새로 만난 담임교사와 아이들이 눈치를 재며 기 싸움을 하는 기간이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서로를 파악하고 진단합니다. 교육은 상대를 잘 알 때 제대로 이뤄져야하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가는 이 기간은 1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때이지요.

 

교사들 사이에서는 하는 말로 학년 초에 아이들을 잘 '잡아야' 1년을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심하게는 아이들을 '잡으려면' 3월 한 달 동안 아이들 앞에서 절대 웃지 말라고 '나쁜' 선배 교사가 '나쁜' 조언을 하는 일도 있지요. 이 말은 절대로 신참 교사들이 귀담아 들어선 안됩니다만.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았던 정든 선생님과 헤어지는 아쉬움과 슬픔이 잊혀지기도 전에 새 선생님을 만나 새 약속을 하고 새 교육방식에 적응하기는 아이들도 영 쉽지 않습니다. 그렇잖아도 3월은 난방이 안되는 데다가 날씨 변덕이 심해 건강이 나빠지기 쉬운데, 새로 바뀐 낯선 환경에서 하루 종일 불안과 초조, 긴장 속에 지내기 때문에 3월에 병이 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학기초 불안하고 초조해 하는 아이와 함께 새 담임과 적응해야 하는 학부모도 따라서  마음 고생이 심합니다. 교사들 역시 이즈음 몸살을 많이 앓게 됩니다.

 

이제 힘든 보름동안의 기간이 지나 아이들도 교사들도 불안한 마음과 긴장감이 풀어지기 시작하고 서로 믿음의 눈빛이 오가려 할 때, 경기도 교육청은 3월 17일자로 교사 전보를 단행했습니다.

 

 

경기도 교육청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보니, 이번 교사 전보에 기존 교사들과 함께 무려 400명이 신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는 보름동안 경기도 소속 초등학교에 교사 빈 자리가 400곳 생겼다는 말입니다. 초등교육의 특성으로 볼 때 교사가 이동이 된다는 얘기는 곧 담임이 바뀐다는 말입니다.

 

신규발령자가 400명이라 해서 경기도 소속 학교 400학급만 담임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교사 전보는 기존 교사들을 먼저 전보한 뒤 그 빈 자리에 다른 교사들을 채우고, 그러고도 남은 빈 자리를 400명의 신규 교사가 채우는 방식이라서 경기도 교육청 소속 초등학교에서 담임이 바뀌는 일은 어림잡아 신규발령자수보다 최소 배는 넘으리라 짐작합니다.

 

 3월 17일자 전보대상에는 우리 학교 6학년 담임교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년차 교사인 이 교사는 모두들 6학년 담임을 기피할 때 기꺼이 6학년 담임을 자원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니 지난 보름동안 6학년 아이들과 1년 동안 할 교육계획을 꼼꼼하게 세우고, 아이들에게 정성을 들여서 아이들과 벌써 친해졌습니다. 6학년 아이들도 그새 새로 만난 교사를 믿고 따르는 모습이 무척 흐뭇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담임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교사는 작년 신규로 연고지가 없는 우리 학교에 발령을 받아, 날마다 네 다섯 시간정도 걸려 출퇴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정기 인사 때 집 가까운 교육청으로 내신을 냈는데, 근무연수에 밀려 지난 3월 1일자로 집 가까운 교육청으로 발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아이들과 더 지내다가 내년에 집 가까운 곳으로 가야지 하면서 학교 힘든 업무를 맡고 아이들과 열심히 지내고 있었는데, 이번에 느닷없이 발령이 난 것입니다.

 

 원하던대로 집 가까이 가게 돼서 좋긴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고 합니다. 다른 학교로 가야할 날이 코 앞에 다가왔는데도 이 교사는 반 아이들이 실망할 일이 걱정되고,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발령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새로 옮겨가는 학교에서도 이미 먼저 담임 선생님과 한 약속이 있는 아이들의 담임을 새로 맡아 아이들을 새로 알고 새 약속을 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선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교육은 교육청이 시키는대로 3월 17일자로 발령을 내면, 그 날짜에 새 학교에 가서 첫 시간부터 교실에 들어가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수업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하는 것은 이미 초등교육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지난 담임과 한 약속과 교육방법을 하루아침에 지우고, 새로 맡은 담임과 새로운 약속을 하고 교육방법에 익숙해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담임이 새로 바뀌면 새 학년 처음에는 보름이면 익숙해질 것이 이제는 한 달이 더 걸리고, 그러다 결국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삐그덕거리다 1년 학급 운영을 망치는 일을 많이 봐왔습니다. 

 

 

 초등교육 현장에서 최악의 상황이 담임이 바뀌는 것이고, 그중 가장 최악의 상황은 3월 중순에 담임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기도 교육청은 왜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왜 모른 체하며 3월 중순에 대거 교사전보를 단행하는 것일까요? 왜 새 학년이 시작한지 보름이 넘어서야 400곳의 빈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일까요? 학교교육에 대한 모든 정보를 모아두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엄연히 가동되고 있고, 고성능 인터넷도 모두 깔려있고, 긴급업무연락이 얼마든지 가능한 이 시대에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그 수요를 미리 알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요?

 

 27년 전, 제가 초임교사로 발령을 받은 때가 3월 10일입니다. 3월 10일자로 신규발령을 받자마자 6학년 담임을 했는데, 그 때 가서보니 이미 정해져 있는 담임이 다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배정받은 교사가 없어서 아이들이 열흘 동안 수업도 안하고 놀고 있었습니다. 한 학년도 아니고 두 학년이 그렇게 놀고 있었습니다.

 

옆 학교는 거의 한 달 가까이 교사가 없어서 수업을 못하고 있었는데, 들리는 말로 너무 외진 곳이라 발령을 내면 교사가 그만 두고 또 내면 그만두고 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그 당시 흔했는데, 이 이야기는 컴퓨터도 인터넷도 교육정보행정정보시스템도 핸드폰도 없던 먼 옛날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세계에 자랑할 만한 첨단디지털정보시스템을 갖춘 이 시대에 경기도 교육청은 보름 앞 교사 수요조차 예측하지 못해서, 새 학년이 시작된 지 보름만에 새 학년의 희망을 품고 있는 수천의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들을 실망시키는 일을 앞장서서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경기도가 지역이 넓고 학생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고 이해하려 해도, 학교 규모와 학생수가 경기도와 비슷한 서울시교육청의 경우만 보더라도 3월 15일자 신규발령 교사 수는 14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은 제외하고 3월 중순에 담임이 바뀌는  일은 정말 피해야 합니다. 만약에 빈 자리가 생기게 되면 채우는 시기를 3월초 5일 이내로 하고, 그 뒤 빈 자리가 생길 때는 이미 담임을 맡은 교사를 뽑아다 채울 것이 아니라, 신규교사로 채워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교육현장에 혼란을 그나마 적게 가져올 수 있습니다.

 

듣자하니 이렇듯 교육현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경기도 교육청의 3월 중순 교사 전보로 인한 담임 교체는 올해뿐이 아니고 늘 해 온 일이었더군요. 이것은 현장교육은 모르고 탁상행정만 있는 무책임한 경기도 교육청이 초등교육과 아이들과 교사와 학부모를 싸잡아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서도

'경기도 교육청 모든 직원은 꿈과 신바람, 감동을 주는 희망경기 교육 실현으로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온 힘을 다 하겠습니다.'(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 '경기도 교육행정 서비스 헌장' 첫머리에서)

라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아이들의 기초학력 신장을 높이려면, 전국에 같은 문제지로 같은 날 일제고사를 보고, 그 결과로 기초미달자가 있는 반의 교사를 징계해서 될 일이 아니라, 교육과학부와 교육청이 교사와 아이와 학부모들이 학습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태그:#경기도교육청, #새학년새학기, #3월중순교사전보, #초등교육, #초등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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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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