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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는 표면적으로 후크(hook)송에 지배당하고 있다.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실제로 많은 가수들이 후렴구에 강한 중독성을 부여하는 후크송을 발표하여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고, 또 구가하고 있다. 그리고 혹자는 이러한 인스턴트형 음악이 대한민국의 음악계를 소품화시켜 결과적으로 깊이 있는 음악의 양산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글쎄, 과연 그럴까?

후크송 사멸하면, 대중음악 발전할까

원더걸스의 'Tell Me', 'No Body'는 후크송 논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중독성으로 대중에게 다가왔다.
 원더걸스의 'Tell Me', 'No Body'는 후크송 논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중독성으로 대중에게 다가왔다.
ⓒ JYP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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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송은 사실 최근에 생겨난 음악 사조가 아니다. 알다시피 많은 대중음악들은 필연적으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과거부터 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왔다. 기실 '후크'의 범위를 확장하자면, 순음악인 클래식에까지도 적용이 가능하다. 물론 장르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무리일지 몰라도, '대중의 기호에 맞춰진 음악'의 개념은 음악의 탄생과 함께 늘 있어온 존재다.

그러나 최근 이 후크송이 새삼스레 논란의 도마에 오른 이유는, 다름 아닌 '문화적 쏠림현상'의 우려 때문이다. 즉, 후크송의 대박은 또 다른 후크송의 재생산을 부추기고, 시장 전체가 거기에 몰입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한국은 언제나 트렌드가 하나였다'라는 말을 절감한다.

하지만 핀트가 잘못되었다. 후크송을 비난한다고 해서 대중음악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며,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인기가 사그라진다고 해서 실력 있는 인디밴드들이 대신 그 자리에서 부각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음악'을 빼앗아 가는가?

이승철의 '소녀시대', 달콤한 팝넘버인 'Kissing You'의 성공 이후에 그녀들이 들고온 곡은 중독한 강한 'Gee'였고, 그 파급력은 해외까지 유효했다.
▲ 강한 중독성의 음악으로 돌아온 '소녀시대' 이승철의 '소녀시대', 달콤한 팝넘버인 'Kissing You'의 성공 이후에 그녀들이 들고온 곡은 중독한 강한 'Gee'였고, 그 파급력은 해외까지 유효했다.
ⓒ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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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소녀시대의 'Gee'나, 원더걸스의 'NoBody'의 강력한 후렴구는 특화된 온라인 음원매체시장의 성장과 아울러 오프라인 CD시장의 사멸 그리고 음악의 수용 과정이 점차 간편화되고 감각화되고 있는 환경적 영향의 산물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대한민국 음악시장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특수한 예는 아니며, 팝시장은 꽤 오래전부터 이러한 움직임을 보여 왔다. 그리고 좀 비극적인 얘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메이저 음악시장에서 '음악'의 개념은 이제 '만들어진 상품'이란 개념으로 치환해도 좋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이 '상품'이란 개념을 마냥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자본시장에서 잘 만들어진 상품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품은 사실 국경과 동세대를 초월한다. 원더걸스의 음악이 해외 유명 연예 블로그에 소개되고,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괜히 몇 십만 히트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문화'로서 가치를 지니는 음악과, '상품'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음악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것이다. 물론 대중음악에서 이 두 가지의 개념을 완전히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MP3를 통해서 한 번 듣고 버려지거나 개인 컬러링에 길어야 한 달 정도 머무는 음악과 오랫동안 남아있을, 혹은 여러 번 들어야 그 깊이를 알 수 있는 음악은 분명 구분된다고 믿는다. 

상황이 이쯤 되면, 사실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참담하고 비참한 기분이 든다. 도대체 한국의 음악시장이 얼마나 협소하기에, 중독성이 강한 후크송이 차트를 석권하는 것이 이처럼 '논쟁거리'가 된다는 것인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앞서 말했듯, 한국대중음악의 협소성과 다양성 부재의 원인은 후크송 때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환언하면,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 때문에 지금의 한국대중음악이 고사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현재 마이너 시장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감각적인 후크송이 대세를 이루며, 이것이 논쟁이 되는 중심에 '수용자의 역할'이 빠져 있다는 것이 사실 가장 큰 문제다. 음악은 만드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상호교류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교류에 어떠한 오류가 발생했다면, 이것은 쌍방의 노력 없이는 풀 수 없다.

다시 말해 수용자, 즉 지금 음악을 듣고 있는 당신의 적극적인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과 관심은 당신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이번 '제6회 대중음악상' 수상자 면면을 살피며, 관심 있는 아티스트의 음반을 한 장 구매하는 것이면 족하다. 시장의 확대와 다양성의 시작은 원래 이렇게 단순한 것에서 출발하는 법이다. 혹시나 이것마저 '무리'라고 말한다면 대한민국 음악시장엔 미래가 없다. 이것은 단순히 CD시장의 사멸과는 다른 의미다.

소통의 오류, 결론은 '다양성'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음반으로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한 '언니네 이발관'. 그들의 음악은 또 다른 형태의 '후크송'이다.
▲ 제6회 대중음악 올해의 음반 수상자인 '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음반으로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한 '언니네 이발관'. 그들의 음악은 또 다른 형태의 '후크송'이다.
ⓒ 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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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음반 레이블은 JYP, SM, YG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이너적 라이선스 발매와 감각적인 모던 록 자생사운드를 자랑하는 파스텔뮤직, 헤비의 산실 도프엔터테인먼트와 GMC. 힙합을 좋아한다면 소울컴퍼니, 재즈를 좋아한다면 강앤뮤직의 라이선스와 오디오가이의 신보도 한 번 살펴보라.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라. 그 수많은 뮤지션들과 음악들, 공연들이 즐비하다. 최근 들어 이러한 상업적인 환경에 새로운 물결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가 넘쳐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인디와 메이저의 획일적인 선긋기는, 기실 서로 배타적인 시각만 키울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선긋기의 원인이 과도한 메이저시장의 상업주의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탄생된 것임을 감안하면, 인디씬을 위시한 수용자층의 주류와 어긋난 다양한 음악적 수용은 음악발전의 가장 큰 선행과제라 생각한다.

15초 후크송이 좋습니까? 그렇다면 15초보다 더 길고도 강력한 후크를 제공하는 음악을 한번 찾아서 들어보십시오.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음악이 지금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ttp://kells.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후크송, #대중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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