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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언론계, 노동계, 시민단체, 법조계 등 282개 단체 2721명이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교육정책 추진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교육정책 전면 전환과 대안 마련을 위한 2009년 교육선언을 채택했다.

 

12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09년 교육선언'은 4·15공교육 파괴조치, 자율형 사립고, 3불 정책 폐지, 국제중학교, 영어몰입교육, 일제고사, 역사교과서 왜곡, 일제고사 관련 교사 파면·해임 등 이명박 정부의 왜곡된 교육정책이 공교육의 근간을 흔들고 학생들과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데 대한 경종을 울렸다.

 

이날 참석단체들은 교육선언문을 통해 "교육이 추구해야 할 지식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면서 "지식은 더 이상 반복 훈련을 통해 지녀야 할 암기 능력이 아니며, 협소하게 주어진 정답 찾기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기능을 갖추는 일도 아니다. 세계는 점점 창의력과 민주적 의사소통 능력을 갖춘 고급 인력을 요구한다. 진정한 경쟁력은 이러한 인재를 어떻게 길러내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은 그들의 권리이자 어른들의 의무이다.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은 평화와 공존, 협동과 창의성을 익히며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면서 "아름답지 않은 꽃이 없듯, 우리 학생들 모두는 소중한 인격체이다. 각자의 자존감을 바탕으로 급우들을 존중하고 협동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삶을 체득해 나갈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차별 교육과 경쟁주의로 무너져가는 교육현실 속에서, 한국 교육의 희망을 되살리기 위한 상상력과 비전,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실천 전략을 가꾸어나가기 위해서는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에 따라 보장 ▲학생 개개인을 위한 교육적 처방을 할 수 있는 전문적 능력의 소유자가 교사로 양성 임용될 수 있도록 국가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 ▲학교는 국가 통제시스템에서 벗어나 교육과 관련된 모든 권한이 학교 현장으로 대폭 위임돼 하며, 교사에게 교육과정 운영권과 평가권을 돌려줘야 할 것 ▲교육행정 체제는 관료적인 틀에서 벗어나 현장을 지원하는 체제, 협동적 행정 체제로 개선해야 할 것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경쟁에서 협동으로, 차별에서 지원으로'라고 적힌 현수막을 풍선에 달아 하늘로 날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김정명신 문화연대 공동대표는 2009년 교육선언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참가자들이 풍선을 날리려는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 반응으로 행사장이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기자회견문]

2009년 교육선언문

 

경쟁에서 협동으로

차별에서 지원으로

 

오늘날 우리 교육은 경쟁을 부추기며 모든 아이들을 이기심과 탐욕의 노예로 만드는 잘못된 교육관과 교육정책으로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무책임한 시장의 논리를 쫓아가는 교육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교과서와 교육과정, 학교운영 시스템 모두가 일제 강점기의 낡은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 학생, 학부모는 교육으로 인한 부담에 짓눌리고 교사들 또한 교육적 가치와 소신을 지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언제까지 아이들을 죽음의 경쟁으로 내모는 교육을 지금처럼 끌고나갈 것인가. 최근 불거진 일제고사 성적 조작 파문은 국가가 과도하게 주도하는 교육 경쟁이 얼마나 졸속이며, 무모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경쟁 위주의 정책이 안고 있는 해악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율'과 '책임'이라는 허명 아래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15공교육파괴조치, 자율형사립고, 일제고사, 3불폐지, 국제중학교, 영어몰입교육, 역사교과서 왜곡, 일제고사 관련 교사 파면·해임은 그 전개와 결말이 어떠하리라는 점이 너무나 자명하다. 이미 충분히 경쟁적인 체제 위에 기반하고 있는 현재의 교육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 같은 정책을 무분별하게 도입하는 것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처지를 더욱 위험한 경쟁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위협적인 조처일 뿐 아니라 애초에 정부가 기대하고 있는 긍정적 실효성조차 담보하기 어려운 결과를 빚어내어 정권의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명백하다.

 

우리가 허비하고 있는 20조 9천억 원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사교육비는 미래의 교육을 질곡으로 이끌게 하는 독약과도 같다. 정부는 현 교육정책이 이러한 독약이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되도록 불안한 환경을 만드는 짓임을 자각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는 유엔이 정한 '어린이 청소년 인권 규약'의 기준으로 볼 때 집단적, 제도적 인권 유린 사안에 해당한다. 우리 교육의 진짜 문제는 경쟁이 없어 학업성취도가 낮다는 것이 아니라 학습에 대한 흥미가 낮은 상태에서 기계적 학습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부에 더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이제 우리가 우리 국민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을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서열화정책, 교육 불평등 정책은 지금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민사회단체와 교육을 걱정하는 학생, 학부모들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본산인 미국과 영국에서는 교육의 '시장화 정책'이 지닌 부작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최근에는 유연한 정책 기조로 선회하고 있다. 잉글랜드 정부는 14세에 치러지던 국가 수준 표준 성취도 검사를 이미 폐지하였으며, 교육과정평가원(QCA) 역시 국정교육과정을 좀 더 유연하게 수립하기 위해 지난 2년간 교육현장의 전문가들과 새로운 방향을 공동으로 모색해오고 있다.

 

미국도 지난 부시 정권의 낙제아동방지법(NCLB) 아래 계속된 학업성취도 평가를 앞세운 경쟁교육에 대한 비판으로 오바마 정부는 일제고사 정책에 대한 대대적 수정을 약속했다. 교육이 추구해야 할 지식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지식은 더 이상 반복 훈련을 통해 지녀야 할 암기 능력이 아니며, 협소하게 주어진 정답 찾기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기능을 갖추는 일도 아니다. 세계는 점점 창의력과 민주적 의사소통 능력을 갖춘 고급 인력을 요구한다. 진정한 경쟁력은 이러한 인재를 어떻게 길러내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통하여 행복해지는 것은 그들의 권리이자 어른들의 의무이다.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은 평화와 공존, 협동과 창의성을 익히며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아름답지 않은 꽃이 없듯, 우리 학생들 모두는 소중한 인격체이다. 각자의 자존감을 바탕으로 급우들을 존중하고 협동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삶을 체득해 나갈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할 것이다.  선택된 소수를 위한 특별한 학교가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개념의 교육,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설계하려면 낡은 굴레를 떨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차별 교육과 경쟁주의로 무너져가는 교육현실 속에서, 한국 교육의 희망을 되살리기 위한 상상력과 비전,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실천 전략을 가꾸어나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전제되어야한다.

 

첫째,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다. 교육은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권이다. 양질의 공교육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며 국민 누구나가 언제 어디서든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양질의 공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장애아동과 빈곤아동의 교육권도 확보해야 한다.

 

둘째,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장되어야한다. 교육은 개인의 지식과 능력을 배양하는 동시에 사회발전을 돕는 중요한 집단적 재화이다. 교육을 통해 민주적인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도록 국가는 노력해야 한다.

 

셋째, 교사는 학교교육의 전문가이다. 학생 개개인을 위한 교육적 처방을 할 수 있는 전문적 능력의 소유자가 양성 임용될 수 있도록 국가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넷째, 학교는 국가 통제시스템에서 벗어나 교육과 관련된 모든 권한이 학교 현장으로 대폭 위임되어야 하며, 교사에게 교육과정 운영권과 평가권을 돌려주어야한다.

 

다섯째, 교육행정 체제는 관료적인 틀에서 벗어나 현장을 지원하는 체제, 협동적 행정 체제로 개선해야 한다.

 

학교는 시장이 될 수 없으며 교육은 상품이 될 수 없다. 다시 한 번 교육 당국의 각성을 촉구하며, 이명박 정부가 교육의 근본적 가치와 철학을 되찾아 '경쟁에서 협동으로', '차별에서 지원으로' '자본에서 인간으로' 교육정책의 방향을 180도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제 우리는, 미래를 향해 가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낡은 과거의 틀 속에 가두려 하는 교육정책과 교육현실을 뛰어넘기 위한 새로운 성찰과 모색을 시작한다.

 

우리 교육을 좀 더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대안을 설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미움과 질시와 탐욕이 아닌 사랑과 나눔과 배려를 가르치는 교육, 경쟁을 넘어서 협력의 소중함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교육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자신들의 무능력과 준비 부족을 솔직히 인정하고, 교육정책의 기본 틀을 전면 재검토하라. 이것이 시대와 역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시대정신이고 우리 아이들과 국민들이 행복해 지는 길이며, 교육을 통해 이 나라가 전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선언한다.

 

2009년 3월 12일

2009 교육선언 선언자 일동


태그:#2009 교육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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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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