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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태랑초등학교 입학식입니다. <엄지뉴스 휴대폰 전송사진 #5505>
 서울 노원구 태랑초등학교 입학식입니다. <엄지뉴스 휴대폰 전송사진 #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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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 변동의 여파는 셌다. 물론 미리 각오는 했었다. 그러나 체감지수는 생각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지난 3월 2일 딸아이가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의 시간표는 대충 이랬다.

첫날 입학식은 10시 등교. 1시간가량 입학식을 하고 바로 하교. 둘째날부터 수업이 진행됐다. 오전 8시 반까지 등교 그리고 오전 11시 30분에 하교. 첫 주는 그렇게 보냈다.
둘째 주부터는 4교시까지 수업을 했다. 하교시간은 낮 12시 10분. 다행히 그 주부터 급식이 이루어져 딸아이가 급식을 마치고 실제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1시 정도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처음 한 달간은 유치원 다니는 제 동생보다도 더 일찍 돌아오게 된다. 처음 일주일(학교에 따라 한 달 후에 급식을 실시하는 곳도 있다)은 점심도 먹지 않고 돌아오기 때문에 누군가 항상 집에 있어야 했다.

비상, 비상...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가족은 딸아이의 입학을 앞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상이 걸린 것이다. 그리고 서로 스케줄을 긴밀히 조정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의 방과 후 시간이었다. 다행히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덕분에 시어머님께서 아이의 점심과 방과후를 돌보아주신다. 그리고 점심 이후의 오후시간은 내가 돌본다. 그리고 간식 먹이고 오후 3시경 피아노학원에 보낸다. 그러나 시어머님이나 내가 도저히 여의치 않을 때는 시아버님, 남편까지 총출동해야 했다.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것도 큰 일이다. 아직 딸아이는 학교와 집을 오가는 걸음이 서툴기 때문에 누군가 길잡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 어른 걸음으로 넉넉잡아 10분 정도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만 해도 이 정도 걷는 일은 예사였다.

그러나 요즘은 바로 아파트 단지 내에 학교가 있을 정도니 아이의 걸음으로는 조금 먼 거리다. 더군다나 요즘은 여자아이 키우기가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부모들은 아침마다 아이들을 학교까지 바래다줘야 하고 하교 때에도 미리 기다렸다가 아이와 함께 돌아와야 한다.

이쯤 되면 부모는 항시 집에서 '대기중' 모드가 될 수밖에 없다. 부모가 아니면 아이의 등하교와 하교 이후의 시간을 책임질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

릴레이, 허들게임 같은 딸아이의 '등하교' 미션

딸아이가 입학한 후 우리 가족은 처음 4인 1조가 되어 릴레이 경주를 펼치듯 딸아이의 등하교에 온 신경을 써야 했다. '딸아이'라는 바통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달리는 기분이었다. 행여 바통을 떨어뜨릴세라, 놓칠 세라 시간을 정확히 배분하여 스케줄을 조정했다.

만약 나와 남편만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어느 한쪽이 직장을 잠시 쉬든지, 그만두어야 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하다. 유치원 다닐 때는 '종일반'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초등학교는 여의치 않다.

물론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친구의 집에 놀러간다든지, 방과 후 수업을 한다든지, 학원을 제가 알아서 간다든지 등등 요령이 생길 수 있겠지만 초등학교 1학년 첫 한두 달은 학생이나 학부모나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처지다. 정말 '홍반장', '우렁각시', 하다못해 '지니'라도 부르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다.

그렇다면 다른 워킹맘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첫째 토요일, 처음으로 아이의 등굣길에 따라나섰다. 그동안은 남편이 아이와 함께 가주었다. 나는 둘째아이 유치원 등원 준비와 내 출근준비로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3월초,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은 입대를 앞둔 논산훈련소 풍경과 흡사하다. 우는 사람은 없지만 걱정과 우려, 대견함, 혼란스러움이 담긴 말소리와 당부로 학교 전체가 들썩들썩하다. 엄마, 아빠도 보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도 많다. 그만큼 워킹맘이 많다는 증거다.

논산훈련소 풍경과 흡사한 초등 1학년 교실 앞

태랑초 입학식 . <엄지뉴스 휴대폰 전송사진 #5505>
 태랑초 입학식 . <엄지뉴스 휴대폰 전송사진 #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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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학교에서 만난 워킹맘 Y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Y씨의 남편은 새벽에 나갔다 밤 늦게 돌아오는 직장인이라 아예 기대할 수 없단다.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어 이웃의 도움을 빌릴 수도 없다고 했다.

따라서 아이의 등하교와 방과 후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친정어머니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도 신세를 안 졌는데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또 다른 사례. K씨 역시 전형적인 워킹맘이었다. 아이의 방과 후를 맡아줄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회사를 휴직하는 것은 요즘 같은 불황에 '택도 없는 소리'였다. 할 수 없이 '공부방'에 맡기는 방법을 택했다.

한 달에 10여만 원 하는 이 공부방은 방과 후 아이를 직접 차로 데리고 가서 점심도 먹여주고 간식과 함께 숙제와 방과후 활동까지 맡아주는 원스톱 시스템(One stop System)으로 운영된다. '바이올린'이나 '과학활동' 같은 '옵션'이 추가되면 가격도 추가된다. 의지할 데 없는 워킹맘들에게는 한 줄기 고마운 손길이다. 다만 가격이 좀 비싸다는 흠이 있긴 하다.

전업주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직장주부들은 대개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의 손길을 빌리거나 아니면 평소 친한 이웃이나, 아는 언니, 친구 엄마들에게 맡기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일시적인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또는 K씨처럼 공부방 시스템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만만찮은 비용과 아이의 고단함을 생각하면 거의 울며 겨자 먹기에 가깝기 때문에 마음이 개운한 것만도 아니다.

워킹맘을 위한 좀 더 시원한 해결책이 나올 수는 없을까. 의지할 데 없는 워킹맘에게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가 되는 일은 두렵기까지 하다. 날마다 발을 동동거려야 하고 마음 졸여야 한다. 나라에서는 출산을 권장하지만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아이 낳기가 두려운 것이다.

고립무원의 '워킹맘'... 속 시원한 해결책 없나요?

초보 학부모가 된 직장여성에게는 휴가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달 동안만이라도 탄력성 있는 근무 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 아이들을 무료로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방과 후 시스템을 학교나 단체에서도 좀 더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요즘은 주로 아파트 단위로 거주하니까 아파트 자치단체에서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아이의 등하교를 맡아줄 도우미를 채용해서 아이의 등하교를 맡아준다든지, 아파트 단지 내에 질 좋은 공부방을 마련하고 방과 후를 맡아주면 워킹맘들이 한결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요즘 주민자치단체나 문화의집에서도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아이의 끼니와 간식을 챙겨주는 것만이 아니다. 학교생활에는 잘 적응하는지, 준비물은 무엇인지, 어려운 점은 없는지…. 아이의 마음을 읽는 것이 초보 학부모의 막중한 임무다.

그러나 이것은 학부모에게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학기초가 되면 기본적인 조건마저 지원이 안 돼 전쟁을 치르는 워킹맘들이 허다하다. 날마다 누가 맡아줄지 보호자를 찾아야 하는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는 나오지 않는 여유다.

워킹맘들이 여유 있게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세상. 우리 딸아이 대(代)에서는 가능할 수 있을까.    


태그:#초등학교1학년,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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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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